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여
잃어버린 던전을 찾아서

이미 여러 번 한 얘기지만,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에 삐딱선을 타기보다는 환상의 세계에서 온갖 몬스터를 소환하고 마법을 사용해서 전쟁을 벌이거나, 던전을 탐험하고 잡다한 퀘스트를 수행하며 방황했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변 친구들에게 퀘스트를 의뢰하고 던전의 함정에 빠뜨렸다). 소설이든 음악이든 게임이든 이 시기에 경험한 것은 온몸에 스며들어 남은 인생 전체의 취향을 좌우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판타지를 갈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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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미니빌, 엘프님트, 마스크멘, 맨덤의 던전 후기
미니빌 Machi Koro

미니빌은 스가무라 사와오의 “마치코로”의 한국판으로, 그의 몇 안되는 게임 중 가장 유명해진 게임입니다.

이름도 멋있는 명장 볼프강 크레이머의 게임이죠. 엘 그란데, 티칼, 플로렌스의 제후 등 명작을 줄줄이 만드신 분인데, 이분이 만드신 카드게임도 젝스님트를 비롯해서 적지 않습니다.

맨덤의 던전 Dungeon of Man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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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이머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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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스포츠와 관심

이 일을 근거로 '여성들은 모두 삼국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군’ 하고 일반화해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삼국지를 꼭 읽지 않았더라도 재미있는 게임과 소년만화를 찾아서 방랑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삼국지를 접하는 것은 마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원주율이 발견되는 것처럼 당연한 섭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무관하게 게임과 소년만화에 딱히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접할 일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삼국지가 수능 문제에 전면적으로 출제되거나, 여성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정도로 끝내주는 걸작 순정 삼국지 만화가 있거나, 반지의 제왕처럼 세계적으로 흥행한 삼국지 영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삼국지가 대중적인 콘텐츠라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한편 얘기를 돌려서, 나는 스포츠에 관해 아는 게 없다.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느냐면 그건 아니라 농구에서는 발을 쓰면 안 된다든가, 축구에서는 손이나 이빨을 쓰면 안 된다든가 하는 상식선의 규칙은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으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 선수들이 뛰는 현실로서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현실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경기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적은 전국민이 축구팬이 되었던 2002년 한 번뿐이었다. 그래서 올해도 남들이 월드컵을 하든 말든 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잠만 잤다. 그 시각에 밤을 새워가며 경기를 응원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정말 감탄스러울 ‘따름’이라, 나도 함께 즐기고 싶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지구 상의 모든 인간이 축구를 즐기느라 나를 상대하지 않게 되면 아무리 나라도 ‘사커 만세! 비바 축구!’하고 외치며 공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갈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때도 순수한 마음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지는 않으리라. 전 세계의 축구 팬들에게는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축구 게임은 재밌게 해도 현실의 축구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심지어 이 현실 경기에 대한 무관심은 자기 자신이 낀 경기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는 이런 일마저 있었다. 축구 인원이 모자란 나머지 친구들이 나에게 골키퍼를 시킨 적이 있는데, 마지못해 골키퍼를 하던 나는 수비수를 하던 친구와 잡담을 하다가 다른 친구의 ‘패스’를 보지 못하고 자살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딱히 욕을 먹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는 누구도 나에게 축구를 하자고 한 적이 없다. 참고로 그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욕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삼국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스포츠에 도통 관심을 갖지 못하는 나를 보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심이나 취향이란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이 내리치듯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라 어느 시점이 지나면 그동안 형성되어온 경향성을 크게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개개인에게도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려면 굉장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르바이트 동료들에게 삼국지란 정말 재미난 고전이고, 그걸 이용해서 나온 게임도 한둘이 아니라고 설파한대도 별로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피터 잭슨이 삼부작으로 삼국지를 찍지 않는 한은. 마찬가지로 누가 내게 아무리 축구가 정말 인류가 만들어낸 스포츠의 극치고 경기를 응원하는 게 깜짝 놀랄정도로 신난다고 말한들,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뾰족한 대안도 없다.
하루키의 단편 '빵가게 습격'을 보면 빵을 털러 온 주인공 일행에게 빵가게 주인이 빵을 가져가는 대가로 ‘바그너를 좋아할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선교사 같은 방법으로도 성인의 취향이나 관심을 정말 움직이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문화를 움직이는 것은 역시 문화여야 한다. 예를 들어 하루키가 축구 소설을 쓴다면 나도 축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보다는 피터 잭슨의 ‘삼국지’를 더 보고 싶지만.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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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의 연애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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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오는 게 무슨 곡이죠?

