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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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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멜라토닌의 노예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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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얼추 마치고 밤을 맞이하면 기분이 제법 유쾌하다. 프리랜서들 중에는 체력이 남아있는 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는 모양이지만, 나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핑계로 노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 밤에는 숨을 돌린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 씻고 나와서 잡일을 처리하고 차를 끓인 뒤 ‘이제 뭐라도 좀 볼까?’ 하고 자리에 앉으면 이미 자정 전후다. 이렇게 맥빠지는 일도 좀처럼 없다. 뭐가 되었든 스트레스를 좀 해소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래서야 먹고 자고 노동하는 회색빛 인생이다. 그래서 이 심심한 인생에 희미한 색채라도 더해보려고 놀다 보면 한 시를 훌쩍 넘기고 만다. 이제 ‘더 놀다 잘래!’ 하는 자신과 ‘착한 어른은 빨리 자야지’ 하는 자신이 싸울 시각이다. 물론 다음날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자야 한다. 휴식도 일의 일부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이렇게 억지로 선택하는 잠이란 한약을 먹는 것처럼 달갑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초저녁에 졸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만 않았다면 나는 금방 잠드는 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즘들어 새벽에 반드시 한 번 깨어난다. 잠에서 깨는 시각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 영화나 소설이라면 그 시각에 초현실적인 일이라도 일어날 법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없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 흡연을 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온 시점에서 잠이 이미 상당부분 달아나버려 다시 자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잠이 올 때까지 보겠다고 핸드폰을 집적거리다 더더욱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당연히 다음 날 몸상태는 말이 아니게 된다.

이 짓을 반복하다간 모든 게 엉망이 되겠다 싶어 핸드폰을 멀찍이 두고 자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두 번에 걸쳐 자고 있다. 심하면 세 번까지도 잔다. 조명 기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17세기 유럽 사람들이 일찌감치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나 인터미션을 즐기고 다시 잤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사람들처럼 일찍 자지 않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면 보조제를 선택해야 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멜라토닌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숙면을 도와주도록 분비되는 호르몬이라 부작용이나 의존증이 생기지 않는다는데, 복용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먹고 나면 오래지 않아서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서 한 시라도 빨리 자고 싶어지고, 그 상태에서 잠에 빠지면 적어도 7시까지는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복용하는 이 수면 보조제의 구입처와 가격을 링크하고 여러분 모두 건강 챙기셔야죠! 하면 재미있겠지만, 사실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약이 너무 잘 듣는 것이었다. 기똥차게 잘 잘 수는 있었지만 12시가 되도록 이 수면 모드가 해제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 나에게 뭘 먹인 거냐!’ 하듯 비틀거리다 책상에 쓰러져 잠들어버리는데, 계속 피곤한 것보다는 좀 나을지 몰라도 이건 이것대로 좀 난처한 상황이다. 어제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커피를 마시며 버텼는데, 졸리는 약이 깨지 않아 잠 깨는 음료를 또 마시다니 이 무슨 짓인가?

깨지 않고 깊이 잔다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면 다음날 힘들겠지만...

그래서 이제부터 약을 쪼개서 절반만 먹어볼까 생각중인데, 아무튼 인간이 잠드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싶어 마음이 씁쓸하다. 예전에는 분명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잘 자고 일어났는데, 그것이 이제는 롤스크린으로 창문을 가리고, 안대로 눈을 가리고, 숙면을 위한 화이트노이즈를 트는 것도 모자라 수면 보조제까지 쓰게 된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란 사실 인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기능인데, 요즘들어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잠도 잘 오지 않으니 기본 기능 셋 중에 둘이 망가진 셈이다. 이러다 오래지 않아서 배설도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되어 약을 따로 챙겨먹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영 심란하다. 유명인들 중에는 종종 ‘늙어가는 것은 멋지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이쪽은 살던 집이 무너지는 꼴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기분이다. 빈말로도 멋지지 않고,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익숙해져야 하지만.




예전에도 주장했던 것 같은데, 10대일 때 2차 성징에 대해 배우듯이 20대에는 30대 이후로 찾아오는 노화의 징후를 의무적으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20대부터 죽을 때까지 내리막길만 걷게 되어 있으니, 이 시점도 2차 성징 못지 않게 중요하다. 다들 어디 동사무소 강당 같은 데 모여서 ‘여러분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빛나는 시기는 이제 곧 끝납니다. 앞으로 길고 긴 내리막길과 어두운 터널만이 기다리고 있죠. 지금부터 그 내리막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는 강의를 들어야만 한다.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런 강의를 들었더라면 나도 지금 덜 우울하지 않을까…….

