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근처에 일이 생겨서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아르누보 전시회를 볼 생각이었는데, 그건 다음 주에 시작이더군요. 지브리전도 하는 중이었지만 그건 따로 약속이 잡힐 것 같아서 미뤄두고 "디지털 명화 오디세이- 시크릿뮤지엄"이라는 전시를 봤습니다. 전시회 이름이 볼품 없을 따름이지 퍽 좋은 전시회더군요. 잘 알려진 명화를 테마별로 걸어두고, 그 옆에서 티비로 중요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거나, 그림의 세세한 부분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혹은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이나 안료의 배합과 특징이 나오기도 해서, 전시 전체가 명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공간적으로 전개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몇몇 작품 앞에서는 그에 맞는 음향 효과가 나와서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냇물 흐르는 소리나 파도소리, 풀벌레 소리가 분위기를 잘 살려주더군요. 게다가 몇몇 작품, 예를 들어 "메두사호의 뗏목" 은 벽 전체를 채울 정도로 거대하게 전시되어, 그 웅장함에 압도되는 맛이 있었습니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게다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3면에 꽉차도록 영사하는 전시실이었는데, 자신이 마치 작품의 배경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짧은 영상이지만 넋을 잃고 감상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입체안경을 끼고 작품이 입체로 움직이는 모습을 감상하는 코너도 훌륭했습니다. "죽음의 섬"에서 배가 천천히 움직여 섬에 다가가는 모습은 별 것이 아닌데도 숨죽여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아르놀트 뵈클린-죽음의 섬)
아무튼 미술 전시회를 자주 다닌 것은 아니지만, 트릭아트 이후로 이렇게 흥미로운 전시회는 처음이었습니다. 단순히 그림과 설명을 걸어놓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재미를 느끼며 그림 곳곳을 빠짐없이 볼 수 있었는데, 정적인 그림이 동적인 매체를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따라서는 조금 씁쓸하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미술이 대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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