당신은 오랜만에 두뇌를 풀가동한 터라 상당히 지쳤다. 계속해서 당분과 카페인을 보충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자꾸만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잠이나 자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때, 카페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당신의 의식을 사로잡는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지만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 계속해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카페 점원을 불러 지금 나오는 곡이 무엇인지 물어볼 것인가? 아니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음악을 들려주면 제목을 찾아주는 앱을 실행할 것인가?
그런 앱이 설치되어 있기만 하다면 아마 많은 사람은 앱을 실행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점원을 불러서 뭘 더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대해 묻는 행위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음악인도 아니면서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당연히 음악이 뭔지 궁금하면 그 점포의 점원에게 묻는 것 말고는 달리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고, 나는 그래서 모르는 음악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점원을 부르곤 했다.
예전에 도쿄에 갔을 때는 카페도 아닌 옷가게에서 나오는 노래의 기타 리프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점원에게 물은 적이 있다(그때는 일어를 잘 못 할 때라 일행이 대신 물어주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The Band Apart”였는데, 나는 그 길로 음반점에 가서 밴드 아파트의 음반을 두 장 샀다. 그때 산 음반은 여전히 여름만 되면 잘 듣고 있다. 왜 꼭 여름에만 듣는가 하면, 도쿄에 갔던 그때가 바로 온몸이 녹아내릴 듯이 찌는 한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밴드 아파트의 곡을 들으면 그 사우나 같은 도쿄의 여름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이상하게 어딘가 한줄기 상쾌함이 느껴지곤 한다.
그 뒤로 오사카에 갔을 때는 호텔의 식당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았다. 미국의 황량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옆 작은 식당에서 틀어줄 법한 로큰롤이었는데, 한 곡만 좋은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좋아서 음반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카운터의 직원은 당황해서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곧 돌아와서 음반을 트는 게 아니라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스트리밍을 틀고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음반이 뭔지는 결국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집에 돌아와 로큰롤 베스트 앨범을 샀다. 자주 듣지는 않지만, 덕분에 로큰롤에 꽤나 호감을 갖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가끔 있었다. 한번은 족욕 카페에서 나오는 피아노곡이 마음에 들면서도 익숙하기에 가만히 들어보니 평소에 즐겨 듣던 일본 밴드 “범프 오브 치킨”의 곡이라 깜짝 놀라서 점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점원은 당황해서 동료가 집에서 구워온 음반이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필 그 동료는 나오지 않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아는 한 범프 오브 치킨은 피아노 어레인지 음반을 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건 유투브 같은 곳에서 다운받았거나, 어쩌면 직접 녹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무튼 밴드의 어레인지 곡을 구워다 카페에 틀 정도로 열성적인 팬을 만날 기회를 놓쳐 무척 아쉬웠다.
그밖에도 지금 나오는 곡이 뭐냐고 물은 게 제법 되지만, 언제부턴가 그 횟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쓰게 된 탓도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 마음에 드는 곡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 또 물었을 때 "아, 이건 **의 **라는 곡입니다.”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해주는 사람을 도통 만날 수 없게 된 탓이다. 점원들은 대체로 곡에 대해 물으면 메뉴판에 없는 비밀스러운 주문을 처음 받은 것처럼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계속 듣고는 있지만, 본인도 딱히 뭘 틀어놓겠다고 선곡을 해서 틀어놓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적당한 리스트를 몰아넣고 반복시키겠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이 그렇게 이름 모를 곡 1로, 대충 쓸어다 잡탕에 넣는 재료처럼 취급된다고 생각하면 음악가들은 퍽 아쉬울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지금 나오는 곡이 뭐냐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고, 그럴 기회가 있어도 스마트폰 앱으로 질문을 대신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기술의 발전에 자주 놀라고는 있지만, 음악을 듣고 곡을 알아맞히는 기술에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알아듣기만 한다면 아티스트와 앨범 정보까지 바로 알려주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구매 링크까지 띄워준다. 스마트폰 만만세다.
하지만 거기에는 간편함은 있지만, 점원과의 소통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때문에 점원은 점내의 배경음에 대해 손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점원이 묻고 다닐 수도 없고, 벽에 설문지를 붙여둘 수도 없고, 손님이 ‘좋아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배경음은 배경음대로 흘러가고, 손님은 손님대로 흘러가게 된다. 음식은 가끔씩 맛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지만, 음악 카페가 아닌 다음에야 음악은 피드백의 고려사항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경음이 마음에 든다면 정말 그 곡 이름이 궁금해서 뿐만이 아니라, ‘좋아요’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곡 이름을 물어 왔다. 점원을 불러다 ‘음악이 참 좋군요’, 하는 건 뜬금없고 관심을 사려고 안달이 난 사람 같지만, 곡 이름을 묻는 건 비교적 온건하게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아무튼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이 좋아해 주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기뻐하기 마련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점원도 기분좋게 하고, 이후의 선곡도 더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배경음 선곡에 신경을 쓰는 점원도 얼마 없을뿐더러 안 그래도 바쁜 점원을 그런 질문으로 귀찮게 만들면 별스러운 손님으로 찍힐지도 모르지만(그리고 바쁠때 묻지 않는 융통성 정도는 있다), 내가 좋든 싫든 계속 접해야만 하는 예술 작품이라면 그 이름을 알 권리 정도는 주장해도 될 거고, 그렇게 함으로써 음악적으로 좀더 좋은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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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호칭의 문제

그래서 오빠라고 불리고 싶은 것인가 하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오빠라고 불리는 것도 인생 전반적으로는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들뜨는 것도 사실이지만, 계속 오빠라고 불리면 마음이 영 편할 것 같지 않다. 오빠라는 단어가 연인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대표적인 호칭이 되었기 때문인지 내게 ‘오빠’란 대단히 가까운 관계에서 쓰이는 애칭 혹은 실제 혈연관계에서 쓰이는 호칭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를 일본어에 빗대는 건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일본어에서 갑자기 요비스테로 불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어에서는 보통 이름을 부를 때 ‘군’, ‘상’, ‘짱’ 등 다양한 호칭을 붙이는데, 그런 호칭 없이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요비스테’라고 한다. 그리고 이 요비스테는 어지간히 친한 상대가 아니고서는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 선배가 갑자기 저를 요비스테로 부르는데 무슨 뜻이 있는 걸까요’ 라는 식의 연애 칼럼도 보이곤 하는 것이다.
요즘이야 남녀 간에도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오빠라는 호칭에 이런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고 ‘오빠’라는 호칭이 평범하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 쪽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다. 미니스커트를 보고 풍기문란이라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이 있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별생각 없이 지나치는 사회가 나은 것처럼. 하지만 그런 호칭으로 불린 경험이 거의 없는 탓인지 내 사고 방식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오빠라는 호칭은 가급적 피하고 싶으며, 당연히 주변에 요구하지도 않는다. 같은 이유로 누구를 ‘형’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고 부르라고 하지도 않는데, 어쩌면 나는 단순히 누군가 실제로 친밀해지기 전에 뉘앙스로 문을 열어젖히고 오는 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주 곤란하게도, 이런 호칭을 피할 수 없는 관계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어떤 집단의 선후배 관계도 아니면서 나이 차이가 나고, 그렇다고 ‘씨’를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친해진 관계다. 이럴 때는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오빠라고 불리는 게 불쾌한 건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좋은 편이니까 대단한 고생은 아니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상대로부터 친한 호칭으로 불리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지금까지 한 얘기와 완전 상반되는 소리지만, 감정은 논리로 느끼는 게 아니니까 어쩌겠는가?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일단 해보면 재미있는 게임이 있는 것처럼, 별로 듣고 싶지 않지만 일단 들으면 좋은 말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꼭 한 번, ‘오빠’라는 호칭에 나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오빠’라는 호칭에서 어느 정도 그런 ‘과장된 친밀함’ 같은 뉘앙스를 느끼고 있었고, 게다가 여대를 나와서 그 호칭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근데 우리는 하필 서로를 선배라고도, 후배라고도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나마 천만다행으로 ‘씨’를 붙일 수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친해지는 통에 말을 놓게 되었다. 말은 놓고 ‘씨’는 붙잡고 있는 것도 이상하니까 ‘씨’도 마침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습게도 양쪽 다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도 불리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친하게 지내며 반말은 하지만 서로를 호칭하지는 않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호칭만 배우지 못한 사람들처럼 괴이쩍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역시 한국어에는 단어도 호칭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는 단순히 우리들이 편협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tag : 수필, 에세이, 호칭, 오빠
남자의 장난을 모르겠다

