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사람이 잘 만큼은 자야 멀쩡히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밤을 새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공부만은 밤을 새우면서 하지 못한다. 밤에 졸린 것은 둘째치고, 시험 전에 밤을 새우면 다음 날 시험을 제정신으로 칠 수 없기 때문에, 시험 바로 전날 아무리 공부를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더라도 잠은 자곤 했다. 그냥 자는 정도가 아니라 다음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오히려 일찍 잤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잘도 두 발 뻗고 잤구나 싶은데, 벼락치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시험들도 다행히 결과가 그렇게 처참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학교가 멀어서 이동 중에 한 공부가 도움이 많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밤도 새지 못하고, 커피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다보니 시험기간이라고 며칠 내내 밤을 새고 커피와 자양강장제를 마셔가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인생은 별 노력도 하지 않는, 철저히 무성의한 것이 아닌가 회의가 들곤 한다.
그런 한편 밤새워 노는 것은 제법 경험이 있는데, 당연히 MT 덕분이다. MT에서는 오히려 일찌감치 자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왁자지껄 놀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고, 그런 시기 중에서도 그런 기회는 생각만큼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샘이 싫음에도 MT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항상 끼었고, 그때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놀았다. 시험과 달리 다음날 뭔가를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해 줄 말은 없지만, 가지 않음으로써 남을 돈과 시간이 재미나게 논 기억보다 값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돈과 시간을 정말 값진 곳에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치란 사람마다 다르니까 청춘의 한 페이지를 어떻게 장식할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시간을 노는데 잘 썼다고 생각한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해서는 미화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밤새워 놀았던 나날을 떠올리자니 자연히 공부로 밤을 새웠던 날들도 떠오른다. 복수로 쓰긴 했지만, 사실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딱 두 밤이다. 첫 번째는 고 2 때로, 수학 숙제가 도무지 끝나지 않아서 새벽 5시가 되도록 붙들고 있었다. 집에서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므로 12시쯤 누워 자는척 하다 30분쯤 후에 일어나 안네 프랑크처럼 조용히 공부해야 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운 채 필사적으로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는 인생의 모순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과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생님은 다음날 숙제를 검사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밤은 대학에서 도사일기土佐日記에 관한 리포트를 쓰던 밤이다. 제출 시간에 쫓기고 있지는 않았는데, 리포트를 오래도록 붙들고 기다리는 게 싫었던 나는 어느 날 하루를 잡아서 리포트를 미리 해치우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도사일기란 일본 중고시대 시가문학의 거장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면서 쓴 수필 문학인데, 남자이면서 여자인 것처럼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수십 년 전의 자료와 인터넷을 밤새도록 뒤적이며 천 년 전에 처음으로 쓰여진 성별 위장 일기문학에 대한 리포트를 쓰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이했다. 다행히 그 리포트는 잘 수리되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밤샘에 적령기가 있을까? 딱 잘라서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적령기라는 기준은 없겠지만, 밤을 새우면서 다음날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시기가 바로 적령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좋든 싫든 하루에 대한 책임이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잠을 안 자면 며칠 내내 피로가 녹슨 것처럼 몸 구석구석에 끼는데다, 숙취도 오래간다. 죽겠다면서 낄낄거리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괴롭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밤샘 적령기를 지나버린 것 같다. 늘 몸은 지치고 마음은 쫓기는 기분이다. 지나간 세월을 탓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얌전히 일찍 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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