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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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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보라보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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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펠트의 최신작 보라보라는 알레아와 슈테판 펠트가 최근 맛들인 주사위 게임으로, 주사위를 굴린 뒤 이것을 일꾼처럼 써서 진행되는 게임입니다. 이 시스템의 골자는 주사위를 액션칸에 배치해서 액션을 수행하는데, 이때 눈이 액션칸에 이미 놓인 주사위의 눈 미만이어야만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수를 먼저 놓으면 남들이 들어오기 힘들어지는데, 대신 이렇게 작은 숫자를 넣을 경우 그 액션 내에서 선택폭이 굉장히 줄어듭니다. 간단하고 좋은 딜레마를 가진 기본 시스템입니다.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액션에는 확장, 여성 타일 받기, 남성 타일 받기, 조력자, 사원, 건설, 낚시가 있습니다. 확장은 개인 보드의 오두막을 보드 위에 올리는 것인데, 게임이 끝나면 오두막의 자리에 따라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이렇게 개인 보드의 칸이 개방되면 여기 주민 타일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민 타일을 받는 액션이 바로 여성 타일 받기, 남성 타일 받기고, 조력자 액션은 주사위 눈을 액션포인트처럼 사용해서 주민을 활성화 하거나, 신 카드를 뽑거나 건축 자재를 받는 등 여러가지 행동을 할 수 있는 액션입니다. 사원은 이런 테마의 게임에 흔히 있는 종교 관계 액션으로, 사제를 트랙에 올려 지속적으로 점수를 받는 것입니다. 건설은 개인 보드에 모아놓은 자재 중 인접한 둘을 사용해서 정체 불명의 건물을 짓는 것인데, 건설을 하면 라운드가 이를 수록 많은 점수를 받고, 그리고 불 보너스를 받습니다. 불 보너스란 또 무엇인가 하면 신 카드/공물 + 문신/껍데기를 받는 것인데, 이것들이 또 뭔지 하나씩 설명을 하죠.
우선 신 카드는 게임 중의 여러가지 제약 사항을 극복하게 해주는 카드들로, 액션칸에 주사위를 배치할 때 주사위 눈의 제약을 무시하게 해 주기도 하고, 주사위 눈을 6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오두막 확장 뒤에 점수를 받게 해주기도 하고, 주민들의 능력을 2배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임무를 수행할 때 달성 조건을 약화시켜주기도 합니다. 공물은 이 카드들을 사용할 때 필요한 자원입니다. 문신은 한 라운드 동안 일시적으로 유지되는 트랙으로, 많이 나가 있으면 많은 점수를 받고, 턴 순서를 먼저 받게 됩니다. 껍데기는 라운드가 끝날 때 장신구를 사는 데 쓰이는 자원입니다.
다시 액션으로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낚시 액션은 도무지 할 일이 없을 때 그냥 승점 2점을 받는 액션입니다.
이렇게 모든 플레이어가 주사위를 써서 액션을 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제는 자기 개인 보드에 있는 주민의 능력을 쓰게 됩니다. 주민들은 모두 왼쪽과 오른쪽에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왼쪽은 조력자 액션으로 주민을 활성화 함으로써 쓰는 일회적인 능력이고, 오른쪽이 이 단계에서 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때 남자 하나, 여자 하나의 능력을 쓰며, 같은 타일을 여럿 가지고 있으면 능력이 강화됩니다.
그런 뒤에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 문신 트랙에 따라 점수를 받고, 턴 순서가 바뀌고, 사제의 숫자와 라운드에 따라 점수를 받고, 턴 순서에 따라 미리 라운드별로 세팅된 장신구들 중 원하는 것을 삽니다. 장신구에는 특별한 기능이 없고, 게임이 끝나면 적힌만큼의 점수를 줍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제 또 턴 순서에 따라 자기가 가진 임무 타일 셋 중 하나를 해결하거나 포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게임에는 임무 타일이라는 것까지 있어서, 조건을 충족하면 6점을, 신 카드로 조건을 하나 낮추면 4점을 받습니다. 그런 뒤에 보드에 나온 임무 중 하나를 골라서 가져가는 것이죠.