이런 경향은 어릴 때부터 있었는데, 그때부터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바로 별 의미 없는 장난들이었다. 가령 나비처럼 나타나서 벌처럼 때리고 도망치는 류의 장난은 항상 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영역에 있었다. 일단 때리면 상대는 아프고 기분이 나쁘다. 그러면 보통 왜 때리느냐고 이유를 묻거나 복수를 하게 되는데, 사실 합당한 이유가 없으니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고 자연스럽게 복수의 단계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과정은 도주로 인해 아주 길고 지리한 체력전으로 변모하곤 하는 것이다. 분명 장난이란 이 과정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일 텐데, 그 즐거움이 단순히 상대를 때리는 폭력성의 충족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대의 기분을 일시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추격전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들을 넘어서 상대와의 사회적 관계 변화가 최종적인 목표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장난에 공감하거나 동조하기 힘들었고, 어떤 장난에도 간디처럼 비폭력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남자애들의 장난도 조금씩 변해갔다. 우선 ‘추격전’이 사라졌다. 복도나 교실을 질주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치고받고 끝내는 비중이 높아졌고, 장난 자체도 상대에게 심대한 고통을 주는 것보다는 간지럽히거나 특별한 고통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간지럽히는 것으로는 ‘손톱을 모아서 상대의 무릎에 올린 후 손가락을 천천히 벌리기’가 유행했고, 특별한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시구니’라고 해서 날개뼈 끝 부분을 백핸드로 때리는 것이 유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폭력에서 일종의 스킨쉽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손날로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풀어제끼는 장난도 있었는데, 이건 확실히 그 증거가 될 듯하다. 신기하게도 이쪽은 기분이 나빠지지 않고 꽤 재미를 느꼈으므로 나도 종종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장난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 한쪽은 이해할 수 없고 한쪽은 재미있었나 싶은데, 아마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일차적 목적이 ‘약 올리기’에 있는가 아닌가일 것이다. 약 올리기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다. 어릴 때의 장난은 분명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게 첫째 목표였다. 그런 반면에 좀 자란 뒤의 장난은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폭력조차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걸 ‘장난의 진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장난의 진화가 어째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점점 뛰어다니기가 귀찮아진 탓도 있을 것 같고, 몸집이 커지면서 ‘복수’의 타격이 예전과 스케일이 달라진 탓도 있을 거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고가 발달해서일 수도 있고, 소통 능력이 발달한 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장난의 진화도 ‘여자’ 라는 생명체 앞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린다. 여자의 사고나 소통 방식은 남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 여자의 무릎을 간지럽히거나 날개뼈를 때리거나 단추를 풀러댈 수는 없지 않은가? 남자들이 나이를 먹고서도 소통의 방법으로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여자를 놀리고 약 올리는, 다소 유치한 방법을 택하곤 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랬다가 상대의 기분이 정말 나빠지면 이만저만 난처한 일이 아니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계란 발전하는 것이리라.
사실 위에서 그런 장난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는 했지만, 나도 소통의 장벽을 느끼기 시작한 탓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탓인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거꾸로 어린 시절과 비슷한 장난을 조금씩 즐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별 이유가 있든 없든 여성에게 장난치는 것은 꽤 신 나고 재미난 일이다.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은 실랑이를 벌이거나 얻어맞고 있자면 적어도 남중 남고라는 암울한 시기 때문에 누리지 못 했던 평화를 체험하는 기분은 든다. 나로서는 일종의 '영혼의 재활훈련'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장난의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는 것일까?
tag : 에세이, 수필, 장난, 남자, 여자
매지컬 스퀘어 코멘터리 03. 주사위에서 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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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 스퀘어 코멘터리 04. 테마와 학기, 시안 공개
코멘터리 4.
-테마와 학기
사실 매지컬 스퀘어는 테마가 중요한 게임이 아닙니다. 블록을 모아서 부수는 시스템이니까 근본적으로 이게 아니면 안 된다 싶은 이야기가 없죠. 지금 모바일 게임에서 시스템은 거의 똑같은데 테마만 바꿔놓은 게임이 무수히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렇게 되면 좋아하는 테마를 붙이는 게 제일이라, ‘마법’이라는 테마를 씌우기로 했습니다. “마법 학교에서 원소를 모아서 마법을 완성한다.” 제법 말이 됩니다. 제목은 “매지컬 다이스”, “매지컬 스퀘어” 둘 중 하나를 고민하다 주사위 안이 폐기되면서 “매지컬 스퀘어”로 결정되었습니다. 매지컬 스퀘어에는 ‘마방진’이라는 뜻이 있긴 하지만, 마방진을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고 분통을 터뜨릴 사람은 아마 없겠죠. 스퀘어가 네모, 광장, 제곱 등의 뜻을 가진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법을 만드는 네모이기도 하고, 이 게임을 하는 공간을 마법의 광장이라고 볼 수도 있고, 점수 계산도 상당히 오랫동안 '체크한 칸 수의 제곱'이었으니까 달리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제목을 ‘매지컬 스퀘어’로 결정한 뒤, 기왕이면 마방진을 만드는 규칙도 만들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원소가 자리한 곳에서 가로줄의 합, 세로줄의 합이 동일하면 큰 점수를 주자, 이런 식이었는데, 아무래도 인류에게는 아직 이른 고속 연산을 요하는 것 같아 금방 폐기했습니다.
보드게임을 많이 만들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업은 테마가 결정되고 나면 테마가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대한 아이디어 중에서 쓸만한 것을 걸러주고, 새 아이디어의 방향을 잡아주죠. 그래서 테마가 결정된 이후로 자연히 특수 능력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마법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고 있으면 발전하는 게 있어야 말이 될 테고, 그런 발전은 매지컬 스퀘어를 다른 퍼즐 게임과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업적표의 각 과목마다 능력을 배정하고, 일정 횟수를 체크하면 그 능력을 배우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3칸이 5번, 4칸이 4번, 5칸이 3번, 6칸이 2번, 7칸이 1번으로, 필요 체크 횟수가 전부 달랐죠. 3칸을 체크하는 게 가장 쉽고, 7칸을 체크하는 게 가장 어려우니 그건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능력은 다음 라운드부터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즉, 한 게임이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것이죠.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험난한 전반을 거쳐 능력을 획득하고, 후반에 자기가 얻은 능력을 마음껏 활용해서 물 만난 고기처럼 게임을 즐기게 됩니다. 능력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3개까지밖에 얻을 수 없어서 능력 조합에 따른 리플레이성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20분 정도로 애매한 길이였던 게임을 40분에서 50분 정도로 늘려 게임을 브릿지 게임에서 격상시키는 효과도 있었죠.
