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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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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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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어학원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학원을 다녀야 하는 시대라 그렇지 않으리라고 짐작하지만, 90년대 초는 남자아이란 모름지기 어릴 때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하지만 나는 운동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도 어쩐지 운동을 시키는데 열성적이지 않았으므로 태권도와는 아무런 연이 없었다. 대신 나는 음악에 관련된 학원을 여기저기 다녔다. 

일단은 피아노가 기본이었다. 아담한 공간을 합판으로 나눠 피아노와 의자만 간신히 들어갈 만한 연습실이 넷 있는 학원에 다녔는데, 그곳에 다니게 된 이유는 오로지 집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한 일은 간단했다. 기초적인 음악 공부를 하고, 연습량이 적힌 개인 기록부를 받아서 레슨을 받고 한 곡을 정해진 연습량만큼 반복한다. 중간중간 피곤하면 나와서 기독교계 만화 잡지를 뒤적이거나 친구들과 떠들고 불량식품을 나눠먹었지만, 학원 안에서 특별한 추억은 없었고 연습은 지루하기만 했다. 선생님은 60대 정도의 여성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진화론을 믿지 않았다. 나는 연습하다 지치면 기록부에 연습량을 속여서 체크하곤 했는데, 선생님은 그걸 알고도 혼내지 않았다. 대신 연습량을 영구히 늘렸는데, 당연히 나는 끝없이 연습량을 속여야 했다. 그때 그냥 연습량을 속이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면 나도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피아노 연습은 내게 지루한 노동에 가까웠고, 결국 체르니에 접어들고 나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흔히 어릴 때 배워둔 것은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적어도 피아노만은 거기서 예외인지 나는 피아노 치는 법을 순식간에 깨끗이 잊어버렸다. 

다음으로는 문화회관에서 단소를 배웠다. ‘학교에서 가끔 단소 시험을 보니까’가 이유였다. 선생님은 장년의 머리가 벗어진 남성이었고, 자상한 분이었다. 우리는 광활할 정도로 넓은 강의실 바닥에 앉아 ‘임임중임중태…’하고 계이름을 외우고 단소를 불었고, 그러다 쉬는 시간에는 강의실 구석에 쌓여있는 책상 위에 올라가고 놀았다. 몇 개월을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얇은 책 한 권을 떼었고, 예상대로 그 뒤로 두고두고 시험에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시험 볼 일이 없어지자 소리를 내는 법 말고는 모조리 잊어버렸다. 

같은 문화회관에서 하모니카도 배웠다. 이번에는 ‘장기 자랑에 쓸만하니까’가 이유였다. 젊고 몸집이 큰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입담이 좋고 하모니카를 귀신같이 잘 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라고 딱히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분은 유독 어려운 기교가 필요한 곡을 많이 보여준 것이다. 성격도 자유분방해서 나가 놀고 싶은 사람은 나가 놀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가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같이 다니던 친구가 나가자고 졸랐으므로 나가서 마음에도 없는 축구를 했다. 하루는 그러고 돌아오니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데리러 왔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넌 이제 죽었다’며 웃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에 대한 인간적 호감은 그야말로 단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배운 하모니카는 다행히도 고등학교 자유 악기 시험 때 유용하게 쓰이긴 했지만, 특별히 애착이 남지는 않았다. 

그 뒤로는 악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기타를 독학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디서 클래식 기타 하나를 얻어온 게 계기였는데, 마침 포크송을 듣던 때라 스스로 교재를 사고 악보를 구해다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다(기타를 치면 당연히 굳은살이 박이기 마련이지만). 그리하여 포크 기타를 치고, 몇 곡은 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까지 불 수 있게 되고(하모니카를 배운 게 이때 도움이 되긴 했다), 친구들에게 기초를 가르치기도 하고, 그러다 ‘공부해야 하는 우리 애에게 괜한 걸 가르치지 말라’는 학부모의 전화도 받고, 대학교 때는 일렉기타와 앰프까지 장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 돈을 들여 전문 기관의 교육을 받은 악기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독학한 기타에만 빠져든 이유는, 단연코 ‘음악을 즐기고 있었는가 아닌가’의 차이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고 가장 많이 들었던 건 고등학교 때였으니까(야자 시간의 유일한 낙이었다), 정작 이런저런 악기들을 배우던 초등학교 때는 별 관심도 없는 것들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었던 셈이다. 치고 싶은 곡이 없으니 악기에 정이 갈 턱이 없고, 정이 가지 않으니 손도 대지 않아 자연히 잊어버릴 수밖에. 

그런 한편으로 기타를 잡았을 때쯤에는 치고 싶은 곡이 널려 있었다. 기타는 소리를 내는 것부터 꽤 어려운 악기인 데다 처음에는 신체적인 고통마저 수반하지만, F코드만 극복하면 그 뒤로는 온갖 코드를 꿰고 운지법에 통달하지 않아도 쉽게 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곡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다. 나는 영화 쉬리로 유명해진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이나 신승훈의 ‘I believe’, 김광석의 곡들을 치면서 노래도 하곤 했는데, 자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인생에 한 번쯤은 꼭 해 봐야 할 만큼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깨닫고 나서야 새 곡을 연습하는 게 고역이 아니라 즐거운 도전이 되는 것이라고, 기타를 치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써놓고도 사실 언제부턴가 놀기 바빠서 기타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지만, 여유만 있다면 하루에 한 곡 정도는 치면서 베짱이처럼 사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 싶다.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싶다. 이런저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쉽고 멋진 피아노곡이 많아서 ‘나도 연습만 좀 하면…’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의욕이 샘솟곤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흰머리 얹기 전에 피아노를 장만해서 쳐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뒤늦게야 깨닫긴 했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남에게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확고한 감각을 선사하기 때문에 멋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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