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커피를 입에 대기만 하면 두드러기가 생긴다든가 발작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정도는 아니라, 마실 수도 있고 마시면 맛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조금 마시고 나면 어쩐지 속이 거북하고 소화가 안 되는 듯한 불쾌감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마실 수 있는 커피가 한 종류쯤은 있겠지 싶어 이것저것 시험해보았는데, 별 차이는 없었다. 또 마시다 보면 몸이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내장을 학대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다 한들 딱히 엄청난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라, 바보스러워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실 수 없어도 카페는 꽤 좋아한다. 카페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가 무엇 때문에 형성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카페에 들어서면 그런 안정감을 느낀다. 마치 폭설이 내리는 산 속을 헤매다 발견한 산장에 들어선 것처럼 한시름 놓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카페의 적당히 어두운 조명 때문일지도 모른다. 햇볕이 내리쬐거나 조명이 너무 밝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밝은 빛은 분명 아름답고 은혜로운 것이지만, 동시에 낮과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낮은 노동하는 시간이고, 숨을 수 없는, 수많은 관계에 노출되며 폭로되고 탄로나는 시간이다. 밝은 빛이 있는 한 나는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때문에 노랗고 어두운 조명이 좋다. 그런 조명 아래서 나는 어둠 속에서 촛불이나 모닥불 같은, 진짜 불을 쬐는 기분을 느낀다. 진짜 따뜻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마음은 따뜻해진다. 언제까지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당장은 발을 뻗고 자도 될 것 같은 은밀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에서 밤사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다.
어쩌면 카페의 인테리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많은 카페가 내장을 목재, 혹은 그와 비슷한 소재로 하고 있고, 그런 소재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나는 역시 딱히 이유 없는 따뜻함을 느낀다. 목재에서는 돌이나 쇠나 플라스틱에서 느낄 수 없는, 신비한 안식을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죽어서 가공된 뒤에도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카페에 놓인 몇 가지 소품들도 좋다. 그것이 블록이든 장난감이든, 낡은 여행 가방이나 타자기든, 영화 포스터든 신기하게도 카페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마 그 공간을 꾸민 사람에 대한 어떤 맥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카페의 편안함은 앞에 커피잔을 두고 책을 읽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도 없는 카페보다는 몇 자리가 차 있는 카페가 좋고, 카페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이 가득한 카페보다는 사람이 몇 명만 있는 카페가 좋다. 사람이 몇 명만 있는 카페는 사람들이 이따금 와서 머무는 간이역처럼 고즈넉하다. 그렇게 머무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좋다. 그런 카페는 정말 세상에서 동떨어진 별개의 공간으로,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카페의 소리 때문에 카페가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와 배경음은 들으려 하면 들리지만 그러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혼자가 되고 싶어 카페에 가면서도 카페에서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 그 공간에 속해있음을 확인하는 감정은 모순되어 있지만, 이 모순은 혼자 있어 자유로운 집안에서 적적함을 느껴 티비나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아니면, 정말 어쩌면 카페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란 카페라는 공간이 그곳을 관장하는 주인의 공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이 담당하고 운영하는 카페는 그가 나에게 열어준 그의 공간이고, 그의 세계다. 타인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처럼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거부당하는 것이 두려워 각자의 고치를 만들고 사는 세상이지만,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을 시키는 것만으로 타인의 공간에 들어가, 그 공간으로 구현된 시간과 꿈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 공유가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아주 희미한 정도로 혼자가 아니고, 아주 약간은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 부담 없는 희미함은 카페에서밖에 누릴 수 없다.
요즘은 좀처럼 카페에 가지 못하지만, 가끔씩 견딜 수 없이 카페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 카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소박한 행복 때문일 텐데, 이런 카페를 찾기도 쉽지 않다. 시내 어딜 가든 카페가 들어서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마음의 안식처를 필요로 하지만,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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