(이 글을 올리는 오늘은 새벽 5시에 깨어나 잠이 오지 않길래 참다 못해 약을 4분의 1 갉아먹었습니다. 그나마 좀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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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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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아이스크림을 싫어하고 그따위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 사랑과 평화를 증오하고 공해와 파괴를 즐기는 사람도 있듯이.

아무튼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건 참으로 멋지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아이스크림으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다. 물론 그따위 식생활을 했다간 오래지 않아서 당뇨나 고지혈증 따위에 걸리겠지만, 그래도 기분을 더 낫게 만드는 데는 밥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대략 12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알던 선배 중 한 명이 배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굳이 거기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상품을 자기 맘대로 내주거나 값을 깎아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선배는 요령좋게 몇몇 제약을 피해서 가능한한 많은 아이스크림을 주었고, 나는 신나게 얻어먹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이 전부 계산한 건 아닌가 싶다). 우리집에서 그 점포까지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 정도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두 시간이 걸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에 한적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원하는 맛을 골라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만한 호사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데이트 중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는 일이 많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콜드스톤이었다. 이곳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아이스크림을 차가운 돌판 위에서 재주좋게 뒤섞어서 과자 그릇 위에 담아주는데, 그때그때 원하는 재료를 쫀득한 아이스크림에 섞어 먹는 맛이란 여간 훌륭하지 않았다. 조합에 따라 좀 느끼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군것질거리는 콜드스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 콜드스톤이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철수해버려서 더는 맛볼 수 없게 되었으니, 정말 국가적 재난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소박한 희망 하나를 상실한 셈이다.

아무튼 한국이 콜드스톤을 상실했듯, 그렇게 남 부러울 것 없던 나의 아이스크림 라이프도 인생의 암담한 골짜기를 만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연애를 하지도 않고 긴축재정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니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친구 생일 때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대학까지 떠나면서 아이스크림은 명절 음식보다도 가끔 먹는 음식이 되었다. 힘들어질수록 돈이 드는 즐거움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아이스크림 같은 건 영영 잊어버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헌혈을 하고 외식 상품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피 대 아이스크림이라니, 악취미한 성인용 동화에나 나올법한 얘기지만,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무튼 헌혈 덕에 딱히 축하할 일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남과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과 어떻게 다른가? 물론 아이스크림 자체는 다를 게 없다. 똑같은 배스킨라빈스다. 하지만 배스킨라빈스를 혼자 먹으면 당연히 내가 먹고 싶은 맛만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앉아서 그것을 먹는 동안 ‘내가 고른 맛을 왜 남들이 더 먹는 거람’ ‘남이 고른 맛인데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입을 벌리고 슈팅스타가 튀는 소리를 음미하며 넋놓고 앉아있을 수도 있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느긋한 포식자가 되는 셈이다.

정기적으로 근사한 가게에서 아름다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의 한 국면에서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최근에는 바빠서 또 그 맛을 잊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발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화적 갱도에서 단어를 캐는 나날이 이어졌고, 나는 한여름의 파트라슈처럼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배스킨라빈스의 신제품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마음을 사로잡혔다. 당분이 떨어진 뇌가 SOS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망설인 끝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신메뉴를 포함해서 세 가지 맛을 사 먹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나마 좀 인간으로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이래저래 고생은 하고 있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마냥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채찍 열 번 맞고 고작 당근 하나 받은 것에 불과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루퍼트 그린트처럼 ’그래, 언젠가 반드시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나눠주겠어’ 같은 결심을 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가끔 지쳤을 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물론 의학적으로, 재정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아이스크림 따위 먹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입력과 출력을 한없이 반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보상을 받아야 한다. 층계참이 없으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런 계단을 한없이 오르다간 연골이 박살날 것이다. 요는 자신의 일상 어느 부분에서 어떤 보상을 받도록 설정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연구하는 것도 삶의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도 종종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자신을 독려하고 있는데, 사람이란 역시 간사한 법이라 요즘은 설빙을 자꾸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설빙은 일단 내가 오가는 길에 없고, 있더라도 고독한 미식가처럼 훌쩍 들어가 시간을 보낼 만한 점포가 아니다. 설빙에 가서 뭔가를 먹으려면 뜻이 맞는 팀이 조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술은 혼자서도 마실 수 있지만 좋은 아이스크림은 혼자 먹을 수 없다니, 역시 술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값진 보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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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파티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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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다양한 경험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 수월하기 마련이라 딱히 꺼려지는 부분이 없고 여건이 괜찮은 이벤트라면 곧잘 참여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모 잡지사에서 진행한 하우스 파티에 간 적이 있다. 이것도 취재라면 취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우스 파티’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그것이었다. 헐리웃 영화를 보면 허구헌날 나오는 바로 그것. 즉, 2층 이상으로 구성된 주택에 DJ를 불러 요란한 음악을 믹싱시키고, 그동안 손님들은 집안 곳곳에 서서 작게 어깨를 흔들며 병맥주 따위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는 것이다. -아, 크리스, 이쪽은 제니퍼야, 제이퍼, 이쪽은 크리스. 각본가라니까 얘기해보면 재미있을 거야. 제니퍼는 스타트업 쇼핑몰 사장님이시죠.- 대강 이런 식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집주인은 어째서인지 꼭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2층의 빈방으로 올라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본의 아니게 내 뇌리에 각인된 하우스 파티다.

