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다녀 보면 패블릿을 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그냥 패블릿만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아예 다이어리 같은 케이스를 씌워서 지갑처럼 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소형화가 지상최대의 목적이었던 예전의 핸드폰들을 떠올리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요즘은 정보량의 확대와 경량화가 최대의 목적으로 바뀌었고, 쓰는 사람들도 점퍼 주머니에만 들어가면 불만은 없는 눈치다. 하기야 여성들은 애초에 바지나 치마 주머니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주머니가 없거나 신체에 밀착되어서 주머니가 있든 없든 거의 쓸 일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고, 어째서인지 절대 주머니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지갑을 쓰는 게 보편적이라 지갑과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게 일상화되어 있었다. 남성들은 일어나 있을 때는 뒷주머니를 쓰고, 앉을 때는 빼서 책상 위에 두는 게 보통인 것 같다. 그도 아니면 역시 손에 들거나.
이 ‘손에 든다’는 방법을 나는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것은 일단 걸을 때 귀찮기 때문이고, 그리고 교통수단에서는 책을 읽을 때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한 손에 핸드폰을 들었다고 걷지 못하는 것도 책을 읽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책을 읽자면 당연히 손이 비어있어야 편하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기왕이면 화면이 큰 스마트폰을 쓰고 싶기도 하다. 지금 나는 아이폰 4S와 뉴넥서스7을 쓰고 있는데, 뉴넥서스7도 막 샀을 때나 좋았지, 반년쯤 지난 요즘은 습관적으로 가방에 챙겨 나가도 한 번이나 꺼내볼까 말까 할 정도로 써먹질 않는다. 모든 작업을 맥북으로 처리하기 시작한 데다가, 책도 어지간해서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니 도통 쓸 일이 없게 된 것이다. 큰 만큼 보기에는 편하지만, 딱히 아이폰으로는 절대 못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라 생활의 필수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시 팔아치울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폰4S의 신용카드만한 화면으로 웹서핑을 하거나 웹툰을 읽거나 참고자료를 보자면 또 속이 터져서, 역시 어느 정도의 휴대성을 갖춘 한편으로 화면 크기도 시원스러운 맛이 있는 패블릿이 유행할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건 그렇고 PDA시절을 생각하면 기술과 유행의 변화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항상 하는 얘기지만). PDA시절에는 그 첨단 기기를 편안하게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홀스터’가 출시된 적이 있다. 이걸 쓰면 마치 미국 경찰이 하고 다니는 것처럼 PDA를 겨드랑이 아래에 수납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일반적인 의생활이 커버할 수 있는 인벤토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PDA시절의 최첨단 하이엔드 기기보다도 더 크고 비싸고 성능 좋은 필수품을 아무렇지 않게 맨손에 들고 다니고 있다. 그래서 주머니가 사라지는 여름이 될 때마다 이런 보조 인벤토리가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매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걸로 보면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니는 걸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 모양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화면이 점점 커져서 7인치나 8인치에 육박하면 이런 아이템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남녀노소 겨드랑이 밑이나 허벅지의 홀스터에 스마트폰을 차고 다니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봐도 하드보일드하고 멋진 장면이다. 특히 여성이 허벅지의 홀스터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모습은 파티장에 잠입한 스파이같고 섹시할 것 같은데, 역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세상에 나 하나뿐일까?
(이미지 출처 http://masterhoff.deviantart.com/art/Garder-Belt-Gun-Holster-103505453)
검색해보니 mobilephone thigh holster(http://www.gizmag.com/go/4146/)라는 게 아니나다를까 이미 나와 있더군요. 내가 생각한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이라더니… 아무튼 이제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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