학교니까 당연히 이 구분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누었습니다. ‘팀 웍’ 때도 했던 짓이죠. 그 전에는 공개 게임 ‘본격 요리학교’에서도 써먹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시험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결코 부정할수만은 없더군요. 진짜 시험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평가’라는 건 우리가 평생 학습해온 것처럼 대단히 도전적인 이벤트고, 이것을 가상의 방법으로 재미나게 즐길 수 있다면 테마이자 시스템으로서 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게 팍팍해도 ‘심즈’ 같은 게임은 재미있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상당히 오랜 기간을 중간기말 시스템으로 테스트 했습니다. 그런데 테스트를 반복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어들이 지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여러 번 하면 당연히 질리고 지치기 마련이라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진짜 문제는 저 자신마저 ‘이걸 또 두 판씩이나 돌려야 하나’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게임을 만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실제로 같은 게임을 반복하면서 뜯어고치다 보면 자신이 정말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감각이 희미해지고, 심하면 아예 넌더리가 납니다.
그럴 때면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입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테스트니까 꾹 참고 해야지, 하고 억지로 하는 상황에서는 그 게임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느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순수한 보드게이머로서,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서 자기 게임을 골라서 플레이할 이유가 명백히 있어야 하고, 그것을 하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고, 리뷰할 때 그렇듯이 공략점과 문제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가 게임을 비롯하여 몇가지 창작을 하면서 얻은 지론입니다.
그런 지론에 따르자면 역시 두 판 묶음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중간기말 시스템에도 분명 많은 장점이 있긴 하지만, ‘매지컬 스퀘어’는 분명 '브레인 버닝' 게임이고, 이것을 매번 한 시간 내내 하면 진짜 시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 했죠. 간단히 말해서 한 판은 좋지만 그 자리에서 두 판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다는 사람을 포용할 수 없었습니다. 두 판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한 판을 더 하면 해결될 일이지만요. 그렇게 생각하니 중간기말 시스템은 ‘도미니언’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전반에는 카드를 사기만 하고, 후반에는 그걸 쓰기만 하는 방식으로 길게 늘여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는 지금의 리플레이성이 나올 수 없었겠죠.
게다가 그냥 놔둘 수 없는 결정적 문제도 있었습니다. ‘중간을 망친 자는 기말도 망친다’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인데, 재미있자고 하는 보드게임에서 이런 현실적 부조리를 느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를 깨는 사회안전망이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매지컬 스퀘어의 사회안전망은 체크를 한 플레이어가 원소 하나를 더 받는다는, 사회안전망의 반대 효과까지 갖춘 것이었습니다. 양날의 검이죠. 그렇다고 이 간단한 게임에 사회안전망 규칙을 추가하는 것도 억지스럽고 사족을 다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게임은 다시 한 판으로 수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능력을 넣어서 압축해야 했죠. 원래 원하는 능력을 구매해서 한 판으로 게임을 끝내는 ‘토너먼트’ 규칙을 만들어두긴 했지만,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 써보지도 않은 능력을 평가하고 사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능력은 어디까지나 체크의 누적을 통해서 얻어야 했죠. 그런데 원래 하던대로 3칸은 5번 ~ 7칸은 1번으로 고정해두면 게임의 초반부터 이용해야 유용한 능력을 너무 늦게 얻는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마땅히 대안도 없었는데, 고민하다 보니 반드시 각 능력을 얻는 난이도를 그렇게 조정해둘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칸 수가 적으면 체크를 많이, 칸 수가 많으면 체크를 적게 설정해서 난이도를 중간에 맞췄는데, 체크 횟수를 똑같이 맞춰 놓으면 '3칸을 하느니 4칸을 하지’ 하는, 이른바 ‘그럴 바엔’ 효과가 더 즐거운 고민을 끌어냈습니다. 게다가 능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타이밍 순서에 맞춰 재배치하면 그 자체가 순차적인 몰입도 상승을 유도할 수 있었죠.
이에 따라 어떤 능력이든 한 번만 체크하면 습득하는, 예전에 비하면 속성 교육이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룰이 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얻기 쉬운 능력을 극초반에 얻으려는 유혹이 너무 강해지더군요.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고민, 조금 모았다가 더 큰 능력을 얻을까 하는 생각에 비해 유혹이 너무 거대했습니다. 게다가 게임을 처음 하는 플레이어가 두 번째 턴이나 세 번째 턴에, 즉 게임이 돌아가는 방법을 익히기도 전에 능력을 얻어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컸고, 모든 능력을 얻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간단했습니다. 한 번에 모든 콘텐츠를 제공해버리면 그만큼 소모되는 속도도 빠른 법이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능력의 조합에 따른 재미를 느낄 수 없으므로, 다시 조정을 거쳐서 3~5칸 까지는 두 번, 6~7칸은 한 번 체크해서 능력을 얻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양 극단을 거쳐서 중간에 정착한 셈이죠.
그렇게 진행한 테스트는 퍽 성공적이었습니다.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 게임을 그리워하는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게임이 깔끔하고 간단해졌다’고 평했고,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게임이 주는 부담감이 없어졌죠. ‘매지컬 스퀘어’가 소수의 매니아를 타겟으로 한 게 아니라 보드게임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까지 포용할 수 있는 게임인 이상, 부담없이 짧고 신나게 머리를 쓰게 만드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리플레이성도 늘었죠. 브릿지 게임도 여러 판 하면 브릿지 게임이 아닙니다. 게다가 ‘토너먼트 규칙’도 폐기할 수 있었죠. 기껏 만든 룰을 못 쓰게 되었는데 뭐가 좋으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매뉴얼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가장 기본적인 게임방법만을 기억하기 마련이고,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두껍고 장황한 매뉴얼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는 게임 하나니까요.
(코멘터리는 추후 연재됩니다)
-시안
시안 두 장이 추가로 완성되어 공개합니다.

