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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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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온라인 게임을 하질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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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을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온라인 게임과는 도통 친해질 수가 없다. 온라인 게임 알레르기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잘 못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 그렇다. 세상에는 자기가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법인데, 이 정도로 친해질 수 없다면 역시 인연이 아닌 게 틀림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확장도 없던 시절, 즉, 피씨방이 이제 처음 등장해서 명칭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에 재미있게 했고,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실력이 순식간에 일취월장해서 끼는 것조차 미안하게 되었다. 집에서 컴퓨터를 상대로 하면 그럭저럭 할 만했지만, 단연코 실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도 제법 해볼 만 하지 않나 싶어서 멀티플레이를 하면 상상도 못 한 타이밍에 적병들이 몰려와 초토화되기 일쑤였다. 결국 브루드워가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이것도 경쟁사회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MMORPG는 친구들을 따라서 리니지를 했다가 허수아비에게 몇 번씩 맞아 죽고(놀랍게도 연습용 허수아비가 일정 확률로 반격을 하는 시절이었다), 다섯 시간 만에 간신히 레벨 5를 만든 뒤 집어치웠다. 보통 남들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만드는 레벨이었던 것이다. 스타의 전례가 있었던 터라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다. 


FPS는 레인보우 식스부터 꽤 재미있게 했지만, 스타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너무 잘해서 항상 접대하는 정도로만 즐겼다. 스타는 수준차가 나면 하수가 고수에게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없다시피 하지만, FPS는 고수라고 총 맞아도 안 죽는 게 아니니까 그럭저럭 게임은 되었다.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바라는 재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FPS는 축구나 농구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가끔 하면 재미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하면 피로해지는 것이다. 한번은 어쩌다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밤새 카운터 스트라이크만 한 적도 있긴 한데, 그리 즐거운 밤은 아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면서, 이따위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도 비교적 최근에, '요즘 남자애들의 놀이 문화를 체험해보겠어!' 하고 시도해봤다. 보통 이런 전개라면 ‘흥, 이런 게 어디가 재미있다는 건지…….’하고 중얼거리다 ‘조, 조금만 더 해볼까’를 거쳐 ‘하아하아, 이제 **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와우는 자꾸만 뭘 몇 개씩 찾아오라는 퀘스트가 번거롭고 짜증나서 그만두고 말았고, 롤은 콘셉트가 퍽 마음에 들었지만, 까딱하면 팀전에서 욕먹기 일쑤라는 소리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럭저럭 열성적인 보드게이머니까 온라인 보드게임이라면 꽤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라인 TCG도 도전해봤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판타지 마스터즈는 도무지 시스템이 익숙해지지 않아서(특히 코인토스가) 포기했고, 소드걸스는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지만 원할 때 그만둘 수 없는 던전 탐험이 괴로워서 그만두었으며(전에 하던 탐험을 이어서 하려면 아이템이 필요하다), 매직 더 개더링 온라인은 멀쩡한 카드를 놔두고 카드를 처음부터 새로 모아야 한다는 게 막막해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카드를 직접 만질 수 없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책을 모니터로 읽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17년 가까이 카드를 손으로 가지고 놀다 보니 화면 속의 카드를 클릭해서 노는 것으로는 영 흥이 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같이 즐기는 사람이 앞에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보드게임은 사람들이 모여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거라는 인식이 박혀있으니까 온라인 보드게임이 신통치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여서 하는 게 아니라면 태블릿으로 컨버전 된 보드게임도 손을 대지 않는다. 나름대로 첨단 전자기기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완고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전자오락은 도무지 즐길 줄 모르는 아날로그형 인간 같지만, 처음에도 적었듯이 친해질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온라인 게임’이라, 비디오 게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다. 요즘은 거의 손대지 못하지만, 검호, 용과 같이, 메탈기어 시리즈는 몇 시간이고 붙들 정도였다. 이런 걸보면 끝이 확실히 정해진 게임만 즐기는 성격인 것 같기도 하다. 비슷한 이치로 ‘끝내주게 재미있고 완결내지 않는 게 목표인 만화’ 같은 게 있다면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편지가 이메일이 되고 책이 전자책이 되었듯이, 언젠가는 ‘게임’이 온라인 게임에 기대는 정도가 더 커져서 온라인 게임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아버지가 슈퍼마리오를 해 주셨듯이 나도 자식과 나란히 앉아서 온라인 게임으로 던전을 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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