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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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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는 공기에 섞여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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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디지털 음원 재생기의 등장으로 음악은 손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되었지만, 그런 간편함 때문에 음악은 예전까지 갖던 힘이나 매력의 일부를 잃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하곤 한다. 간단히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는 방 안에 꽤 괜찮은 오디오 컴포넌트를 갖추고, 자기 전에는 그동안 모아온 음반 중 하나를 골라서 재생하고, 취침예약을 한 뒤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즐겨 듣는 음반 정도는 모두 넣을 수 있는 이 신비한 기기가 생긴 뒤로, 그는 점차 컴포넌트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대신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에 충전 케이블을 꽂은 뒤, 미리 목록을 구성해놓은 취침용 음악을 틀고 한참 웹서핑을 하다 잠드는 것이다. 음반은 이제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이 음악을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념품이나 트로피 같은 것이 되었다.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다. 위에 쓴 대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쓰면서, 제대로 된 스피커로 음악을 느긋이 즐기는 시간이 지극히 줄어들었다. 컴포넌트로는 음반에 들어있는 곡 중 피아노가 들어간 스탠더드 재즈만 골라내거나 느린 템포의 곡만 골라내는 작업을 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 산 기기를 코앞에 두고 스마트 기기의 소박한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있자면 승용차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내비게이션이 달린 자전거로 드라이브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번거로운데다 음악을 음반 단위로 들어야하는데도 그때그때 좋은 음반을 잘 골라서 듣고 살던 자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의 음악 감상은 사실상 배경음 감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요즘은 어쩌다 보니 엔카를 듣는 시간이 늘어났다. 원래부터 엔카를 들어온 것은 아니고, 최근에 우연히 Karen이라는 가수의 곡을 들어보니 퍽 마음에 들어서 듣기 시작했는데, 이게 알고 보니 여고생이 부른 것이었다! 모닝구 무스메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지만, 프로듀서 층쿠가 그 재능을 높이 사서 엔카 가수로 데뷔하게 된 그녀는 알아서 몇 장을 팔아보라는 회사의 조건을 순식간에 클리어하기도 했는데… 각설하고, 아무튼 들어보면 어린 나이에도 가창력과 곡의 소화력이 이만저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 번 듣자마자 반해버렸다. 그런데 이 엔카라는 장르는 신기하게도 이어폰이나 훌륭한 스피커로 들을 때보다 스마트 기기의 스피커로 들을 때가 더 듣기 좋다. 아사히 신문 한국어판 트위터 담당자가 때로는 음악을 공기에 섞을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엔카야말로 바로 그런 경우다. 매질을 거치고 손상되면서 더욱 맛이 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들을 때보다 청소나 설거지를 하면서 얼핏 들리는 노래를 대충 따라부를 때가 최고다. 아직 익숙치 않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테이프나 라디오로 들으면 얼마나 황홀할까 생각한다. 음악을 좋은 기기를 통해 좋은 음질로 듣는 게 무조건 좋지도 않은 것이다. 역시 음악마다 최고의 감상법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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