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싫어하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은 있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나물을 싫어한다. 먹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것이다.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경멸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나물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 특히 시금치는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를 이끌듯이 나물의 선봉장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서 특히 혐오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서 뽀빠이가 강해지는 이유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시금치관에도 두번의 충격과 혼돈이 있었는데, 한 번은 로마에 갔을 때였고, 한 번은 후배의 집들이에 갔을 때였다(정확히는 어제였다). 로마의 레스토랑에서는 시금치가 샐러드처럼 나왔는데, 그때는 무엇보다 시금치가 멀쩡한 이파리를 가진 식물이라는데 충격을 받았다. 흔히 파인애플을 나무 위에서 열리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그때까지 시금치를 밧줄처럼 꼬인, 무슨 덩굴식물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시금치는 싫어하지만 샐러드는 좋아할 수 있다. 계피는 싫지만 시나몬은 좋아한다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접시는 깔끔하게 비웠다.
그리고 두번째가 후배의 집들이에서 먹은 시금치였는데, 그건 정말 의심할 여지없는 나물이었다. 나물의 정점에 선, 나물 중의 나물이었다. 따라서 평소 같으면 절대 손을 대지 않았겠지만, 나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면 아무리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먹을 수만 있을 경우 먹는 시늉이라도 하는 가식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맛을 쬐끔만 보았다. 그런데 먹고 보니 맛있었다. 내가 아는 나물이란 모두 막 감아놓은 노끈처럼 질기고 풀비린내가 나는 음식이라 껌처럼 무한정 질겅거리게 되는 음식이었는데(어릴 때는 정말 목으로 넘어가질 않아서 녹즙이 될 때까지 씹곤 했다), 그 시금치는 부드럽고 향긋했다. 마치 샐러드를 먹는 느낌이었다. 나물에도 요리하는 사람 제각각의 철학이 들어가서 저마다 다른 나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집의 나물 요리 방법은 나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같은 음식도 역시 여러곳에서 먹어봐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나물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자문해보지만 아직은 그런 것 같지 않다. 비유하자면,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해와서 막역한 사이였던 소꿉친구를 처음으로 이성으로 느끼게 된 것과 비슷하다. 갑자기 이런 관계의 변화는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내가 과연 나물을 좋아할 수 있을까? 이제와서 갑자기 나물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나물이 나를 좋아해 줄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동안 나물을 홀대해온 자신이 원망스럽지만, 앞으로도 우리 둘 앞에 놓인 시간은 방대하니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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