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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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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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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니까 브래지어를 할 일은 없지만(세상에는 남성용 브래지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볼 일까지 전혀 없지는 않다. 화상으로 접하기도 하고, 세탁물로 접하기도 하고, 타인이 착용한 의복으로 접하기도 한다. 
그런 브래지어와의 조우에 대해 자신이 어떤 입장인가 생각해보면, 브래지어 최고! 라고 떠들고 다닐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불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이다. 딱히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로 잡혀가지는 않겠지. 
하지만 브래지어와의 조우 중 절망적으로 난감한 순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여성의 브래지어 끈이 보이는 때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못 본 셈 치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지인이라면 영 불안해진다. 
그동안 이럴 때는 조용히 말을 해 주는 것이 매너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속옷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대로 놔두면 한참 나중에서야 거울을 보고 자신이 민망한 상태로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아 수치스러운 기분이 될지도 모른다. 지퍼를 열고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와 비슷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서 나아가, 뻔히 보고도 알려주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경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끈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도 이만저만 민망한 일이 아닌데다가, 여름이 되면 상황이 좀더 복잡해진다. 남에게 보일 것을 상정하고 갈아 끼우는, 패셔너블한 끈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민소매 옷을 입은 상태에서 그런 끈을 보이고 있다면 그건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는 것처럼 의도된 패션이니까 딱히 언급할 이유가 없지만(아무리 기똥차게 패셔너블해도 칭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티셔츠를 입은 상태에서 끈이 보인다면 그때는 몇 가지 판단을 거쳐야 한다. 

1.끈은 패션을 위한 것인가? 
예 > 입을 다문다. 
아니오 > 2번 항목.

2.끈의 노출은 의도된 것인가?
예 > 입을 다문다.
아니오 > 3번 항목.

3.상대는 끈의 노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사람인가?
예 > 입을 다문다.
아니오 > 4번 항목.

4. 노출을 지적할 것인가?
예 > “보여요! 끈이 보입니다!"
아니오 >  모른척 한다.

이 판단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판단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브래지어를 산 적도 해 본 적도 없으니 그것이 착용 되는 방식이나 패션으로서 소비 되는 방식에 대해 알 턱이 없고, 성별도 다르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길도 없다. 결국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지적하는 셈인데, 이런 판단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괜한 참견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거나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인데 그것이 잘못인 것처럼 지적하면, 전근대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찢어진 청바지를 기워놓는 할머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어떤 학생이 가방을 훤히 연 상태로 버스를 기다고 있길래 용감하게 가르쳐주었더니 “네.” 하고 끝난 적이 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열고 있었던 것이다. 은근히 무안한 상황이었다. 가방만 해도 그런데, 속옷이면 오죽할까. 
예전에 서구사회에서 산 경험이 있는 친구가, 외국에 있을 때는 끈이 보이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 지적해서 번거롭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맞는 말이다. 속옷 좀 보인다고 현대사회의 윤리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니까, 다들 그냥 편하게 살면 서로 편하고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남대문을 열고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의 민망함을 떠올려보면 역시 좌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그것이 민망할 수 있다면, 나 한 명이 조금 부끄러운 것으로 상대가 느낄 수 있을 더 큰 민망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 아닌가? 
여기서 얘기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누군가에게는 브래지어의 끈도 속옷이므로 보이면 민망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브래지어의 끈은 브래지어의 일부지만 속옷은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가치관의 문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지적을 하고, 또 많은 지적을 당한다. 그리고 이 지적이 괜한 참견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선의로 느껴질 때는 상대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이 일치할 때뿐이다. 갈수록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를 꼰대라고 생각하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의 인간관계가 점차 피상적인 것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상대의 가치관을 파악하고 알맞은 지적을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얘기가 쓸데없이 거창해졌지만, 아무튼 요즘 들어서는 그런 지적이 오히려 불쾌감을 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는 생각에 뭐가 보이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걸로 방향을 바꾸었다. 정말, 끈 좀 보인다고 가정이나 사회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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