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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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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가면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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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http://newspeppermint.com/2013/09/03/get-a-life/)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때는 어떻게 사는지도 알리고 책이나 게임을 만들면 홍보도 하려고 페이스북을 했지만, 일상에서 딱히 자랑할만한 부분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만든 것을 직접 홍보한다는 것도 민망한 감이 있는데다가,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쩐지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져 그만두고 말았다. 누가 유학을 가서 새로운 학교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 같고, 애인이나 친지들과 놀러가서 맛난 것을 먹었다고 올린 사진을 보면 4000원짜리 햄버거를 먹을까 5000원짜리 밥을 먹을까 고민하는 자신의 생활이 어쩐지 인간극장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도 다 내 속이 비좁은 탓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만 이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실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카드 광고에 나오던 이영애처럼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어트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직업상 고난을 겪는 사람이나, 시험이나 연애문제로 절망하는 사람도 많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자신의 신상을 내걸고 이런 이야기를 동네방네 떠드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애초에 그런 글을 올려봤자 보는 사람 입장에서 ‘좋아요’를 누를 수도 없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상 페이스북도 개방된 사회의 연장이고, 그런 사회에서 일부러 위축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도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상처를 감추는 야생동물과 딱히 다른 것 같지도 않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공간을 창조해서 시공을 초월하는 데 성공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행위를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싶다. 

그래서 페이스북보다는 트위터를 좋아하는데, 이 두 SNS의 차이는 너무나 엄청나서, 어떤 사람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같은 사람의 계정이 맞나 싶을 지경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마냥 행복하고 점잖은 사람도 트위터에서는 희로애락의 덩어리 그 자체일 때가 많다. 페이스북으로는 기막히게 멋진 하루를 보낸 것처럼 사진을 올리고 있지만, 트위터에서는 애인 때문에 기분을 잡쳤다고 분노하는 모습이나, 페이스북으로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칼럼에 ‘좋아요’ 하고 있으면서도 트위터에서는 ‘오줌 발싸! 히히!’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사정과 복잡한 마음이 있구나 싶어 새삼 감탄한다. 

그렇다면 대체 왜 트위터에서만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은가?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은 신상에 대해 가능한 한 상세히 적을 수 있도록 양식을 제공한다. 이름부터 출신 학교는 물론이고, 가족과 직업과 연애 상황까지 칸이 따로 있다(상태를 연애 중 아님으로 고쳤다는 소리까지 게시되곤 한다). 반드시 적을 필요는 없지만, 남들은 당당히 채워넣은 걸 혼자 비워놓거나 대충 거짓말로 써놓으면 영 기분이 개운치 않다. 동창회에 끌려나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대답하는 기분이다. 한편 트위터는 개인 정보를 어떻게 적든 말든 상관없어서, 사는 곳에 ‘당신의 마음속’ 따위를 적어도 자신을 비롯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페이스북이 한없이 현실에 밀접한 반면, 트위터는 정말 별개의 공간에 가까운 것이다. 페이스북이 동창회라면 트위터는 가면무도회다. 간혹 가면을 벗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서 워낙 요상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으니 가면을 벗은 채 그런 대열에 끼어도 어지간해서는 적당히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로서는 트위터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 트위터도 딱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얼마 전까지는 남들처럼 일상에서 생각나는 별 뜻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중얼거림도 ‘그래비티’의 우주비행사들 같아서 그만두었다.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우주 조난을 당한 우주 비행사들이 통신이 두절되어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계속 휴스턴에 말을 거는 모습이 나오는데, 산드라 블록이 조지 클루니에게 들을 사람도 없는데 왜 자꾸 통신을 하느냐고 묻자 조지 클루니는 ‘계속 통신을 해야 언젠가는 누가 들을 것 아니냐’고 대답한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SNS도 결국 인간이 근원적인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허공에 신호를 발신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싶어, 자꾸 비장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트위터에 그런 ‘상황보고’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 요즘은 ‘정보공유’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자기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떠도는 정보를 골라서 리트윗만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 ‘큐레이터’들을 팔로우하고 신문 보듯이 구경하거나, 남들이 보면 좋을 만한 정보, 혹은 독서 중에 발견한 문구를 가끔 트윗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스포츠 신문이나 마찬가지다. 시각적인 장면으로 생각해보면 가면무도회장 한구석에도 가십거리만 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 틈에 끼어서 뜬소문에 귀 기울이는 한편으로 와인을 마시며 가면무도회를 구경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못된 인간 같지만, 사실은 그냥 소심할 뿐이다. 가끔은 완전히 소심한 사람들을 위한 SNS가 따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그러면 쥐죽은 듯이 조용해서 재미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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