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544

메모선장의 다카야마 여행기 "먼 길로 가는 다카야마" 발매

$
0
0

 저 메모선장이 2013년 4월 9일부터 12일까지 다카야마와 시라카와고 등 인근 관광지를 여행하고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여행기 "먼 길로 가는 다카야마"가 발매되어 유페이퍼, 리디북스, LG U+이북, 리더스 허브, 예스 24, 영풍문고, 알라딘, 반디 앤 루니스, KT올레e북, 교보문고, 메키아 등 주요 전자 서점에서 판매중입니다. 

 다카야마 시는 에도시대의 건물들을 보존하여 리틀 교토라 불리며 2007년 미슐랭 관광 가이드북에서 최고 점수인 별 셋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세계 유산 시라카와고와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인기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는데, 그에 비해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만일 다카야마 여행을 고려하시는 분이라면, 성지순례를 하는 한편으로 다카야마의 아름다움을 한껏 담으려 노력한 이 여행기를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15. 어느 나라도 아닌 시라카와고

 

땀이 나도록 뛴 덕에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자판기에서 버스표를 사고 줄을 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는데, 역시나 동양인과 서양인이 섞여 있었다. 나처럼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오기로 작정한 사람들일 것이었다.

 

버스는 9 시쯤 출발했다. 슬슬 배가 고파 가방에 넣어두었던 누룽지를 조금씩 먹었다.

버스는 첩첩 산중으로 들어갔는데, 깊은 산으로 갈 수록 많은 눈이 쌓여 보기에 아름다웠다. 버스는 그리고 몇 번이나 긴 터널을 통과했고, 이따금 산 속에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고가도로와 톨게이트를 지나쳤다.

50 분 정도 지나서 시라카와고에 도착했다.

 


(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모습. 일본인 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이 많았다.)

 


( 버스는 종종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높은 도로를 달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사방이 눈 덮인 산이었다. 산 속이라 그런지 날이 생각보다 훨씬 추워서 옷깃을 여몄다.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후드집업 한 벌을 챙기려다 말았는데 후회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는 온갖 나라 사람이 모여서 잡담하거나 대열을 정비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도 러시아인이 아닌가 싶은 여성 맞은 편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교토의 관광지에도 외국인이 많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 외국인이 많은 걸까 싶었는데, 그것은 일단, 일본인의 비중이 적기 때문일 것이었다. 한국의 경주처럼 만만하게 수학여행을 가곤 하는 교토에 비하면 일본인이 적으니까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많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때와 달리 혼자 여행을 하면서 주변을 좀더 열심히 보게 되어,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 눈에 잘 들어오게 된 탓도 있을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시간 별로 있긴 했지만, 2 시는 예약을 해야 했고, 3 시가 되도록 볼 게 많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좀 서둘러 1 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뜻밖에도 한국어로 된 지도가 있어서 한 장을 챙겼다.

 

시라카와 마을로 앞에는 푸르고 아름다운 쇼가와庄川 강이 흘러, 마을로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했는데, 지도에 이 다리의 이름은 만남다리 라 했다. 온 관광객이 다 이 다리를 건넜는데, 발을 디디다 보니 분명 돌로 된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줄다리처럼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다리가 흔들리니 더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간혹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니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좀 보였는데, 지금 바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한 아줌마가 가게 아저씨에게 당고를 달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당고는 아직 하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뭔가 좀 먹고 싶었던 나도 발을 돌려야 했다.

시라카와고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 언제인지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하 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산 깊은 곳의 작은 마을이 생겨난 것이 언제인지 따로 기록이 남아있기는 분명 힘들 것이었다.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했는데, 1995 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지정된 후로는 관광객이 더 늘었다고 했다.

 

이 날도 관광객이 퍽 많았는데, 한동안 사람이 거의 없는 곳만 다녔던 나는 영 불편했다. 사람이 많으니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았고, 가끔 누가 사진을 찍으면 피해 다녀야 했다. 사람들은 오른쪽 길을 따라 걸었으므로, 나는 일부러 왼쪽으로 꺾었다.

