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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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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정체성을 찾는 질풍노도의 가면무도회- 마스커레이드(마스카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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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carade

 

마스커레이드는 시타델로 아주 친근한 디자이너 브루노 파이두티의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가면무도회를 배경으로 한 기억/추리/블러프/이능력물이라고 보시면 되겠는데, 게임의 목적은 가장 먼저 13원을 모으거나, 누군가 파산했을 때 가장 많은 돈을 보유하는 것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매뉴얼의 세팅에 따라 게임에 사용될 직업 카드들을 골라놓습니다. 세팅에는 기본 세팅과 랜덤 세팅이 있는데, 랜덤 세팅을 할 때는 법관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카드들의 1/3이상이 은행에서 돈을 가져오는 카드여야 합니다. 완전 랜덤으로 했다가는 플레이어들이 가진 돈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 수가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각 플레이어는 이렇게 골라놓은 카드 중 한 장과 6원을 받고 게임을 시작하는데, 게임을 시작하면 우선  모든 플레이어들이 받은 카드를 공개해서, 시작할 때 누가 어떤 직업으로 시작했는지 확인합니다. 확인이 끝나면 뒤집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턴에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히 세 가지가 있습니다. 

 

1.카드 바꾸기/안바꾸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데, 이 액션이 바로 이 게임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이 액션을 선택한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 한 명을 선택해서 그의 카드와 자신의 카드를 들고, 앞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테이블 밑으로 내린 다음 카드를 바꾸거나 바꾸는 척만 한 뒤에 다시 돌려놓습니다. 카드가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는 오로지 자신만 알 수 있는 것이죠. 

(게임을 시작하고 첫 네 턴 동안은 이 액션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전 플레이어의 턴에 자신의 카드가 공개되었다면 역시 이 액션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2.자신의 카드 보기

좀처럼 하지 않는 액션이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위 액션이 반복되어 자기가 대체 뭔지 짐작도 안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럴 때는 턴을 소모해서 혼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자신의 직업 선언

위 액션들이 준비 과정이라면 이 액션은 승점(돈)을 얻는 구체적인 액션입니다. 이 액션을 선택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카드를 공개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그 왼쪽 플레이어부터 차례로 자기야말로 그 직업이라고 선언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마녀의 항아리(마녀의 물약)"와도 비슷한 모습이죠.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그 직업이라고 선언을 한 플레이어가 여러 명이라면 그 플레이어들은 모두 각자의 직업을 공개합니다. 그 결과 거짓말을 한 플레이어는 법정에 벌금으로 1원씩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그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만이 그 직업의 능력을 발동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카드를 공개할 필요 없이 그대로 능력을 발동합니다. 

 

이렇게 발동하는 직업의 능력은 각각 다른데,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1.첩자

자신의 카드와 목표 상대의 카드를 보고, 바꾸기/안바꾸기 액션을 합니다. 

 

2.주교

돈이 가장 많은 목표 상대로부터 돈 2원을 빼앗습니다. 

 

3.광대

은행에서 1원을 받고, 두 목표 상대의 카드를 바꾸거나/안바꿉니다.  

 

4.이단심문관

목표 상대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야 합니다. 그 뒤 그 카드를 공개해서, 거짓말이었다면 4원을 빼앗습니다. 

 

5.법관

플레이어들이 거짓말을 하면 법정에 돈이 쌓이는데, 법관은 이 돈을 한꺼번에 가져옵니다. 

 

6.농부

농부는 신기하게 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명만 능력을 발동하면 은행에서 1원을 받고, 두 명이 능력을 발동하면 각각 은행에서 2원을 받습니다. 

 

7.여왕

은행에서 2원을 받습니다. 

 

8.왕

은행에서 3원을 받습니다. 

 

9.마녀

목표 상대와 소지금을 바꿉니다. 

 

10.사기꾼

자신이 10원 이상을 갖고 있다면 즉시 승리합니다. 

 

11.미망인

자신의 소지금이 10원 미만이라면 10원으로 만듭니다. 

 

12.도둑

좌우의 플레이어들에게서 1원씩을 빼앗습니다. 

 

 

이렇게 시타델과 비슷한 느낌으로 각 직업의 다채로운 능력을 활용하며 승패를 겨루는 게임이죠.

 

기본 규칙은 이렇게 간단한데, 설명만 들어도 예상할 수 있듯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터지는 게임입니다. 누가 바꾸기/안바꾸기 액션을 할 때마다 경우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게임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보면 누가 뭘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기를 그만두게 되는데, 그러다가 누가 직업을 선언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자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붙고, 그리고 카드가 주르륵 공개되면 다시 잘 기억해두고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오게 되죠. 그런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비교적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턴을 유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포인트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면 두뇌를 풀 가동해야 즐길 수 있는 기억력 게임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게까지 용을 쓰고 오랫동안 기억을 하지 않아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자기를 포함해서 누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여간 재미있지 않거든요. 가령 누가 법관이라고 선언을 해서 너도나도 법관이라고 달려들었는데, 막상 까놓고 보니 법관은 아무도 없었다든가, 이단심문관이 심문을 해서 마녀라고 고백을 했는데, 그게 정말이라 봐주고 지나간다든가 도둑놈인 줄 알았던 옆집 청년이 사실은 법관이었다든가, 이런 대폭소할 상황이 게임을 하는 내내 벌어져서, 완벽한 추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파티게임(무려 13명까지 가능합니다)이라고 하기에는 또 요령을 요하는 부분도 발견되곤 합니다. 가령 광대는 비교적 견제를 당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조금씩 모으기 좋다는 것이나, 이단심문관이 선언되었을 때 따라붙으면 심문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고, 자기가 뭔지 정 모르겠다 싶을 때는 남이 능력 선언을 했을 때 1원을 버린다 치고 따라붙으면 턴을 소모하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기 시작하면 누가 어떤 직업을 선언해도 자신이 얻을 이득이 없어서 태클을 걸지 않게 되는데, 이러면 그 플레이어는 별 무리 없이 다음 턴에도 같은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므로, '누군가는 막아야 하지만 나 하나 쯤이야'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어떤 게임이든 흔히 이런 상황에서 다들 도망치고 나면 마지막 플레이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손해를 보고 태클을 걸게 되는데, 마스커레이드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가진 정보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플레이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게임이 어처구니 없이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뇌를 쓰지 않고 게임을 즐기다가도 누군가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플레이어의 동향에 대해서는 모두 집중해야 게임이 끝까지 팽팽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시타델을 즐겨보신 분이라면 모두 공감을 하겠지만 동일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색채가 비슷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마스커레이드는 시타델과 달리 기막힌 심리전이 아니라 약간의 기억력과 블러프로 돌아가는 게임이고, 그래서 그런지 게임 중에 험한 꼴을 당해도 살의가 피어나는 대신 폭소가 터지곤 합니다. 저처럼 시타델을 좋아하긴 하지만 살의의 파동이 두려워서 꺼리는 분은 꼭 한 번 해보실만 합니다. 그리고 컨셉이 재미있고 기본 규칙이 간단하다보니 누구와 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러브레터처럼 간소한 구성에 비해 놀라운 게임성을 갖춘, 진지하게 할 수도 웃고 즐길 수도 있는 게임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보드게임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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