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쓰고 산다는 건 당연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지만, 그 중에 정말 끔찍한 게 있다면 우선 라면 먹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뭔가를 보다 잠들 수 없다는 것이다. 라면이야 사실 좀 보이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책을 보다 스르르 잠들 수 없다는 것은 꽤 아쉬운 일이다. 물론 잠들 수야 있지만, 그러면 불도 켜놓은 상태인데다가 안경도 십중팔구 휘어져 다음날 아침에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심하면 오늘 아침처럼 잃어버린 안경을 찾느라 법석을 피워야 한다. 나는 안경을 벗으면 50cm만 떨어져도 얼굴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자다 깬 정신으로 이불과 베개를 들춰대는 것은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다. 어제는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다가 잠들고 말았는데, 깨어나서 보니 안경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안경을 찾자면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데, 시야를 확보하려면 안경을 써야 한다. 요컨대 "안경을 쓰기 전까진 안경을 찾을 수 없다" 는 말이다. 작중 등장하는 키탈저 사냥꾼의 저주나 마찬가지다. 뭐, 장님처럼 손끝으로 찾아내긴 했지만 5분동안 찾아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서랍에서 예비 안경을 꺼내서 썼을테니 꼭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어쨌든 키탈저 사냥꾼들이 안경을 썼다면 틀림없이 나와 같은 한탄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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