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는 멋있고, 패딩은 편하다. 그래서 누구를 볼 일이 있을 때는 코트를 입고, 그냥 혼자 나가거나 편한 자리에 가는 경우에는 패딩을 입는데, 그럴 때마다 패딩이란 얼마나 대단한 옷인가 생각한다. 깃털처럼 가벼운데다(실제로 깃털이 들었으니까) 이불을 두르고 다니는 것처럼 따뜻하고, 모자도 달려 있고, 이물질도 잘 묻지 않아서 세탁할 일도 많지 않다. 벗어서 아무렇게나 가방에 처넣어도 되고, 주머니가 따라온 경우에는 주머니에 욱여넣어 보관할 수도 있다. 그런 반면 코트는 정말 경우에 따라서는 어깨가 뻐근하다 싶을 정도로 무겁고, 목이 시리고, 비교적 비싼데다가 지하철이 더워서 벗어도 손에 들고 있는 수밖에 없으며, 실내라 해도 옷걸이가 없으면 어디 벗어놓기가 영 불편하다. 심지어 뭐가 조금만 튀어도 드라이클리닝 해야 하니, 여간 성가신 의복이 아니다. 그렇다면 코트 따위는 입지 말고, 인류 영지의 정수인 패딩만 입고 살면 되지 않는가 싶지만, 패딩이란 근본적으로 코트보다 멋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아니, 멋이 없다기보다는, 패딩은 캐주얼해서 격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관혼상제에 패딩을 입고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자리에만 코트를 입고 가면 되겠다 싶지만, 그러자니 옷걸이에 걸린 코트가 아깝다. 사람이 가끔은 누구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도 옷을 잘 입고 멋을 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위축당하지 않기 위한 무장이기도 하고, 아무리 한심한 자기 자신이라도 꾸미기에 따라서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 인간이라는 정신적 위안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끔씩 아무 일도 없어도 넥타이를 매곤 하는데, 요즘은 그랬다간 만나는 사람마다 면접을 봤느냐고 물을 게 뻔하니까 그만두었다.
어쨌든 요즘처럼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코트와 패딩의 장점을 합친, 혁신적인 옷이 어디 없을까 공상하게 된다. 작년쯤 겉이 울로 된 패딩이 유행했는데, 솔직히 꽤 멋있었다. 패딩이면서 기존 패딩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러운 맛이 있어서 나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패딩과 코트의 단점을 합쳐놓은 것이기도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보다 압도적으로 굉장한 물건이다. 예를 들자면,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코트인데 가볍고 오염에 강하며, 안쪽으로는 거위 솜털이 들어간 패딩 같은 것 말이다. "네모난 세모" 같은 얘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그 비슷한 옷이 나온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러시아의 중요 군사 시설에 변장을 하고 잠입한 이단이 입었던 옷인데, 나오면서 수염을 떼고 훌렁 뒤집어 입으니 군복에서 평범한 재킷으로 감쪽같이 변신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옷과는 조금 다르지만, 단 한 벌로 그때그때 다른 옷에 맞출 수 있으니 이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뒤집어 입을 수 있을 뿐이지 코트의 단점을 근본적으로 초월한 것은 아니라, 코트 면으로는 여전히 어디 놓기 힘들고, 가방에 구겨 넣을 수도 없는 데다, 입은 채로 카레우동을 먹을 수도 없다. 미션 임파서블에서조차 완벽한 외투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몇 년쯤 기다리다 보면 모보다 훨씬 따뜻하고 가볍고 오염과 구김에 강해서 패딩처럼 막 다룰 수 있는 신소재가 나와주지 않으려나 기대해보지만, 그런 물건이 나오면 또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해서 학부모들 등골이 휠지도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학생들이 교복 위에 입는 외투로는 역시 더플코트가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교복이라는 게 애초에 정장이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패딩은 사실 교복에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물론, 학생들이 멋보다 편의성을 중시해서 외투를 고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최근의 패딩 열풍은 편의성과는 별 관련이 없고 오히려 부의 과시적인 측면이 강했던 것 같다. 두껍고 따뜻한 털을 가진 사람일수록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 같은 이야기다. 아무튼 정말 멋있고 따뜻하고 가벼운 옷은 벌거벗은 임금님에만 나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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