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치스토리는 김준협, 정연민님이 디자인한 작품으로, 각종 위인과 불가사의가 등장하는 문명 게임입니다. 클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통해 모금되고 발매되었으며, 이례적인 모금액과 게임 내용의 코어함에 화제가 되었죠.
게임 방법은 단계가 세분화되어 있으니 항목별로 살펴보겠습니다.
경매

라운드가 시작되면 영토 경매부터 하게 되는데, 정사각형의 영토 카드는 앞뒷면을 모두 사용하게 되어 있어서, 첫 번째 장이 뒷면이면 두 번째 장은 앞면,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 숫자만큼의 카드를 뽑아놓게 됩니다. 그런 뒤 선 플레이어부터 이 대지 카드에 입찰을 하게 되는데, 입찰 방식은 "아문레"와 비슷합니다. 입찰 되어 있는 대지에 최고 금액으로 입찰을 하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대지로 이동해서 최고 금액으로 입찰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경쟁을 하다가 각 플레이어가 하나씩의 대지에 입찰을 하게 되면 그대로 낙찰되어 대지를 구입하게 됩니다. 아문레에서 증명되었듯이 여러 품목을 경매처리하는 방식 중에서 퍽 깔끔하고 재미있고 빠른 방법입니다.
이렇게 구입한 대지는 자신의 대지카드와 한 칸 이상을 겹쳐서 "패치" 하게 되는데, 이 방식은 "공중정원 The Hanging Gardens"에서 본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공중정원과 달리 패치스토리에서는 카드를 회전할 수 없고, 물이 포함된 카드를 패치하면 물이 반드시 늘어나는 방법으로 놓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여러 칸으로 구성된 구역을 일부만 가릴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시대에 따라 국가의 가로 세로 칸 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더 높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패치로 영토를 늘리면 영토에 적힌 이득을 얻게 되는데, 여기에는 자원 생산량이나 군사력, 정치력 등이 있고, 이 총량은 요약 보드에 마커로 표시해서 각 플레이어의 국력을 파악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외교와 내정
외교와 내정이 사실상 게임의 메인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정치력이라는 액션 포인트를 소비하여 원하는 액션을 하게 됩니다. 정치력 역시 자신의 대지에서 나오므로 초반에는 이 정치력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발생하더군요.
액션의 종류는 상당히 많아서, 가림막을 참조하지 않고는 외우지 못할 정도입니다.
우선 다른 국가에게 자원을 제시하고 승점을 받는 원조,
자기보다 군사력이 약한 교역 국가에게서 돈이나 승점을 빼앗는 협박,
동맹 교역로 하나를 폐기하는 동맹 파기,
교역로에 일꾼을 올리는 교역,
자신의 자원을 다른 자원으로 바꾸는 교환,
요약 보드에서 새 일꾼을 가져와 대지에 놓는 탄생,
식량이나 광물을 지불하고 자신의 영웅 당, 혹은 불가사의 당 승점을 얻는 숭배,
광물을 지불하고 교역로를 건설하는 교역로 건설,
광물을 지불하고 자신이 가진 건설 타일로 대지 한 칸을 매립하는 매립,
광물을 지불하고 자신이 가진 건설 타일을 대지 위에 건설하는 건물 건설,
정치력을 소모해서 투표권을 얻는 캠페인
이렇게 다양한 액션이 있군요. 하나하나 모두 중요한 액션인데, 가림막에 잘 요약되어 있고,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이동
이동력 역시 대지에서 나오는데, 이를 이용해 대지와 교역로에서 자신의 일꾼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이동력을 소모하는 액션포인트 개념이었으면 머리가 터졌을 테지만, 다행히 이동력은 일꾼 전체에 적용되어 누구를 한 칸 덜 움직이고 누구를 더 움직이는 게 나을까 고려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동이 게임 내에서 작용하는 방식은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대지에서는 어떤 칸의 "활성화" 능력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 됩니다. 대지에 황금색 테두리로 표시된 아이콘은 일꾼을 올려야만 발동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일꾼을 움직여서 생산력이나 군사력 등을 조절하는 것이죠. "아컴 호러"에서 집중력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음으로 교역로 위의 일꾼은 일꾼이 위치한 칸에 따라서 대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한편 전쟁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반 교역로에서 맨 끝에 있는 협상 칸까지 가면 전쟁이나 동맹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군사력을 올리고 타국을 침공하는 테크를 탄 플레이어는 이동력도 높여 빠르게 침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협상과 전쟁