'물'을 이미지한 원소의 스케치입니다.

이쪽은 완성된 선화. 포즈가 바뀌었습니다. 스케치에서는 신하를 깔고 앉은 여왕 같은 모습이었는데, 확실히 이쪽이 더 신비스럽군요.

'바람'을 이미지한 원소의 이미지 스케치입니다.

완성된 선화. 공기방울을 짐볼처럼 안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멋집니다.
일러스트 작업이 진행되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정교한 일러스트들을 손바닥만한 카드에 옮겨야 한다는 게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언젠가 더 큰 지면으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tag : 보드게임, 자작, 매지컬스퀘어, 텀블벅
수상한 조우로부터 도망치기

“영혼이 깊어 보이세요.”
이런 말은 그나마 낫다. 길 가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말을 걸어올 이유가 정말 어떻게 생각해도 없으니까,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영혼’, ‘도’, ‘깨달음’ 같은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쓰는 사람은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서 진화한 방식들이다.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길 묻기’가 있다. 길이라면 누구나 물어볼 수 있으니까 일단 대답하는데, 어째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말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어쩐지 대화 혹은 대화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상황이 되면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다.
‘설문 조사’라는 방법도 그런 부류에게 제법 애용되는 것 같다. 설문 조사라는 건 일단 남을 돕는 일인 데다가 어느 정도 재미도 있는 법이라 누가 부탁하면 쉽게 받아들이곤 하는데, 하다 보면 어째 내용이 이상해지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장소로 데려가기도 한다. 들은 얘기에 따르자면 대학교 내에서 과제를 위해 만든 PPT나 동영상을 보고 답변을 해달라고 접근해서 종교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단다. 다른 것들도 그렇지만, 이건 정말 사람의 선의를 이용한 악독한 술수다 .
하지만 나도 아무 발전 없이 제자리에서 속고만 있는 사람은 아니라, 몇 번 경험을 쌓고 나니 어지간해서는 이런 부류의 얼굴만 보고도 못 들은 척 지나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 느끼기 마련인 망설임, 미안함, 부끄러움이 없다. 길을 묻거나 과제 때문에 설문 조사를 하면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게 보통인데, 이런 사람들은 웃고 있더라도 가면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마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런 표정까지 생생히 꾸며내면 나도 꼼짝 못 하고 속아 넘어가겠지만, 그런 경우는 없었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의 인원 구성도 꽤 참고가 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여성 둘, 혹은 여성 한 명으로 이루어진다. 드물게는 남녀 2인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내 경험에 따르면 얼마 없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친화력이 높고 경계심을 덜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셋이나 넷이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면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경계심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시도가 내게는 거꾸로 경계할 이유가 된다.
그리하여 몇 년째 여성 한 명, 여성 두 명, 남녀 두 명이 거리에서 말을 걸어오면 들은 척도 않고 도망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 저 사람들이 정말 길을 묻거나 건전한 목적에서 설문 조사를 부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별 관심도 없는 종교 얘기를 몇 분이고 계속 듣기는 싫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건 전적으로 사람의 선의를 역이용하는 사람들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눈썰미를 발휘해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내가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경우’다. 예전에는 날이 좋을 때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먹이를 찾은 하이에나들처럼 그런 사람들이 찾아와 말을 걸곤 했다. 그럴 때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도망치질 못해서 꼼짝없이 설교를 들어야 했고, 오래지 않아서 나는 실외에서 책 읽기를 포기해버렸다.
사실, 이럴 때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쫓아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는데, 너무나 화가 치밀어 ‘그런 데 아무 관심도 없으니 좀 가 달라’고, 마치 알렉산더를 쫓아내는 디오게네스처럼 단호하게 말했더니 군소리 없이 사라졌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대화의 맥락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 그리고 ‘미안해하지 말 것’이다. 대화를 온건하게 종료할 생각을 하거나 거부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틀렸다. 이런 수상한 조우로부터 도망치려면 채팅방을 꺼버리듯이 아무 때나 말을 끊고 도망쳐야 하고, 미안함 대신 분노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치밀하고 첨단화된 수법을 들고 나타나더라도 이 두 가지를 기억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뭐, 그럴수록 자신이 각박한 삶을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tag : 수필, 에세이, 조우, 종교인, 도망
마음을 지켜주는 보호필름과 케이스