관광객들로부터 멀어지니 마을은 다시 고요해졌다. 눈 덮인 산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이전에 어떤 엄숙함이나 경건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아마 대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을 안에는 현대식 건물도 종종 있었고, 차량은 그보다 훨씬 많았으며, 깔끔한 아스팔트 도로까지 깔려 있어서 어색하게도 느껴졌지만 그것은 마을이 박제된 구경거리가 아니라 계속 살아 숨쉬는 마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을 북쪽을 구경하며 걷다가 갓쇼즈쿠리 주택으로 유명한 와다가和田家가 나와서 들어가보기로 했다.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인 와다가의 입장료는 300 엔이었다.

갓쇼즈쿠리는 말 그대로 합장을 한 듯한, V 를 거꾸로 한듯한 지붕을 한 양식인데, 여기에는 목적이 두가지 있었다. 첫째는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오는 지방인 만큼 눈이 많이 쌓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땅이 좁아서 농경지도 모자랐으므로 높이 세운 지붕 밑의 공간까지 쓰려는 것이었다. 현대인이 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이유라 신기한데, 아무튼 당시 주민들에게 농지 부족은 꽤 심각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가니 안쪽은 생각보다 넓고 훌륭했다. 바닥은 깔끔한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이로리囲炉裏가 있어 놀라웠다. 이로리는 바닥의 일부를 뚫어 불을 피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인데,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불에 아주 취약한 목조 주택 안에 이로리가 있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일까 좀 걱정스러웠다.

왼쪽에는 안방이라고 할만한 곳이 있었는데,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있었고, 모양이나 구조도 그동안 봐온 전통 가옥의 모습과 같았다.

2 층도 올라갈 수 있었다. 계단은 계단이라기보다는 사다리에 가까워서 슬리퍼를 신고 올라가기 힘들었는데, 심지어 높기까지 했다. 옛날에 지은 목조 주택이니까 높아 봤자 요즘 건물로 치면 1.5 층 정도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걸, 요즘 건물로 쳐도 굉장히 높게 느껴졌다. 중간 2 층中2階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어서 창고로 쓰이고 있을 지경이었다.

2 층은 중간에 벽이나 문이 없어서 광활했는데, 양잠에 쓰이는 도구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양잠은 시라카와 마을에서 농업 이상으로 중요한 산업이었다고 한다.

지붕의 높이를 보니 그럴 법 했지만, 그래도 3 층까지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갓쇼즈쿠리도 따지고 보면 초가니까 3 층까지 있다는 것은 상식 밖이기 때문이었다. 시라카와고의 걋쇼즈쿠리 가옥 중에는 예약하고 숙박할 수 있는 곳도 있다니, 이렇게 신기한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꽤 멋지겠구나 싶었다. 산을 넘고 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차고 맑을지, 마루 위에 요를 깔고 누워 올려다보는 장막 같은 어둠이 어떨지, 나는 상상밖에 할 수 없었다.

 


( 흔들리는 돌다리. 물론 다른 길이 있긴 하지만,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야 산 속의 작은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쩐지 추리소설의 도입부 같았다.)

 

( 다리를 건너니 석등과 도리이가 있었는데, 바로 앞에 신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

 


( 눈이 아직도 저만큼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지방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짐작할만하다. 많은 차들의 모습에서는 이 마을이 살아서 외부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와다가 1 층의 모습. 1 층은 전시실처럼 꾸며놓아 생활감을 느끼긴 힘들었다.)

 


( 와다가 안의 이로리.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상상도 못했지만, 오래지 않아서 이로리를 실제로 이용해 볼 수 있었다.)

 


( 선실이 떠오를 정도로 가파른 계단. 사람들은 슬리퍼를 신고 오르기를 포기하곤 했다.)

 
( 창고로 쓰이는 중간층. 중간층이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방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공간이다.)

 




( 드넓은 2 층. 양잠에 쓰이는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사진 오른쪽 중간쯤 3 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보인다.)

 

(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집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워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 가옥의 다른 특징들에 비해 비교적 평범한 안방.)

 

와다가에서 나오니 남쪽에서 많은 서양인들이 작은 수로 옆을 줄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이 신비한 극동의 마을을 서양인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왜곡된 차원의 틈새를 보는 듯 했다.

 

( 수로 옆 길을 걷는 관광객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많았다.)