이동 결과 협상칸에 들어간 일꾼이 있다면 그 교역로로 연결된 플레이어들은 협상을 해서 전쟁을 할지 동맹을 맺을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두 플레이어가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내려 결정합니다. 엄지를 내리면 전쟁을 하자는 뜻인데, '하나, 둘 셋에 엄지를 올리거나 내리는 거야' 하는 이 방식은 개인적으로 영 세련되지 않게 느껴집니다. 구성품 하나 늘어날 때마다 제작자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는 저도 잘 알지만, 동전 네 개만 줄이고 전쟁/협상 토큰을 넣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협상을 하게 되면 두 플레이어는 동맹을 맺고 동맹 교역로를 건설할 수 있고, 전쟁을 하게 되면 엄지를 내린 플레이어가 공격측이 되어 전쟁 비용을 지불한 뒤 다음 라운드에 전쟁을 수행하게 됩니다.
전쟁은 간단히 처리되는데, 공격측은 칼의 개수를, 방어측은 칼과 방패를 합산하여 군사력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비딩으로 광물을 사용하여 군사력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최종 군사력을 비교하여 공격측이 더 높으면 공격측이 승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방어측이 승리하며, 승리한 쪽은 승점을 받습니다. 이때 군사력 차이가 5 이상이라면 승자는 패자로부터 승점 7점을 빼앗습니다. 이걸 완벽한 승리라고 하는데, 이것까지 더하면 승점이 상당해서, 옆 국가가 군사력을 높이면 자신도 군사력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습니다.
생산과 일꾼 유지
대지에서 생산되는 자원과 교역로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수확하고 일꾼에게 밥을 먹이는 단계입니다. 요약 보드에 생산량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번잡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교역로는 보드에 표시하지 않게 되어 있어, 교역을 많이 하는 플레이어는 다소 번잡함을 느꼈습니다.
일꾼은 하나당 식량 몇 개를 먹는 게 아니라, "이클립스", "테라 미스티카" 등 최근작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보드에서 마커를 치우면서 드러난 숫자에 따라 식량을 먹습니다. 뒤로 갈 수록 상승 폭이 높아져 후반에는 부담이 상당하더군요.
이하로는 한 시대가 끝나기 전 라운드인 5라운드에만 수행하는 단계입니다.
영웅과 불가사의 유지
영웅은 식량 2, 불가사의는 광물 1을 소비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식량당 3점, 광물당 6점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가 끝날 때 쯤에는 유지비 준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투표
투표는 패치스토리에서 정기적으로 승점을 계산하는 방법인데, 이때 각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번영 카드를 한 장씩 골라서 내고, 랜덤으로 투표 순서를 정해 블라인드 비딩으로 투표권을 냅니다. 그렇게 투표가 끝나면 가장 표를 적게 받은 번영 카드는 제거되고, 나머지 번영 카드의 내용에 따라 승점을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황무지로 점수를 계산하는 번영 카드가 있다면 황무지가 가장 많은 플레이어는 카드에 올라간 투표권당 1점, 2등은 투표권 2개당 1점, 3등은 0점을 얻고, 4등은 투표권 2개당 1점을 감점당하는 식이죠. 따라서 자신이 우위를 차지한 종목에는 많은 표를 던져야 하는데, 혼자만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가 표를 주지 않게 되므로 그렇게까지 큰 점수를 얻을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요는 남들과 어느 정도 경쟁이 될만한 수준에서 우위를 차지하든지, 아니면 압도적으로 많은 투표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안을 정한다는 점에서는 "랭카스터"나 "쿠바"가 떠오르지만, 이 법안이 바로 점수를 주는 카드라는 점은 "아드 아스트라Ad Astra"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투표권의 소유주를 따지지 않고 총량에 따라 점수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점은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시대별로 5라운드를 진행하고 3시대가 끝나면 게임이 끝납니다. 그 뒤 승점을 비교하여 승자를 가리는 것이죠.