보호 필름이 없으면 확실히 액정에 흠집이 나면 어쩌나 불안하긴 하다. 요즘 스마트 폰 액정은 유리, 터치 패널, 액정이 일체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까딱 잘못해서 금이라도 가면 8만 원에서 12만 원 정도는 우습게 나간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인데, 이걸 만원에서 2만 원 정도로 방지해 주는 것이 바로 보호 필름이다. 보호 필름을 붙여두면 언젠가 일어날 대재난을 막는 부적이라도 붙인 것처럼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유리가 사춘기 소년의 마음처럼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것은 아니다. 제조사는 당연히 스마트폰이 보호장비 없이 사용되는 걸 전제로 제작하니까, 사실 그냥 써도 충분히 튼튼하다. 특히 유리는 칼로 긁어도 말짱할 정도라, 열쇠나 철제 보디를 가진 이어폰처럼 흉악한 물건과 같이 주머니에 넣어두지 않는 한 일상적 충격으로부터는 안전한 것이다. 나는 그런 제조사의 자존심을 믿고 필름을 포기한 셈인데, 이게 필름 없이 써보니 여간 편한 것이 아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매끄럽고 투명하고 아름답다. 기포나 먼지가 들어갈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지경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케이스까지 벗겨봤는데, 케이스를 벗기니 전보다 훨씬 얇고 가벼워서 새 기기를 산 것처럼 쾌적하고 좋았다. 아마 제조사에서는 이 상태를 최적의 사용 조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튼튼한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을 보더니 스마트폰 제조사에 다니는 친척이, 자기가 이걸 얇고 가볍게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쓰고 있느냐고 한탄하더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러나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책상 위에 둔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수리한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 불안감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뛰어가던 도중에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적도 있다.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박살 냈을 때 왜 더 튼튼한 케이스를 씌우지 않았나 끝없이 한탄하고 전면 테두리까지 감싸는 케이스로 바꾼 덕에 두 번째는 기적적으로 무사히 넘어갔는데, 이때 나는 케이스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못을 박을 때 망치 대신 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가끔 불편해 보일만큼 거대한 케이스를 쓰는 사람을 봐도 이해할 수 있다. 케이스가 튼튼할수록 기기는 무거워지지만 마음은 편할 것이다. 결국 누구나 고가의 기기를 쓸 때는 편리함과 마음의 안정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셈이다.
여담으로 내가 한 선택은 필름 없이 케이스를 쓰는 것인데, 케이스는 상당히 얇고 가벼운 ‘젤리 케이스’이다. 인조 가죽 재질도 써봤지만 이건 케이스가 액정 테두리를 감싸지 않아서 스마트폰이 낙하했을 때 액정을 보호하지 못했다(그리고 스마트폰은 떨어졌다 하면 신기할 정도로 앞을 보고 떨어진다). 범퍼라고 테두리만 감싸는 형태는 가벼워서 좋긴 한데 쓰다 보니 고무 부분이 쉽게 더러워지고 찢어져서 포기했다. 지금으로서는 젤리 케이스가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나면서 가볍고 튼튼한 것 같다.
한편으로 태블릿은 필름과 다이어리형 케이스를 쓰는데, 필름은 케이스를 샀을 때 붙인 것이고, 케이스는 좀 무겁더라도 거치가 가능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표지를 뒤로 접었을 때 접힌 틈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잡으면 어지간한 조작은 한 손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 모양을 계속 쓸 것 같다.
하지만 맥북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완벽한 노가드 상태로 쓰고 있어서 가끔씩 심각한 모순을 느낀다. 어째서 나는 막상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피해가 클 기기를 안전 장비도 없이 잘만 쓰고 있나? 여기에 대한 답은 보호 장비의 가격에 있다. 맥북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비해 커서 자연히 케이스도 가격이 호되게 높다. 6~8만 원은 되는데, 그러다보니 도무지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 정도 투자를 하느니 그냥 조심해서 쓰지 뭐 하고 다짐하게 된다. 당장 찾아오는 돈 문제 앞에서는 마음의 안정이고 뭐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돈 앞에서는 이토록 간사한 모양이다.
tag : 에세이, 수필, 스마트폰, 액정필름, 케이스
여동생 판타지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을 초래하기는 할 것이다. 일단 성별이 다르니까 어느 정도는 서로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취미가 다를 확률도 높고, 옷을 빌려 입을 수도 없고, 정서적인 공감도 쉽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도 잘 간수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환상도 적잖이 깨질지도 모른다. 밤늦게 들어오면 걱정도 될 것이다. 심지어 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하면 주변에서 예쁘냐 거나 좋겠다는 소리까지 해댄다. 여러모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활을 20년쯤 하면 빨리 결혼해서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반면에 내가 봐온 서브컬처 콘텐츠-주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면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고, 실제로 존재할 턱이 없는 환상적 여동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여동생들은 대체로 이상할 정도로 오빠를 좋아해서 오빠와 친하게 지내는 여성이 있으면 경계하거나 질투하기 일쑤고, 가사에 능숙해서 아침 식사나 도시락 준비 정도는 거뜬히 해치우는 존재다. 아니면 정반대로 아주 여리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뭐든 돌봐줘야 하는 게 보통이다. 오빠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뺨을 후려갈기는 여동생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이건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런 방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그려진 여동생을 보고 세상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이며, 여성을 성적 도구, 가사노동의 도구, 그리고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전근대적 문화가 기형적으로 발전한 형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따지고 보면 타당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콘텐츠란 ‘말은 안 되지만 그런 이야기’라는 전제 아래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보는 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에 성격 나쁜 재벌 2세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등장해서 가난하지만 당찬 여성에게 뺨을 맞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셈이다.
아무튼 그런 가공의 세계에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일단 좋을 것 같긴 하다. 나는 밝아지면 싫어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인간이라 누가 깨워줄 필요가 없지만, 누가 깨워준다면 여동생이 깨워주는 쪽이 다른 누가 깨워주는 것보다 죄책감이 덜할 것 같다. 아침밥이나 도시락도 여동생이 만든 것이면 반드시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을 것 같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해도 이 뒤에는 어쩌면 좋담,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겠다. 반대로 내가 여동생을 깨우거나 밥을 한대도 마찬가지이리라. 요는 상호간에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별이 같은 형제면 더 편하지 않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동성이라 당연히 편한 것과, 이성인데도 편한 것 사이에는 거대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공원에 벚꽃이 가득 피었기에 술을 사 들고 형과 놀러 나갔다.” 와 “공원에 벚꽃이 가득 피었기에 술을 사 들고 여동생과 놀러 나갔다.” 두 문장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차이와 비슷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논리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그럼 여자 친구와 비교할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것과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자 친구라는 존재는 애인이 되었건 여자 사람 친구가 되었건 대할 때마다 중앙선처럼 존재하는 이성으로서의 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혈육이라면 그런 것은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등짝에 파스를 발라줄 수도 있다. 그러한 또래 이성과의 아무런 긴장감 없는 접촉과 소통은 거의 하늘이 내려주는 것에 가까워 인간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며, 타인과의 소통 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나는 믿는다).
복잡한 얘기를 떠나서, 친구의 여동생을 만난 적이 딱 세 번 있다. 한 명은 열두 살 차이고, 다른 두 명은 한 살 차이였다. 열두 살 차이인 친구는 여동생과 공놀이를 하고서 옆에 앉혀놓고 식판에 반찬을 덜어다 주었다.
한 살 차이인 친구 한 명은 여동생과 서로 ‘너’라고 부르는 사이였는데, 겉보기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한 번은 그 친구 집에 프린터를 고치러 갔다가 저녁밥까지 얻어먹게 되었는데, 밥상에서 친구가 농담을 했고 여동생이 웃었다. 그러자 친구는 “넌 뭘 웃어.”라고 했고, 여동생은 눈을 흡뜨며 “니가 먼저 웃겼잖아!”라고 쏘아붙였다. 밥상머리에서 이래도 되는 걸까 걱정스러웠는데, 둘 다 은근히 웃는 얼굴인 게 원래 그런 모양이구나 싶었다.
또 한 친구는 단정한 모범생이었는데, 친구들이 작당해서 왁스로 머리를 세우고 다 같이 여고 축제에 놀러 갔다. 그 친구의 여동생도 다니는 학교였는데, 여동생의 반에 들어가자 그녀는 “뭐야, 우리 오빠 안 같애!”라며 깔깔 웃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동생이 있고, 또 수많은 여동생 판타지가 있지만, 그런 걸 떠올리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여동생도 충분히 멋지고 재미나지 않는가 싶다. 나와는 인연이 없는 얘기지만, 그런만큼 부러워해도 큰 잘못은 아니겠지?
tag : 일상, 수필, 에세이, 여동생
연주의 즐거움

