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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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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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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귀여운 개를 발견하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참고로 이 개는 요크셔테리어고, 아주 깔끔하며, 감염의 위험은 없고, 목줄을 하고 주인과 산책 중이라고 가정하자. 
아마 누군가는 귀엽다고 쓰다듬을 것이고, 누군가는 본척만척 그냥 지나갈 것이다. 걷어차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범죄니까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아무튼, 나는 단연코 후자다(걷어차는 것을 제외하고). 고양이는 특별히 좋아해서 가능한 한 접촉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대체로 동물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심지어 동물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 이건 고양이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동물에게 “잘 있었어?”, “우쭈쭈, 이리와!”, “손!” 이런 말을 쉽게들 거는데, 보고 있으면 참으로 신기하고 부럽다. 나는 그런 시도를 하려고 들면 머릿속에서 민망함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제동을 걸어, 기껏해야 쓰다듬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동물에게 말을 걸지 못한다고 해서 그 동물이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현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란 아마 친화력의 일부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 낯선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낯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에게 곧잘 말을 걸고 쓰다듬고 노는 사람은 십중팔구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걸고 친해지는 사람이고, 반대로 나처럼 동물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는 사람은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걸지 않고, 남과 빨리 친해지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도 밀접해서, 동물과 사이좋은 사람은 애들과도 쉽게 친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애들을 어려워한다. 일단 내가 그렇다. 열두 살 아래의 종질과 사촌들에게조차 도통 말을 걸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말을 걸지 않은 게 당연한 게 되어 그 애들이 어린이가 아닌 지금도 말을 걸지 않는다. 애들도 나와 비슷한 성격인지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명절이면 그럭저럭 반가움에도 소 닭 보듯 하는 광경이 연출되곤 한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하지도 않지만.

동물이나 애들을 대하면 도무지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개나 고양이는 안아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뜨겁게 맥박치며 숨을 쉬는 게 느껴져서, 내가 계속 안고 있다간 어딘가 망가질 것 같아서 금방 내려놓게 되고, 애들도 정서적으로 예측하거나 감당할 수 없어서 금방 거리를 두게 된다. 

말이나 걸음마를 배우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아마 사람에게는 낯선 존재에 대한 친화력을 배우는 시기가 있고, 나는 그런 시기를 건너뛰고 만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가 굳은 뒤에 언어를 새로 배우려면 끔찍하게 고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런 친화력을 나중에 배우려면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물에게 말 걸기’ 같은 학원이나 교육과정은 없고, ‘아이와 친해지기’는 관련 학문이 많아도 내가 요구하는 수준을 훨씬 웃도는 수준일 게 틀림없다.
간단히 애완동물을 키우는 처방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동물에게 말도 걸지 못하는데 책임까지 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즉, 동물을 키우지 않으니 동물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동물에게 말을 걸지 못하니 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옷을 사러 갈 때 입을 옷이 없다’와 같은 비극의 연쇄가 계속되는 것이다. 집에서 이틀인지 사흘인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개를 맡은 적이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열심히 말을 걸어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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