(한정판 프로모션 카드들)
이 긴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패치스토리는 대단히 많은 시스템이 녹아들어간 문명 게임인데, 그에 비해 규칙은 상당히 직관적이고 간단한 편입니다. 다양한 단계와 액션이 있어서 난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가능 범위가 확장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뭘 하면 좋을지 막막한 감도 느껴지지 않고, 게임의 몰입도가 서서히 높아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대지카드를 사서 퍼즐을 맞추듯이 내려놓은 후 그 기능에 따라 다른 전략을 짜볼 수 있다는 점은, 특정 문명을 결정해서 운영하는 게임들에 비해 자유도와 리플레이성이 높게 느껴집니다. 특히 카드의 앞뒷면을 모두 사용하지만 앞으로 나오는 카드와 뒤로 나오는 카드가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점은 게임을 매번 다른 양상으로 만들어주는 좋은 장치일 듯 합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퍼즐의 재미와 개인공간을 구성하고 효과를 얻는 재미를 동시에 잡고 있어 놀랍습니다.
교역로 개설을 통한 상호작용 역시 신선하고, 각자가 운영하는 별개의 개인공간 사이에 거리 개념을 부여하여, 각자 개인공간을 꾸미고 노는 게임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파편화 현상을 어느정도 억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번영 카드와 투표 시스템 역시 많은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퀘스트 카드처럼 플레이어의 게임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으로 공개 순서와 투표에 따른 융통성이 있어, 플레이가 퀘스트에 끌려가는 느낌은 주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꾼과 영웅, 불가사의가 밥을 먹는 유지비 시스템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지만) 게임의 내용상 타당하고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효과가 있더군요. 이것도 경매와 마찬가지로 재미가 보장된 시스템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패치스토리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매뉴얼의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고 간혹 설명이 부실한 부분도 보입니다. 가령 매립의 경우 황무지 타일로 한 칸을 매립할 수 있긴 한데, 그 대상이 자신의 대지에 국한되는 것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카드의 효과가 언제 발동되는 것인지 타이밍이 명확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액션이 워낙 다양한데다 후반으로 갈 수록 정치력이 늘어 액션 횟수도 많아지므로, 자연히 장고도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액션이 모두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한 플레이어가 고민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는 자기가 할 것을 생각하고 나면 멍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꾼이 나오기는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하지는 않으므로 턴이 진행되어도 상황이 크게 변할 일이 적은 탓입니다. 즉, 게임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외교와 내정 단계의 대부분이 대기 시간이라는 뜻이죠. 다른 게임이라고 다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을 일거수 일투족 관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치스토리에서는 액션 횟수가 점점 늘어나다보니 게임 후반에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2액션 카드가 몇 종이나 들어있는 도미니언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첫 플레이에서는 게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4인이 2시에 시작해서 3시까지 설명하고,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을 먹은 뒤, 9시에 뚜껑을 닫았습니다. 단순 플레이 시간만 5시간이었던 셈인데, 이날의 플레이 그룹이 특별히 이상했던 것인지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리고 이렇게 긴 플레이를 하고 나니 간단한 카드게임을 선호하는 저로서는 게임을 다시 하고 싶기는 한데, 게임을 다시 하는 것 자체에 다소 난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패치스토리는 이런 단점들이 사소하게 느껴질만큼 다양한 재미를 주고 있고, 항상 모든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플레이를 기대하게끔 하는 강한 매력이 있습니다. 많은 문명 게임 사이에서 자기만의 강렬한 색을 가진 게임입니다. 난이도도 이 정도 라면 큰마음 먹고 초보에게 가르칠 수도 있는 수준이죠. 그래서 보드게임판 "문명"과 비교하면 개인적으로는 패치스토리에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문명 게임을 좋아하는 코어 게이머라면 꼭 한번은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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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보드게임, 패치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