물론 나도 평균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까 ‘묘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복장 그대로 파티장으로 향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오로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서양 중산층의 전유물로 느껴지는 하우스 파티의 분위기가 어떤지 직접 느껴보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 이런 파티에 참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요는 거기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즐거운 파티의 심상풍경


안내문에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다른 손님들과 같이 먹을 음식을 준비해주시면 고맙겠다’고 적혀 있었으므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프링글스를 샀다. 대단히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어도 프링글스라면 누구라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나 혼자 과자를 꺼내고 다른 사람들은 푸아그라나 캐비어 따위를 꺼내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테니.

역에서 꽤 오래 걸었는데, 신촌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그날 신촌에서는 공교롭게도 물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도로 위에 가설식 무대와 물미끄럼틀 따위가 설치되고, 너도나도 수영복 차림으로 뛰어나와 물총싸움을 벌이는 날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피아식별 없이 물총을 쏘아댔고, 상인들은 별일이 다 있다는 눈빛으로 구경하면서도 물총을 든 참가자가 오면 호스로 물을 부어 주었다. 나는 종군기자처럼 물을 맞지 않게 조심하며 그 옆을 지났다.

그리하여 도착한 집은 대단한 부촌에 있었다. 돌아보는 곳곳이 으리으리한 단독주택 뿐이었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정원이 딸린 2층집이었다. 1층집이나 3층집 따위는 심한 따돌림을 받고 쫓겨난 듯한 이국적 거리였다. 나는 약간 주눅든 채로 파티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DJ를 발견했다. 정말 DJ였다. 그는 믹싱에 쓰는 그 전용기기 앞에 헤드폰을 쓰고 서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음악을 틀고 있었다. 요란하게 하우스 뮤직을 믹싱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 누가 트집 잡을 수 없는 DJ가 맞았다. 이건 상당히 감명 깊었다.

한편 손님들은 붐비지 않는 정도로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하우스 파티와 달리 주최측이 테이블을 꽤 충실하게 마련해놓아서 다들 자리에 앉아 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 20대로 보였고, 복장은 멋스럽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정도로 무난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요상한 세계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럭저럭 반가운 상황이었다.

아무튼 잡지사도 아무 맥락도 없이 대뜸 파티만 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일정에는 강연회가 끼어 있었다. 2층에 있는 깔끔한 강연실에는 대강 20~30석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는 산업스파이처럼 다소곳이 앉아서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뭘 팔거나 종교를 권유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대표와 소속 기자가 차례로 잡지사의 비전과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나쁠 것도 없지만 대단히 좋을 것도 없는, 호감가는 교수의 첫 시간 자기 소개 같은 강연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추첨으로 잡지 한 권과 로밍 상품권을 받았다. 나로서는 여우가 호리병을 받은 격이었지만 나쁠 거야 없었다.

문제는 강연이 끝난 다음이었다. 나는 이 강연자들이 당연히 술자리로 내려가 사람들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으며 이야기를 이끌 줄 알았다. 강연을 통해 집중된 공감대를 이용하는 편이 분위기를 띄우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부흥 운동에 실패한 망국의 일족들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1층으로 내려가서 DJ 앞을 지나 맥주를 받으러 갔다. 맥주가 흐르는 수맥이라도 발견한 것인지 1층 안쪽에서 버니니를 무제한 공급하고 있었다. 심지어 안주로 과자까지 주고 있었다. 나는 반듯하게 생긴 바텐더 같은 남자가 따주는 버니니를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자리에 앉고나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인지만, 이 파티장에 혼자 온 것은 나뿐이었다. 두 명이면 반드시 커플이었고, 세 명이나 네 명이면 친구들이었다. 다들 강연이 딸린 일일 주점에 온 느낌으로 방문한 게 아닌가 싶었다. 당연히 다른 그룹과 교류가 있을 턱이 없었고, 나 역시 제정신인 이상 ‘안녕하세요, 잡담이나 해보실래요?’ 하고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안내문에 적힌 대로 다들 먹을 것이라도 가져왔으면 트레이드를 시도해봤겠지만,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은 나 뿐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뭔가를 하나쯤 가져왔는데 과자가 무제한 제공되고 있어서 꺼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다음에야 있든 없든 매한가지였다.