 

북쪽은 다 봤다고 생각하고 이제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이 좋은데다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어서 사진 찍기가 즐거웠다. 걷다 보니 일본인처럼 생긴 커플이 있기에 여자 쪽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말을 걸고 보니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영어로 부탁해서 의사소통이 되긴 했지만, 그렇게 찍은 사진은 솔직히 영 신통치 않았다. 남자 쪽이 커다란 DSLR 을 들고 있어서 사진을 잘 찍을 것 같았는데, 예쁘다고 여자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 물가에 핀 꽃이 아름다워 몇 장이고 사진을 찍었다.)

 

남쪽으로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북쪽에 전망대가 있었다. 제법 높은 언덕을 걸어올라 가야 해서 영 내키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지나칠 수도 없었다.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으므로 험하지는 않았는데, 가끔씩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 올라가다 시야가 트인 곳에서 내려다보니 실로 장관이라,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산과 강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에 세모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어느 나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전망대 앞에는 제법 넓은 주차장이 있었는데, 주차장에는 택시도 있었다. 이런 벽지에도 택시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전망대는 전망대라고 해서 구조물이나 쌍안경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전망이 좋은 자리였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마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잠시 호빗이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큰 DSLR 을 목에 건 아저씨 한 분이 사진을 찍어드린다고 하기에, 어디에나 있는 사진사겠구나 싶었는데, 가만히 듣자니 갖고 계신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드리는 서비스라고 덧붙였다. 설마 내 기기로 사진을 찍고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싶어 아이폰을 건네며 사진을 부탁했는데, 그러자 그는 보기 좋게 사진을 찍어준 뒤 ( 사진을 찍을 때 “ 시라카와 …GO!” 라고 하는 게 재미있었다 ) 자기가 멘 DSLR 로 한 장을 더 찍겠다고 했다. 옆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면 사라는 것이었다. 즉, 아무 대가 없이 봉사를 하는 건 아니고, 일종의 홍보였던 셈이다. 사진을 찍히고 올라가니 옆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는 순식간에 내 사진을 뽑아서 전시대 위에 올렸다. 놀이공원처럼 화면을 보고 사는 건 줄 알았는데, 훌륭하게 인화해서 예쁜 액자모양 테두리 안에 넣어 둔 것을 바로 사게 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기기를 쓰기에 이렇게 빠르게 인화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확실히 실물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니 굉장히 사고 싶긴 했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포기하고, 기념으로 마을의 사계를 찍은 사진 세트만을 샀다.

 

( 전망대로 가는 길. 길목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너무 이국적이라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걷다 보니 11 시 반이 되었다. 슬슬 누룽지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허기졌는데, 갓쇼즈쿠리 가옥에서 카레라이스를 파는 음식점이 있었다. 크고 얌전한 개 한 마리가 졸린 노인처럼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음식점을 발견하고 나서는 여기까지 와서 카레를 먹는 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개를 보고 있자니 아무렴 어떠랴 싶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개는 말없는 호객꾼이었던 셈이다.

가게 안은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카페처럼 보였는데, 그냥 카페라기에는 산장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가게 중간의 벽 쪽에 자리한 이로리 덕에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 보통 이로리는 바닥을 파고 만드는데 비해 이 가게의 이로리는 테이블처럼 높고 실제로 테두리가 테이블로 되어 있어 입식 이로리라고 할만 했는데, 이로리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편리해 보였다. 이로리 위에는 숯으로 솥을 하나 끓이고 있었는데, 그 덕에 모닥불가에 있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가게 주인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남성이었는데, 키는 작은 편이지만 다부지고 굉장히 건강해 보였다. 가게 안에 사람이 꽤 있어서 그는 내가 들어가도 바로 응대하지 못했는데, 내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느냐고 묻자, 시원스럽게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오른쪽 창가에는 서양인 넷, 가운데에는 역시 서양인 남녀 둘, 그리고 이로리 옆에는 금발의 여성과 갈색 머리의 여성이 있었는데, 아직 걷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아이 하나를 안고 있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이로리 옆에 앉았다. 금발의 여성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지었다. 나도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짐을 풀었다.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서양인들의 몸에 밴 습관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주인장이 와서 카레라이스 런치 세트를 시켰다. 그는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는데,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쁜 질문이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그는 일본에서 오래 살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지는 않으며 대학교에서 일본어과를 나왔다고 정직하게 얘기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차를 고를 때가 문제였다. 차 중에 유즈 ゆず 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물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자 주인장은

“ 유즈는 과일인데 … 아, 과일은 아닌가 ? 레몬 비슷하고 … 아무튼 신 맛이 나는 … 에, 아무튼 신 맛이 나는 겁니다.”