일단은 피아노가 기본이었다. 아담한 공간을 합판으로 나눠 피아노와 의자만 간신히 들어갈 만한 연습실이 넷 있는 학원에 다녔는데, 그곳에 다니게 된 이유는 오로지 집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한 일은 간단했다. 기초적인 음악 공부를 하고, 연습량이 적힌 개인 기록부를 받아서 레슨을 받고 한 곡을 정해진 연습량만큼 반복한다. 중간중간 피곤하면 나와서 기독교계 만화 잡지를 뒤적이거나 친구들과 떠들고 불량식품을 나눠먹었지만, 학원 안에서 특별한 추억은 없었고 연습은 지루하기만 했다. 선생님은 60대 정도의 여성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진화론을 믿지 않았다. 나는 연습하다 지치면 기록부에 연습량을 속여서 체크하곤 했는데, 선생님은 그걸 알고도 혼내지 않았다. 대신 연습량을 영구히 늘렸는데, 당연히 나는 끝없이 연습량을 속여야 했다. 그때 그냥 연습량을 속이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면 나도 피아노를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피아노 연습은 내게 지루한 노동에 가까웠고, 결국 체르니에 접어들고 나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흔히 어릴 때 배워둔 것은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적어도 피아노만은 거기서 예외인지 나는 피아노 치는 법을 순식간에 깨끗이 잊어버렸다.
다음으로는 문화회관에서 단소를 배웠다. ‘학교에서 가끔 단소 시험을 보니까’가 이유였다. 선생님은 장년의 머리가 벗어진 남성이었고, 자상한 분이었다. 우리는 광활할 정도로 넓은 강의실 바닥에 앉아 ‘임임중임중태…’하고 계이름을 외우고 단소를 불었고, 그러다 쉬는 시간에는 강의실 구석에 쌓여있는 책상 위에 올라가고 놀았다. 몇 개월을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얇은 책 한 권을 떼었고, 예상대로 그 뒤로 두고두고 시험에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시험 볼 일이 없어지자 소리를 내는 법 말고는 모조리 잊어버렸다.
같은 문화회관에서 하모니카도 배웠다. 이번에는 ‘장기 자랑에 쓸만하니까’가 이유였다. 젊고 몸집이 큰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입담이 좋고 하모니카를 귀신같이 잘 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라고 딱히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분은 유독 어려운 기교가 필요한 곡을 많이 보여준 것이다. 성격도 자유분방해서 나가 놀고 싶은 사람은 나가 놀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가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같이 다니던 친구가 나가자고 졸랐으므로 나가서 마음에도 없는 축구를 했다. 하루는 그러고 돌아오니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데리러 왔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넌 이제 죽었다’며 웃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에 대한 인간적 호감은 그야말로 단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배운 하모니카는 다행히도 고등학교 자유 악기 시험 때 유용하게 쓰이긴 했지만, 특별히 애착이 남지는 않았다.
그 뒤로는 악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기타를 독학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디서 클래식 기타 하나를 얻어온 게 계기였는데, 마침 포크송을 듣던 때라 스스로 교재를 사고 악보를 구해다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다(기타를 치면 당연히 굳은살이 박이기 마련이지만). 그리하여 포크 기타를 치고, 몇 곡은 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까지 불 수 있게 되고(하모니카를 배운 게 이때 도움이 되긴 했다), 친구들에게 기초를 가르치기도 하고, 그러다 ‘공부해야 하는 우리 애에게 괜한 걸 가르치지 말라’는 학부모의 전화도 받고, 대학교 때는 일렉기타와 앰프까지 장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껏 돈을 들여 전문 기관의 교육을 받은 악기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독학한 기타에만 빠져든 이유는, 단연코 ‘음악을 즐기고 있었는가 아닌가’의 차이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고 가장 많이 들었던 건 고등학교 때였으니까(야자 시간의 유일한 낙이었다), 정작 이런저런 악기들을 배우던 초등학교 때는 별 관심도 없는 것들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었던 셈이다. 치고 싶은 곡이 없으니 악기에 정이 갈 턱이 없고, 정이 가지 않으니 손도 대지 않아 자연히 잊어버릴 수밖에.
그런 한편으로 기타를 잡았을 때쯤에는 치고 싶은 곡이 널려 있었다. 기타는 소리를 내는 것부터 꽤 어려운 악기인 데다 처음에는 신체적인 고통마저 수반하지만, F코드만 극복하면 그 뒤로는 온갖 코드를 꿰고 운지법에 통달하지 않아도 쉽게 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곡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다. 나는 영화 쉬리로 유명해진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이나 신승훈의 ‘I believe’, 김광석의 곡들을 치면서 노래도 하곤 했는데, 자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인생에 한 번쯤은 꼭 해 봐야 할 만큼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깨닫고 나서야 새 곡을 연습하는 게 고역이 아니라 즐거운 도전이 되는 것이라고, 기타를 치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써놓고도 사실 언제부턴가 놀기 바빠서 기타에는 먼지만 쌓이고 있지만, 여유만 있다면 하루에 한 곡 정도는 치면서 베짱이처럼 사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 싶다.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싶다. 이런저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쉽고 멋진 피아노곡이 많아서 ‘나도 연습만 좀 하면…’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의욕이 샘솟곤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흰머리 얹기 전에 피아노를 장만해서 쳐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뒤늦게야 깨닫긴 했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남에게 잘 보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확고한 감각을 선사하기 때문에 멋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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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모바일 메신저

아무튼 그 메신저에서 탈퇴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지긋지긋한 도심에서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섬에 온 기분이다. 메신저를 아예 안 쓸 수가 없어서 그 메신저 다음으로 많이들 쓰는 메신저를 깔기도 했고 애초에 그냥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만 해도 간단히 연락이 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그 메신저가 아니면 연락하지 않는다. 마치 기본 문자메시지나 다른 서비스로 말을 거는 건 유난스러운 비일상의 영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몇몇 사람들로부터는 왜 계정을 없앴느냐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이런 계정 폭파의 가장 짜릿한 점이란 주변에선 좀 불편할지 모르나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이런 사람이라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실 메신저 연락을 해야 하는 경우는 다른 메신저를 쓰면 그만이다. 불편한 점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지긋지긋한 게임 초대도, 마음에도 없는 단체 채팅도 안녕이고 메시지를 왜 확인하지 않느냐는 구박도 끝이다. 연락이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연락만을 주고받을 수 있다. 계정을 없애버린 뒤에야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순간의 연락들이 얼마나 나를 괴롭히고 있었나 실감했다. 연락, 소통, 마케팅은 꽤 멋진 말이지만 그것도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나 반길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 그걸 쓰지 않는 사람이 소외되거나 사용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면 슬슬 문제가 생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피처 폰을 쓰는 사람을 보고 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스마트폰을 쓰면 반드시 특정 모바일 메신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가령 너 하나 때문에 우리가 메신저 채팅을 못 하니까 빨리 스마트폰을 사서 앱을 설치하라는 식의 압력이 발생하면 그건 일종의 집단주의가 될 것이다. 다들 무슨 게임기가 있으니까 너도 사야 끼워주겠다는 것과 같은, 유치하지만 치명적인 논리다. 스마트폰이나 메신저를 쓰지 않는 게 딱히 불을 쓸 줄 몰라서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수준으로 낙후된 건 아니니까 쓰고 싶은 사람만 쓰면 되지 않을까? 기술적 대세에 편승하지 않음으로써 다양성을 수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을 쫓아가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새로 쓰기 시작한 메신저는 썩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이 얼마 없고, 스티커는 다양하다. 트위터처럼 채팅이 아닌 소식이 올라오는, '타임라인'이라는 수상한 항목이 있긴 해도 그건 꺼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로서는 비상용 메신저로 이만한 게 없다. 유행이 돌고 돌면 언젠가 이 서비스도 사람들이 북적대고 시답잖은 메시지가 떠돌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또 다른 서비스를 찾으면 되겠지.
tag : 에세이, 수필, 모바일메신저
지갑 다이어트