결국 나는 자리에 앉아서 버니니 두어 병을 비우며 경품으로 받은 잡지를 대강 다 읽었다. 그동안 서양인이 낀 그룹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DJ 앞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장소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인지 오래지 않아서 그만두고 버니니를 마시다가 나갔다. 나도 버니니를 마시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지하에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기에 내려가 감상했다. 전시실에서 나오면 전시실 모양 말고 기억나는 게 없는 류의 사진전이었다.

다시 2층 테라스로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테라스 한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 누워있던 커플이 내 눈치를 보고 일어났다.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는데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그 길로 파티장을 뒤로했다. 평화적인 물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길을 따라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프링글스를 먹었다.

말하자면 일상의 축소판 같은 행사였다. 소박한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실상은 기대와 전혀 달라서 어찌되든 나와 별 상관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운 좋게 딱히 원하지 않는 책과 쓸일 없는 상품권을 받았으며, 영 귀에 거슬리는 음악 속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술을 비우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참가비를 계산해야 했다. 그 사이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해 보려던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끼리끼리 모인 사람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잘 지낼 따름이었다. 공지를 따른 준비물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서 알아서 처분해야 했다.

쓰다 보니 점점 화가 치미는데, 이렇게 시시한 하루에서도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들어가는 것도, 버니니도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는 것이리라.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것만큼 기쁜 일은 아니지만, 어중간한 영역에 있는 것들 중에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치워버리는 것도 인생을 명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만 모이는 파티도 가지 않고 버니니도 마시지 않을 작정이다. 파티와 버니니는 그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즐기면 될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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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이케아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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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개장한 이케아 광명점을 이제야 가봤다. 어느덧 2017년도 저물어가는 상황이니 꽤나 늦은 탐방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사전 조사를 눈곱만큼도 하지 않아서 매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껏해야 세 시간 쯤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이게 웬 걸, 롯데월드도 이것보다는 좁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실제로는 매장 면적 59000평방미터니까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122000평방미터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실제 쇼룸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그보다 훨씬 줄어들겠지만, 그 공간내의 동선을 재주좋게 미로처럼 꼬아놔서 돌아다니는 거리는 끝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당장 들어가서 앉아볼 수 있는 쇼룸이 끊임없이 놓여 있으니 도통 질릴 틈도 없다. 놀이공원에 아무리 놀이기구가 많아도 세 걸음 걸어간 자리에 다른 게 또 있지는 않으니까.