하고 설명하기를 어려워했다. 거기까지 설명을 시켜놓고 다른 걸 시키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유즈차를 시켰다. 그러자 주인장은 차를 마실 때 쓸 잔을 와서 골라달라고 했는데, 가게 가운데와 카운터 쪽에 각기 다른 찻잔이 줄줄이 걸려있어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했던 것이다. 나는 녹색 넝쿨 무늬가 예쁜 찻잔을 고르고, 자리에 돌아와 유즈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유즈는 … 유자였다. 주인장이 설명하느라 곤혹스러웠던 이유를 알법 했다.

가까이 앉은 두 여성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 뉴욕이 어쩌고 하는 얘기 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 곧 카레가 나왔다. 짙은 갈색에 건더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일본식 카레였다. 별미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맛은 있었다.

카레를 먹어 치우고 나니 주인장은 작은 질그릇 찻잔 같은 것을 가져다 주었는데, 안에는 떡이 들어 있었다. 이로리의 솥에서 젠자이善哉 ( 팥죽 ) 을 떠먹는 그릇이었다. 원래 팥죽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렇게 솥에서 끓인 것을 조금씩 떠먹으니 운치 있고 좋았다. 물론 실제로 맛있기도 했다. 주인장은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This is Zenzai, Red bean soup.” 이라고 설명했고, 서양인들은 이로리에서 떠다 먹는 붉은 콩 스프를 꽤 흥미로워했다. 프랑스 여성이 팥죽을 뜰 동안 솥 뚜껑을 들어주니 그녀는 미소지으며 고마워했다.

주인장은 시간이 잠깐씩 비면 미국 ( 추정 ) 여성이 안고 있는 아기 앞으로 와서 아기를 웃겨주었다. 국적이 달라도 아기를 대하는 노인들의 태도는 똑같은 모양이라 신기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프랑스인들이 가고, 그 뒤에는 가운데 앉아있던 스페인 사람들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하며 갔다. 놀랍게도 그들이 갈 때마다 주인장은 그 나라 말로 인사했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상대한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곧 유자차가 나와서 마셔봤는데, 꽤 신 편이라 설탕을 많이 쳐야 했다. 원래 일본의 유자차가 다 신 편인지, 이 가게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초가지붕 아래, 이로리 앞에 앉아서 느긋하게 유자차를 마시는 기분은 여유롭고 안온했다. 음식이 충분한 산장에서 눈보라가 그치길 기다리며 모닥불을 쬐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로리 옆에 방명록이 있어 살펴봤는데, 온갖 나라 말이 적혀있는 한편 한국어는 없기에 몇 줄을 적어놓았다.

차를 마시고 있자니 이번에는 동양인 노부부가 들어왔는데, 부인 쪽이 영어를 대단히 유창하게 구사했다. 이로리 앞에 자리 잡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기를 보더니 반색했다. 주인장이 물으니 그들은 방글라데시인이라고 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이고 늙을 수록 아기를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금발의 미국 ( 추정 ) 여성은 미소 짓더니 노부인에게 자기들은 내일 방글라데시에 갈 거라고 했다. 옆에서 대강 알아듣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신기한 인연이었다. 아무튼 그녀들은 신기해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노부인은 시라카와고에 13 년 전에 혼자 왔다가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왔다고 말했는데, 나이 들어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모습은 퍽 아름다웠다. 나는 혼자 온 자신이 언젠가 저렇게 누군가와 같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기약 없고 막연한 일이었다.

차를 다 마시고 카운터에서 계산했다. 요리와 계산은 안주인이 하는 듯, 단정한 초로의 노부인이 계산해주며 다시 한번 일본어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유자도 모르면서 칭찬을 듣기가 민망했다. 한국인도 자주 오느냐고 물으니 가끔씩 온다고 했다.  

