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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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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장난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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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알아버렸다’고 해버리면 그건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의미심장한 대사가 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남자인 나도 남자에 대해 잘 모르겠다. 여자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결국 나는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이런 경향은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그때부터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바로 별 의미 없는 장난들이었다. 가령 나비처럼 나타나서 벌처럼 때리고 도망치는 류의 장난은 항상 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 있었다. 일단 때리면 상대는 아프고 기분이 나쁘다. 그러면 보통 왜 때리느냐고 이유를 묻거나 복수를 하게 되는데, 사실 합당한 이유가 없으니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고 자연스럽게 복수의 단계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과정은 도주로 인해 아주 길고 지리한 체력전으로 변모하곤 하는 것이다. 분명 장난이란 이 과정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일 텐데, 그 즐거움이 단순히 상대를 때리는 폭력성의 충족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대의 기분을 일시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추격전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들을 넘어서 상대와의 사회적 관계 변화가 최종적인 목표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장난에 공감하거나 동조하기 힘들었고, 어떤 장난에도 간디처럼 비폭력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남자애들의 장난도 조금씩 변해갔다. 우선 ‘추격전’이 사라졌다. 복도나 교실을 질주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치고받고 끝내는 비중이 높아졌고, 장난 자체도 상대에게 심대한 고통을 주는 것보다는 간지럽히거나 특별한 고통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간지럽히는 것으로는 ‘손톱을 모아서 상대의 무릎에 올린 후 손가락을 천천히 벌리기’가 유행했고, 특별한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시구니’라고 해서 날개뼈 끝 부분을 백핸드로 때리는 것이 유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에서 일종의 스킨쉽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손날로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풀어제끼는 장난도 있었는데, 이건 확실히 그 증거가 될 듯하다. 신기하게도 이쪽은 기분이 나빠지지 않고 꽤 재미를 느꼈으므로 나도 종종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장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 한쪽은 이해할 수 없고 한쪽은 재미있었나 싶은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일차적 목적이 ‘약 올리기’에 있는가 아닌가일 것이다. 약 올리기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다. 어릴 때의 장난은 분명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게 첫째 목표였다. 그런 반면에 좀 자란 뒤의 장난은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력조차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걸 ‘장난의 진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장난의 진화가 어째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점점 뛰어다니기가 귀찮아진 탓도 있을 것 같고, 몸집이 커지면서 ‘복수’의 타격이 예전과 스케일이 달라진 탓도 있을 거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고가 발달해서일 수도 있고, 소통 능력이 발달한 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난의 진화도 ‘여자’ 라는 생명체 앞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여자의 사고나 소통 방식은 남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 여자의 무릎을 간지럽히거나 날개뼈를 때리거나 단추를 풀러댈 수는 없지 않은가? 남자들이 나이를 먹고서도 소통의 방법으로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여자를 놀리고 약 올리는, 다소 유치한 방법을 택하곤 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랬다가 상대의 기분이 정말 나빠지면 이만저만 난처한 일이 아니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계란 발전하는 것이리라.

사실 위에서 그런 장난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는 했지만, 나도 소통의 장벽을 느끼기 시작한 탓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탓인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거꾸로 어린 시절과 비슷한 장난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별 이유가 있든 없든 여성에게 장난치는 것은 꽤 신 나고 재미난 일이다.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은 실랑이를 벌이거나 얻어맞고 있자면 적어도 남중 남고라는 암울한 시기 때문에 누리지 못 했던 평화를 체험하는 기분은 든다. 나로서는 일종의 '영혼의 재활훈련'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장난의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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