어쨌거나 이 쇼룸이라는 것들이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드림하우스를 한 조각씩 잘 떼어와서 착착 진열해 놓은 것이라 뭐 하나 부럽지 않은 게 없고, 소품도 제법 생동감 있게 진열해둬서 정말 남의 집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담요를 덮고 인형을 쓰다듬을 수도 있고, 냉장고에는 곡물 사진을 넣은 수납용기나 빈 맥주캔 따위가 들어있다. 옷장을 열어보면 배트맨 수트 진열대처럼 그럴듯한 불이 들어와 안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옷가지들을 비춘다. 뭐, 이 옷가지들이 옷장이 아니라 소파 팔걸이나 의자 팔걸이에 수북이 쌓여 있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겠지만, 그것까지 구현하면 다들 좋은 가구를 사봤자 그 말로는 이런 것이구나 싶어 정신이 퍼뜩 들 테니 어쩔 수 없겠지. 책장도 현실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인지 대다수의 한국인은 읽을 길이 없는 스웨덴 책이 같은 것으로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책상에 펼쳐져 있는 아동용 전과 따위는 한국 것을 그대로 갖다놔서 깜짝 놀랐다. 스웨덴에는 전과가 없는 걸까? 아니면 놀랍도록 뜨거운 한국의 교육열을 자극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일까? 그러나 뭐가 목적이었든지 간에 나는 그런 것 없이도 상당히 큰 자극을 받았다. 어째선지 그 어떤 책상 앞에 앉아도 내 방 책상보다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 책상이 더 넓고 자신에게 그럭저럭 최적화 되어 있는데도 이케아의 북유럽식 책상에 비하면 고루하고 공간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물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카페의 비좁은 바 석이 더 일하기 좋아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이 소파에 기대보고 저 의자에 앉아보고, 몇 걸음 걸어 다른 집을 구경하고 하면서 또 하나 놀란 것은 역시 가격이었다. 오기 전 까지는 ‘아무리 싸봐야 북유럽 가구니까 기본 20~30은 하겠지’ 하고 그냥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쇼룸에서 보니 군침이 질질 흐르도록 갖고 싶은 서랍장, 책장 따위가 원목만 아니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다. ‘오다 싸게 팔길래 샀어’ 하고 살 수도 있을 정도로. 병원만 가면 반드시 인테리어 잡지를 뒤적이는 나로서는 유혹이 가득한 자본주의 테마파크, 혹은 동시다발적 홈쇼핑 채널의 교차점에 빨려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꿈만같은 북유럽가구... 는 물론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여섯 시간에 걸친 구경이 끝난 뒤, 결과적으로 내가 산 것은 체코산 찻주전자와 인도산 방향제 뿐이었으니…… 그 이유는 물론 볼 것도 없이 이케아의 가구가 아무리 환상적이어도 내 생활에 그것을 가져올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가령 오지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쓰러져 있는 남자를 구해줬는데, 그가 사실은 대단한 유목민 족장이어서 감사의 뜻으로 천하의 명마 한 필을 선물해줬다고 치자. 그게 아무리 적토마처럼 멋진 말이라 해도 한국으로 데려와 유용하게 탈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에 운반할 수도 없을 뿐더러 둘 곳도 없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집도 차도 없는 게 가구는 무슨 가구? 그리고 내 방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치더라도 내 방은 이미 집 안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포화 상태라 ‘가구’ 라고 할 만한 것은 그 무엇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바닥부터 드러나 있는 벽의 길이는 고작 4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행거, 장, 책상, 책장, 침대, 거울 따위로 막혀 있다. 모든 책장은 천장까지 책과 잡동사니가 올라가 있다. 같이 간 친구들 모두 상황이 딱히 다를 것도 없어서 고작 1만원 밖에 하지 않는 그럴듯한 무드 등을 보고도 둘 곳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 다들 가로나 세로가 30센티미터를 넘고 바닥에 놓아야 하는 물건은 살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아이들과 미술관을 구경할 때 ‘방에 놓을 것 하나씩 골라봐라’ 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대단히 진지하게 보더라고 누군가(김영하는 아니다)가 말한 적이 있지만, 이케아의 경우는 반대였다. 방에 놓을 것을 고른다고 생각할 수록 더 화가 나고 우울해지고, 냉소적이 되는 것이었다. 멋진 식기들과 아름다운 백합 화분이 놓여 있어, 보고 있는 것만으로 당장이라도 친구들을 불러모아 홈파티를 벌이고 싶어지는 식탁을 보고도 ‘이게 우리 집에 있다면 백합 화분 대신에 비타민과 영양제가 빼곡히 놓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집 식탁 한쪽에는 TV 시청용 아이패드를 거치하기 위해 선반을 하나 짜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양제의 침공으로 돌이킬 수 없이 점령당했다. 북유럽 사람들은 식탁 위에 꽃병이나 화분이나 갓구운 쿠키가 가득한 바구니를 놓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식탁 위에는 항상 대여섯 종류의 영양제가 궁궐 앞의 해태처럼 건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하지만 역시 영양제들을 아름답게 배치할 방법따위는 도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영양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이 일생동안 긁어모은 소품이란 하나씩 세기 시작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누구든지 보기 싫은 것을 잘 치워둘 공간을 따로 마련해둔 게 아니라면 쇼룸 같은 방을 얻게 된 대도 쇼룸처럼 예쁜 생활을 할 수는 없다. 요는 이케아의 쇼룸을 보는 자세의 기본은 ‘북유럽 현대 거주공간 체험전’ 감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영양제 따위는 잊어버리고 자본주의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어 ‘나도 언젠가는’ 하며 북유럽산 가구들을 쓰다듬는 게 재미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재미를 느끼려면 당연히 집이 있어야 하는데…… 이케아는 언젠가 깔끔하고 스마트하고 저렴한 조립식 쉐어하우스 같은 걸 만들 계획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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