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오랜만에 두뇌를 풀가동한 터라 상당히 지쳤다. 계속해서 당분과 카페인을 보충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자꾸만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잠이나 자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때, 카페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당신의 의식을 사로잡는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지만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 계속해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카페 점원을 불러 지금 나오는 곡이 무엇인지 물어볼 것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음악을 들려주면 제목을 찾아주는 앱을 실행할 것인가?
그런 앱이 설치되어 있기만 하다면 아마 많은 사람은 앱을 실행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점원을 불러서 뭘 더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대해 묻는 행위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음악인도 아니면서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당연히 음악이 뭔지 궁금하면 그 점포의 점원에게 묻는 것 말고는 달리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고, 나는 그래서 모르는 음악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점원을 부르곤 했다.
예전에 도쿄에 갔을 때는 카페도 아닌 옷가게에서 나오는 노래의 기타 리프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점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그때는 일어를 잘 못 할 때라 일행이 대신 물어주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The Band Apart”였는데, 나는 그 길로 음반점에 가서 밴드 아파트의 음반을 두 장 샀다. 그때 산 음반은 여전히 여름만 되면 잘 듣고 있다. 왜 꼭 여름에만 듣는가 하면, 도쿄에 갔던 그때가 바로 온몸이 녹아내릴 듯이 찌는 한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밴드 아파트의 곡을 들으면 그 사우나 같은 도쿄의 여름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이상하게 어딘가 한줄기 상쾌함이 느껴지곤 한다.
그 뒤로 오사카에 갔을 때는 호텔의 식당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았다. 미국의 황량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옆 작은 식당에서 틀어줄 법한 로큰롤이었는데, 한 곡만 좋은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좋아서 음반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카운터의 직원은 당황해서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곧 돌아와서 음반을 트는 게 아니라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스트리밍을 틀고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음반이 뭔지는 결국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집에 돌아와 로큰롤 베스트 앨범을 샀다. 자주 듣지는 않지만, 덕분에 로큰롤에 꽤나 호감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가끔 있었다. 한번은 족욕 카페에서 나오는 피아노곡이 마음에 들면서도 익숙하기에 가만히 들어보니 평소에 즐겨 듣던 일본 밴드 “범프 오브 치킨”의 곡이라 깜짝 놀라서 점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점원은 당황해서 동료가 집에서 구워온 음반이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필 그 동료는 나오지 않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아는 한 범프 오브 치킨은 피아노 어레인지 음반을 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건 유투브 같은 곳에서 다운받았거나, 어쩌면 직접 녹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무튼 밴드의 어레인지 곡을 구워다 카페에 틀 정도로 열성적인 팬을 만날 기회를 놓쳐 무척 아쉬웠다.
그밖에도 지금 나오는 곡이 뭐냐고 물은 게 제법 되지만, 언제부턴가 그 횟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쓰게 된 탓도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 마음에 드는 곡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 또 물었을 때 "아, 이건 **의 **라는 곡입니다.”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해주는 사람을 도통 만날 수 없게 된 탓이다. 점원들은 대체로 곡에 대해 물으면 메뉴판에 없는 비밀스러운 주문을 처음 받은 것처럼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계속 듣고는 있지만, 본인도 딱히 뭘 틀어놓겠다고 선곡을 해서 틀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적당한 리스트를 몰아넣고 반복시키겠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이 그렇게 이름 모를 곡 1로, 대충 쓸어다 잡탕에 넣는 재료처럼 취급된다고 생각하면 음악가들은 퍽 아쉬울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지금 나오는 곡이 뭐냐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고, 그럴 기회가 있어도 스마트폰 앱으로 질문을 대신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기술의 발전에 자주 놀라고는 있지만, 음악을 듣고 곡을 알아맞히는 기술에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알아듣기만 한다면 아티스트와 앨범 정보까지 바로 알려주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구매 링크까지 띄워준다. 스마트폰 만만세다.
하지만 거기에는 간편함은 있지만, 점원과의 소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때문에 점원은 점내의 배경음에 대해 손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점원이 묻고 다닐 수도 없고, 벽에 설문지를 붙여둘 수도 없고, 손님이 ‘좋아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배경음은 배경음대로 흘러가고, 손님은 손님대로 흘러가게 된다. 음식은 가끔씩 맛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음악 카페가 아닌 다음에야 음악은 피드백의 고려사항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경음이 마음에 든다면 정말 그 곡 이름이 궁금해서 뿐만이 아니라, ‘좋아요’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곡 이름을 물어 왔다. 점원을 불러다 ‘음악이 참 좋군요’, 하는 건 뜬금없고 관심을 사려고 안달이 난 사람 같지만, 곡 이름을 묻는 건 비교적 온건하게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아무튼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이 좋아해 주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기뻐하기 마련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점원도 기분좋게 하고, 이후의 선곡도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배경음 선곡에 신경을 쓰는 점원도 얼마 없을뿐더러 안 그래도 바쁜 점원을 그런 질문으로 귀찮게 만들면 별스러운 손님으로 찍힐지도 모르지만(그리고 바쁠때 묻지 않는 융통성 정도는 있다), 내가 좋든 싫든 계속 접해야만 하는 예술 작품이라면 그 이름을 알 권리 정도는 주장해도 될 거고, 그렇게 함으로써 음악적으로 좀더 좋은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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