이렇게 하고 나면 비로소 한 라운드가 끝나고, 이렇게 총 6라운드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게임이 끝나면 각 플레이어는 가지고 있는 임무를 모두 수행하고, 사용하지 않은 신 타일(사원 단계에서 가장 많은 사제를 배치한 플레이어가 받는 것으로, 공물을 쓰지 않고 아무 신 카드로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당 2점, 보드 위의 건물의 위치에 따라 개별적인 점수, 그리고 구입한 장신구에 따른 점수를 받습니다.
그 뒤에 이제 업적이라고 할만한 보너스 점수를 계산하는데, 이게 아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게임 중 받은 임무를 모두 수행했거나, 장신구를 매 라운드 샀거나, 가지고 있는 건물을 다 지었거나, 건물 짓는 칸을 모두 채웠거나, 자기 오두막을 모두 확장에 썼거나, 그렇게 난 칸을 모두 주민으로 채워야 6점을 받는데, 조건이 조금이라도 미달되면 단 1점도 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게임 후반이 될 수록 한숨만 푹푹 쉬게 되더군요.



간신히 게임 방법을 거의 설명했는데, 이렇게 설명하기 어려운 게임은 처음이군요. 어떤 게임을 처음 할 때마다 '이 게임을 초보자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는데, 보라보라는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더러, 일단 저 자신부터 매뉴얼을 옆에 놓고 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일단 게임 구성품에는 완전히 아이콘밖에 적혀있지 않은데 매뉴얼에는 그림이 얼마 없어서 히에로글리프 해독하듯 이 아이콘은 이게 틀림 없을 거라는 토론을 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게다가 레이아웃이 불친절해서 아그리콜라 매뉴얼의 악몽이 되살아날 지경이었습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보라보라를 가르치느니 진입장벽의 교과서라 불리는 레이스 포 더 갤럭시(이하 레포갤)를 가르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레포갤은 나눠줄 레퍼런스 시트라도 들어있죠.

게임은 복잡한만큼 재미 있습니다.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주사위 배치 시스템 하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을 견제하는 수를 골라야 하고, 자기가 플레이하고 싶은 방향이나 임무 달성을 위해 골머리를 썩혀야 해서 항상 쉴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임무와 남녀 타일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플레이가 변화하기 때문에 여러번 하면서 탐구할만한 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도무지 이 게임을 좋아할 수 없는데, 일단 테마와의 연관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테마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게임이 한둘은 아니고 연관성이 보드게임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보라보라의 경우 좀더 잘 포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부분도 보이고, 시스템을 조정하다보니 아귀가 맞지 않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보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아그리콜라에도 굉장히 많은 액션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액션들은 모두 테마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익힐 필요가 없습니다. 가령 밭을 갈아놓은 뒤에 씨를 뿌리고 수확해서 빵을 굽는다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이 액션들의 연관성을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 보라보라는 아그리콜라보다 훨씬 복잡하면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족의 새 거주지를 만드는 데는 액션말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데(심지어 이로써 새 자원을 얻기까지 합니다), 뭔지도 모를 정체 불명의 건물을 짓는데는 자원이 둘이나 필요합니다. 게다가 거주지는 열 둘이나 만들 수 있는데, 건물은 여섯채 밖에 지을 수 없습니다. 여섯개의 건물은 지으려면 각기 다른 노력이 필요한데 내용은 똑같습니다. 게다가 지으면 불 보너스라는 정체 불명의 보너스를 주는 이 건물은 대체 정체가 뭐죠? 이 건물이 만일 사원이고, 사원을 지음으로써 신의 총애를 받았다는 식으로 흔해빠진 설명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보라보라는 그런 뻔한 설명조차 전혀 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건물일 뿐입니다(gebouwenkaartje: 건물타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스템이 일정한 레일을 깔아두고 여기에 대비해서 잡다한 일거리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간략화하면 "이따가 A, B, C라는 이벤트가 일어날 거고 이때 a, b, c라는 자원을 쓰면 점수를 얻을 수 있으니까 알아서 하고 싶은걸 준비하도록" 이라는 식입니다. 