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미니스커트 (트레일러)
“어쨌든, 명절 행사는 고되냐? 뭐 일 많이 했어?”
“그럭저럭 할만은 해요. 산에 오르는 게 힘들었지만.”
“아, 성묘?”
“아니오, 큰집이 산 위에 있어서. 그리고 저희 집은 성묘 안 해요.”
“너희 집안, 기독교였나?”
“아니오. 그냥 무굔데요?”
“아, 그래. 특이하네. 큰집은 산속에 있는데 성묘를 안 한다니. 그럼 가서 뭐하는데?”
“아, 우리 집은 좀 특이해서, 그런 건 안하구요, 산 정상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캠프파이어를 해요.”
“캠프파이어?!”
“놀라셨나 봐요?”
“조금. 뭐 특이한 집안이네. 남자들이 장작을 해다가 밤새도록 때고, 그 주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는 건가?”
“어머, 잘 아시네요. 비슷해요. 큰아버지는 기타를 치고 사촌 오빠는 피리를 불고 다같이 춤을 추는데, 우리 집안에서 가장 큰 행사랍니다.”
“그거 꽤 즐겁겠는데. 먹고 마실 건?”
“아, 방금 전까지 양고기를 다듬었어요. 올라가서 구워먹거든요.”
“이야, 술은 혹시 보드카 같은 건가?”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참이슬이죠.”
“그래? 그럼 그리고 나서는 뭐하는데?”
“음, 그냥 그게 다예요. 피곤한 사람은 텐트에서 자고, 아닌 사람은 계속 노는 거죠.”
“나도 한번 껴보고 싶은데. 대체 언제부터 그런 거야? 너희 집안은.”
“4대 조상님 때부터 그랬다고 배웠어요. 아, 근데 쫌 있으면 양 잡으러 간 친척들이 돌아오거든요. 슬슬 끊어야 될 것 같은데.”
“그거 아쉬운데. 그럼 놀다가 또 연락해.”
“예, 아, 근데 미니 입고 정상까지 걸어갈 생각 하니…에휴.”
“미니?! 바보냐, 넌? 추석에 시골에 미니를 입고 가? 자신감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자신감은 무슨 자신감이요, 선배도 참. 요즘 입을 만한 바지도 없는데다 오늘 행사 규칙이라 어쩔 수 없다구요.”
“꼭 미니를 입어야 되나? 어머니도 할머니도?”
“에이, 40대 이상이면 안 입어도 돼요. 근데 그 아래는 엄격하게 입어야 된다니까. 왜, 제사 지낼 때 누가 양말 안 신고 절했다가 뺨 맞았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런 거예요.”
…물론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핀트가 조금 벗어난 것 같았지만 흥미가 동해서 이 화제를 더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럼 남자는? 남자는 아니지?”
“그럼 재밌겠지만, 아니예요. 그랬다간 뉴스감이라구요. 남자는 청바지에 쫄 나시면 돼요. 아, 친척들 왔어요.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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