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튼 그 메신저에서 탈퇴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지긋지긋한 도심에서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섬에 온 기분이다. 메신저를 아예 안 쓸 수가 없어서 그 메신저 다음으로 많이들 쓰는 메신저를 깔기도 했고 애초에 그냥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만 해도 간단히 연락이 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그 메신저가 아니면 연락하지 않는다. 마치 기본 문자메시지나 다른 서비스로 말을 거는 건 유난스러운 비일상의 영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왜 계정을 없앴느냐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이런 계정 폭파의 가장 짜릿한 점이란 주변에선 좀 불편할지 모르나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이런 사람이라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실 메신저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는 다른 메신저를 쓰면 그만이다. 불편한 점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지긋지긋한 게임 초대도, 마음에도 없는 단체 채팅도 안녕이고 메시지를 왜 확인하지 않느냐는 구박도 끝이다. 연락이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연락만을 주고받을 수 있다. 계정을 없애버린 뒤에야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순간의 연락들이 얼마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나 실감했다. 연락, 소통, 마케팅은 꽤 멋진 말이지만 그것도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나 반길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그걸 쓰지 않는 사람이 소외되거나 사용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면 슬슬 문제가 생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피처 폰을 쓰는 사람을 보고 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스마트폰을 쓰면 반드시 특정 모바일 메신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가령 너 하나 때문에 우리가 메신저 채팅을 못 하니까 빨리 스마트폰을 사서 앱을 설치하라는 식의 압력이 발생하면 그건 일종의 집단주의가 될 것이다. 다들 무슨 게임기가 있으니까 너도 사야 끼워주겠다는 것과 같은, 유치하지만 치명적인 논리다. 스마트폰이나 메신저를 쓰지 않는 게 딱히 불을 쓸 줄 몰라서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수준으로 낙후된 건 아니니까 쓰고 싶은 사람만 쓰면 되지 않을까? 기술적 대세에 편승하지 않음으로써 다양성을 수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을 쫓아가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새로 쓰기 시작한 메신저는 썩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이 얼마 없고, 스티커는 다양하다. 트위터처럼 채팅이 아닌 소식이 올라오는, '타임라인'이라는 수상한 항목이 있긴 해도 그건 꺼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로서는 비상용 메신저로 이만한 게 없다. 유행이 돌고 돌면 언젠가 이 서비스도 사람들이 북적대고 시답잖은 메시지가 떠돌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또 다른 서비스를 찾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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