그리고 각 자원들은 서로 교환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고 금전이라는 기초적인 형태로 환원할 수도 없습니다. 껍데기는 장신구를 살 때 밖에 쓸 수 없고, 공물은 신 카드를 쓸 때 밖에 쓸 수 없고, 자재는 건물을 지을 때 밖에 쓸 수 없습니다. 사제도 처음부터 사제가 되기로 운명지어진 마커가 따로 있고 주민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자재가 있으면 이것을 팔아서 돈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돈으로 자재를 살 수도 있습니다. 주민이 있으면 이것을 가져다 사제로 만드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보라보라에서는 그렇지 않죠. 이러한 구조를 보고 저는 슈테판 펠트의 예전작 진년을 떠올렸습니다. 진년에서도 이벤트가 쭉 결정되고 이에 대비하여 액션을 선택하는데, 남이 선택한 액션을 고르려면 손해를 봐야 하고, 액션을 통해 이벤트에 대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상호 관련성이 없는 개별적 자원을 정해진 타이밍에 소모하는 시스템을 저는 "복선 회수 시스템"이라고 부르고자 하는데, 많은 디자이너가 선호하여 놓지 못하는 시스템이 하나쯤 있듯이 슈테판 펠트가 선호하는 시스템은 주사위 이용과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보라보라는 슈테판 펠트의 적자인 셈이죠. 아무튼 이 복선 회수 시스템의 가치는 두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상당히 높아 보이는데, 사람들의 평이 어떻든간에 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한 보라보라에서는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해주는 방식으로 인간의 "손해에 대한 거부감"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비슷하게 임무 수행을 다루고 있는 "로즈 오브 워터딥(이하 워터딥)"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워터딥의 플레이 논리는 아주 간단해서,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군주 카드에 적힌 퀘스트만 골라서 하고 싶게 되어 있습니다. 군주 카드에 적힌 계통의 퀘스트를 하면 그만큼 점수를 줍니다. 빨리 빨리 많이 하면 그만큼 좋지만 좀 늦게 처리하거나 못한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죠. 반면 보라보라에서는 정해진 단계에 퀘스트를 처리하지 못하면 폐기해야 하는 데다가 하나라도 폐기하면 최종 보너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같은 보너스지만 이 두 게임의 어조는 정반대입니다. 워터딥은 공을 따져서 그만큼 점수를 주지만 보라보라는 실을 따져서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있던 걸 빼앗는 것도 아닌데 플레이어는 이 조건을 하나라도 달성하지 못하는 순간 맥이 풀리게 됩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아이에게 전과목 100점을 맞으면 닌텐도 64를 사주겠다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입니다. 만일 이 최종 보너스가 "자신이 수행한 퀘스트 하나당 1점 추가"였으면 플레이어들의 마음은 훨씬 편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매달리지는 않겠죠. 같은 보너스라도 주는 방식을 이렇게 해서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센스는 분명 대단합니다. 하지만 뭔가를 다하면 보너스를 주고 하나라도 못하면 주지 않는 이 방식은 게임적으로 훌륭하나 보라보라라는 테마 내에서 합당한 맥락을 발견할 수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플레이를 거듭하면 이 보너스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체득하여 달관할 수 있겠지만 첫 인상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꽤나 길게 썼는데, 그렇다고 해서 보라보라가 형편없는 게임이라는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문은 어디까지나 보라보라가 제가 좋아하기 힘든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지, 보라보라가 언어도단적이고 게임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보라는 디자인에 얼마나 수고를 들였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잘 짜여있는 게임이고, 그만큼 재미있습니다. 이런 불평을 쏟아놓은 저라도 다시 하면 아마 재미있게 할 겁니다. 하지만 사람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다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보라보라도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제가 좋아할 수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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