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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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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영업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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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발견하면 남에게도 권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하면 딱히 내가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닌데 마냥 즐거워지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득을 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과 내가 더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TV에서 하는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많은 콘텐츠를 접하는 편이라 나 역시 남에게 이것저것 권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혹자는 이것을 ‘영업'이라고 하는데, 이 영업도 가만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영업에 성공하려면 상대의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고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인데, 그것도 모르고 “쏘우” 따위를 추천하면 이건 멱살 잡혀도 할 말이 없는 짓이다. 그러니 상대의 취향을 최대한 세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장르부터 시작해서 감독, 작가, 배우, 성우, 문체, 그림체까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의 정보와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파악하고 얼마나 매치되는지를 알아야 “죠니 뎁을 좋아하는데 ‘쇼콜라'를 아직 안 봤다고? 재밌는데 한 번 봐봐.” 하고 말할 수 있다. 
정보가 확보되었다면 다음으로는 진입장벽을 제거해줄 필요가 있다. 진입장벽이란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고, 단순한 귀찮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아무리 일본의 다카야마가 멋진 곳이라고 소개하고 심지어 여행기를 써도 “그래? 그럼 나도 가봐야지!” 하고 갈 사람은 없다. 여행은 시간과 돈을 종합적으로 소모하는 행위니까 당연한 일이다. 반면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돈까스 집이 괜찮더라.”라는 영업은 간단히 성공한다. 사람은 때가 되면 좋든 싫든 밥을 먹어야 하고, 모두들 대체로 자기가 늘 먹던 것에 질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로 영업 거리가 되는 콘텐츠 - 책이나 영화, 혹은 게임이라면 어떨까? 이것들은 막대한 돈과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소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어느 정도의 돈이나 시간, 혹은 노동을 수반해야만 접할 수 있다. 책은 그 책을 사든지 빌리든지 해야 볼 수 있고, 영화는 영화관에 가거나, 개봉 중이 아니라면 기록된 매체를 찾아야 하며, 게임은 구해서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영업은 이러한 진입장벽들을 제거해줌으로써 성공률이 높아진다. 책은 빌려주고, 영화는 파일을 보내거나 DVD를 빌려주거나 아니면 같이 보러 가야 하고, 게임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재미있는지 시연하고 하는 법까지 알려줘야 한다. 
요컨대 ‘떠먹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떠먹여 주기’의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그 자리에서 같이 즐기는 것이다. 함께 즐기면 뭐가 어떻게 좋은지도 바로 얘기할 수 있고, 상대의 반응을 살필 수도 있으며, 공감대도 더 강하게 형성되니까 더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자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재밌던데 너도 한 번 봐라” 보다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 나 또 볼 건데 같이 볼래?”가 훨씬 성공률도 높고 바람직하다.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데다, 내가 시간과 돈을 들이겠다는 게 가치에 대한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보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다. 물론 정보 부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실패가 될 확률도 적지 않지만. 

문제는 책이다. 책이란 근본적으로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정신활동이라 도통 동시에 즐길 수가 없다. 화보나 동화책 정도라면 모를까, ‘읽어야’하는 텍스트나 만화라면 사이좋게 둘이 나란히 앉아서 즐긴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이런 경우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시 가장 영업하기 쉬운 것은 영화고, 그다음으로 장시간이 걸리는 게임이나 시리즈물, 마지막이 책인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꿰어차고 떠먹일 준비까지 되었다고 영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많은 영업에 실패했고, 또 수많은 영업이 실패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뭘 추천받았다고 기분이 나쁠 이유가 있나 싶지만, 생각보다 이런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너 ‘a' 좋아하지? 그럼 ‘b' 꼭 봐라, 네가 완전 좋아할 걸?”
이런 식의 영업이 성공하면 다행한 일이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그다지 가망이 없다. a가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어디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 가령 배우나 감독, 작가, 장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방법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어디서 자랑하기는 뭐한 것이라면 이 영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불륜’, ‘토막살인’, ‘안경 미소녀’, ‘집사’, ‘메이드' 등이라면 이 영업멘트를 들은 사람은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특히 영업자가 대상과 a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라면 십중팔구 기분이 상한다. 타자화된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게 불쾌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여?’ 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서 "당신은 동물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으니 수의사와 결혼하면 되겠군요"라는 식의 말을 듣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보려던 것도 안 보게 된다. 
때문에 영업 멘트는 상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거나 확인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 마법소녀가 좋다고? 나도 완전 좋아하는데! 그럼 ‘카드캡터 체리’ 봤어? 안 봤으면 봐봐, 대박이야!” 
이런 대화가 실제로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영업의 방법으로는 바람직하다. 실제로 상업적 영업을 하는 점원들이 흔히 "저도 써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라는 식의 말을 해대는 것도, 유치원 선생님이 "그래? 그럼 선생님도 같이 해줄까?"라고 지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이가 몇이든 목적이 무엇이든 공감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영업 상대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는 없는데도 권하고 싶은 경우도 분명 있다. 영업 상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수록 이런 경우가 잦다. ‘나는 별로지만 누구는 좋아할 것 같다’ 싶은 게 바로 이런 경우인데, 이런 경우는 상대에 대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도 그걸 자랑하듯이 드러내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에 ‘카드캡터 체리’를 봤는데, 마법소녀가 꽤 예쁘게 나오더라구.”
정도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말하는 게 좋다. 꼭 보라는 식으로 말해도 그 노력이 허사가 되니까 지나가는 투로 말해야 한다. 만일 상대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면 상대가 자세한 정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럼 그때 그것이 왜 좋은지 전달하면 된다. 이쯤 되면 ‘네가 좋아할 거야’라는 말을 해도 나쁘지는 않지만, 가급적 피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올바른 영업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해봤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말 뿐이라 , 나라고 사람들에게 뭘 추천해주는 족족 다들 받아들고 좋다고 환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패할 때가 많아서 요즘은 말로 하는 영업을 거의 그만둔 상태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신비한 것이라 때로는 남들이 좋다고 떠드는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될 사람에게 되는 걸 영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영업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고 또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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