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칭찬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을 꾸짖는 것은 정말 어렵다. 무엇보다 칭찬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 좋다. 성격이 어지간히 비뚤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참 잘했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이 사람은 겉으로는 칭찬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를 경멸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나, '이상하다, 이 놈이 오늘 돈이 모자른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좋은 일뿐이다. 하지만 싫은 소리를 들으면 하는 사람도 피곤하고, 듣는 사람은 당연히 더 괴롭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 "형편없군요, 다시 해오세요." 같은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싫은 소리는 평생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만도 없다.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가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서로 기분이 나빠질 각오를 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싫은 소리의 어려운 점이다. 그래서 나는 '싫은 소리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사람의 도량과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너도나도 싫은 소리는 적당히 피해 가는 것 같다. 그런 뒤에 트위터 같은 대나무 숲에 욕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게 트위터의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자주 보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욕을 하는 거라면, 그 욕을 운 좋게 그 상대가 발견하지 않는 한, 욕하는 사람이 영영 고통받으리라는 것은 분명하고,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그나저나 흔히 일본인에게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게 있어서 본심과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이라도 겉과 속이 다르고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사태를 무마할 때가 많고, 일본인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혀 꾸밈없이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대학 시절에 만났던 일본인 교수님 한 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직설적이었는데, 한 번은 발표 전에 정리한 발표문을 교수실로 가져갔더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도통 모르겠는데?', '다시 해 와'하고 돌려보냈다. 그때까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는 일본어는 허구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당시에는 눈 앞에 벼락이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깔끔하고 명쾌하게 발표를 첨삭해준 분이 없었다. 그분의 '괜히 멋있는 말을 하려고 꾸미지 말고 요점만 정리해라' 라는 가르침은 그 뒤로도 두고두고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내가 풀이 죽어 교수실을 나갈 때는 '수고했으니 사탕을 줘야지' 하고 사탕도 쥐어주셨고, 수정안으로 발표를 했을 때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네.' 하고 칭찬도 잊지 않았다. 실로 채찍과 당근을 쓸 줄 아는, 멋진 분이었다. 싫은 소리라는 게 그렇게 시원스럽고 멋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나도 싫은 소리를 잘하게 되었다-이렇게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 역시 아직도 싫은 소리를 잘하지는 못한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그렇다고 주변에서 누가 뭘 잘못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싫은 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시간이 지난다고 지금보다 월등히 잘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에 비해 어릴 때부터 싫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싫은 소리를 잘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