가게를 나설 때 부부는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어로 인사했다. 나는 오늘도 즐거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는 데 행복했다.

 

( 가게 앞의 개. 멀리서 보면 인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얌전했다.)

 


( 가게 안 이로리의 모습. 이로리 앞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퍽 멋진 경험이었다.)

 

( 떡이 담긴 젠자이 그릇. 팥죽을 밥이 아니라 디저트로 먹으니 꽤 훌륭했다.)

 


( 프랑스인들이 앉아있던 창가쪽 자리. 곳곳에 시라카와고의 사진이 걸려있다.)

 


( 가게 가운데 부분. 어우선하면서도 정이 가는 멋이 있었다. 가게에는 반도 다 내놓지 못할 정도로 많은 찻잔이 있었는데, 어쩌면 찻잔 수집도 겸해서 가게를 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12 시쯤 가게를 나서서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갓쇼즈쿠리가 아닌 주택을 여럿 보았는데, 그런 주택들도 대체로 목조인데다 지은 지 제법 되어 보여서, 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 언제 만든 것인지 모를 가마쿠라かまくら가 아직 다 녹지 않고 남아있었다. 대체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 걸까 ?)

 


( 갓쇼즈쿠리 가옥 옆의 일반 주택. 여기도 가옥 앞에 수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다.)

 

좀 걷다가 신사가 있다기에 들어가보았다. 시라카와하치만白川八幡神社 신사라는, 건물 두 채만 있어 상당히 황량해보이는 신사였는데,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다카야마 시의 사쿠라야마하치만 구와 같은 계통의 신사였다.

그런데 이 심심해보이는 신사에 걸린 에마를 보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제작된 지 꽤 오래된 모 게임의 캐릭터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어 검색해보니, 이게 웬 걸, 그 게임의 배경이 바로 이 시라카와고였다. 그 게임은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 주인공이 저주와 공포에 의해 친구들을 죽이고 죽는 등 온갖 루트로 파국을 맞이하는 공포물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어서 재미있게 봤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땅이 그토록 잔혹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어쩌다 보니 거기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애니메이션도 복습하고 왔으면 좋았겠구나 싶었지만, 시라카와고는 그런 이야기 없이도 충분히 멋진 곳이라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애니메이션에서 시체가 널려있던 자리나, 고문도구가 모셔져 있어 보면 신벌을 받는 제구전 등을 구경하면서, 나는 시라카와고에서 나서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나왔다는 사실을 홍보할 일은 절대 없겠구나 싶었다.

 


( 다른 신사에 비하면 퍽 심심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어두워지면 무서워질 듯 했다.)

 


( 어느 신사보다도 캐릭터가 그려진 에마가 많았다. 그런데, 신을 모시는 곳에 이렇게 흉흉한 스토리의 캐릭터 그림을 마구 걸어놓아도 괜찮은 걸까 …)

 

신사와 주변을 보고 나니 시간이 슬슬 되었다 싶어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만남다리를 다시 건너면서, 이 강이 솜을 흘려 보내는 축제 행사가 있었던 강이고, 이 다리가 주인공이 떨어져 죽은 다리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걷다 보니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오다 말겠지 싶었는데, 바람까지 불면서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쏟아졌다. 우산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이 만일 쌓인다면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다카야마로 돌아가지 않고 마냥 눈이 쌓이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종합안내소에서 버스표를 사면서 벽에 붙어있는 브로마이드도 한 장 샀는데, 사고 보니 워낙 큰 사이즈라 집까지 가져갈 일이 걱정이었다. 주변에서 브로마이드를 사는 것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나니 곧 버스가 도착했다. 주차장 바로 옆에 민가원이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버스는 눈보라를 헤치고 달렸다. 앉아있자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서 곧 졸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보지 못한 민가원 자리가 모 게임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의 저택으로 나온 곳이었다. 그리고 마을 내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시라카와 진료소가 나오는데, 그 진료소 역시 게임에서 미모의 수상한 간호사가 나오는 진료소의 모델이었다. 1 시간만 더 있었으면 빠짐없이 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퍽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올 지 알 수 없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여행을 아쉬움 없이 잘 하려면 사전 조사를 잘 해야 하는 것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tag :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544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