어째서인가 하면, 무엇보다 지갑이 무겁기 때문이다! 돈이 가득 차서 무거운 거라면 불평할 일이 아니겠지만, 가죽 지갑은 돈이 한 푼도 들어있지 않아도 무겁고 두껍다. 바람막이나 얇은 가을 재킷 안주머니에 넣으면 옷이 처질 지경이다. 그렇다고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면 앉기가 불편하고, 그때그때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잃어버릴 것 같아서 무섭다. 지갑을 넣기에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재킷 안주머니다. 그편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하며, 꺼낼 때마다 ‘굉장히 값지고 소중한 것’을 꺼내는 기분이 들어 돈을 쓴다는 실감이 난다. 돈을 쓰면서 쓴다는 실감을 느끼지 못하면 그건 큰일이다.
그렇다면 지갑은 왜 무거운가? 얼마 전에 그런 의문이 들어 지갑에 든 것들을 다 꺼내봤다.
얼마 안 되는 돈 - 단체로 계산할 때가 아니면 쓸 일도 없다.
100원 - 보관함을 써야 할 때를 위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공중전화 카드 - 긴급 상황을 위해 갖고 있는데, 10년도 넘어서 안 될지도 모른다.
카페 마일리지 - 6개월에 한 번 갈까 말까 하지만 어쩐지 갖고 있다.
옷가게 마일리지 - 집 앞에 좋아하는 옷가게가 생겼을 때 받은 건데, 지금은 망해버렸다.
음식점 통합 마일리지 - 서너 개의 음식점이 통합된 마일리지 카드인데, 그 어느 곳도 갈 일이 없다.
서점 마일리지 - 서점, 영화관 등이 통합된 마일리지 카드인데, 지금은 통합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었다.
게임샵 마일리지 - 한창 콘솔 게임을 할 때는 게임샵에 갈 때도 있긴 했다.
암호화 보안카드 - 보안카드를 그냥 가지고 다니기가 뭐해서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옮겨적은 물건이다.
명함 - 지인의 명함 몇 장인데, 연락할 일도 없으면서 갖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행운의 2달러 - 모 은행에서 준 행운의 2달러. 행운의 증표가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운전면허증 - 운전을 하다 경찰에 잡혔을 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주민등록증 - 운전면허증에게 왕좌를 내준 신분 증명 수단.
마트 마일리지 - 가장 자주 가는 마트의 마일리지 카드.
백화점 마일리지 - 계열사의 영화관에서도 쓸 수 있다.
도서관 회원증 - 멀고 좋은 곳, 가깝고 나쁜 곳 두 곳의 회원증이다.
체크카드 - 어쩐지 세 장이나 있다.
증명사진 - 사진이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을 때 한 번 더 방문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
이렇게 잡다한 물건이 들어 있으니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그중 반 이상이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물건이라는 점이 경악스러웠다. 어쩌자고 이 많은 마일리지 카드를 갖고 다니게 된 걸까? 내친김에 앱으로 지원되는 것부터 빼버리고, 옷가게, 음식점, 게임샵처럼 도통 쓸 일이 없는 마일리지 카드도 빼고, 카페 마일리지는 그 카페에 자주 가는 친구에게 줘 버렸다. 언젠가는 ‘아뿔싸, 마일리지 카드가 있었어야 하는데!’ 싶을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이용하지도 않는 곳의 마일리지로 얻는 이득이라고 해봐야 일 년에 오천 원이 될까 말까다. 그것보다는 무거운 마일리지 카드들을 운반하면서 느끼는 불편이 더 크다. 명함도 데이터로 입력하고 따로 넣어두었고, 체크카드도 잘 쓰지 않는 것은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전자화와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지갑 다이어트에 성공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갑의 내용물이 그렇게 줄어버리니까 이 정도면 지갑 대신 간단한 머니 클립 같은 것만 써도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갑을 산다는 건 어쩐지 남편의 시곗줄을 바꿔주기 위해 머리를 잘랐더니 남편은 시계를 팔아서 머리빗을 사버렸다는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어 내키지 않지만.
그건 그렇고, 아주 오래전부터 카드 지갑을 따로 쓰고 있는데 이쪽은 정리할 것도 없이 깔끔해서 좋다.
도서관 회원증 두 장 - 위와 다른 도서관이다.
통신사 카드 한 장 -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마일리지 카드다.
교통카드용 체크카드 한 장 - 역시 가장 자주 사용하는 체크카드다.
아파트 출입용 회로 - 원래 열쇠고리인데, 달 곳이 없어서 아세톤으로 녹여 회로만 뽑아냈다.
플래그 - 책갈피 대신 쓴다.
이게 전부인데, 사실 요즘은 어디서나 체크카드를 받으니까 이것만 가지고 다녀도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다. 카드 지갑의 매력은 바로 그렇게 편리하면서 부담이 없다는 데 있다. 잃어버려도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면서, 지하철을 탈 때 일일이 지갑을 꺼내지 않아도 되니까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한 번 써보면 끊을 수 없을 지경이고, 쓰고 있자면 가끔은 몇 년 내로 지갑 자체가 멸종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는 지갑에 맡긴 게 많기 때문에 카드 지갑이 활약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시 얘기를 되돌려서, 작년에 지갑을 바꿔야 하나 한창 고민할 때 내가 한 선택은 엉뚱하게도 낡아서 다 떨어진 카드지갑을 바꾸는 것이었다. 지갑보다 카드지갑을 훨씬 더 손에 많이 쥐는 데다가, 지갑과 카드지갑의 차이가 줄어들면 체계가 붕괴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7인치짜리 태블릿과 5인치짜리 스마트폰을 동시에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쩐지 멍청한 짓을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때마침 모 공모전 상금도 받았고 해서 나는 카드지갑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때 산 카드지갑은 수제 가죽 제품으로, 가끔 이유 없이 꺼내서 만지작거리고 냄새를 맡아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다.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수십 년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리 차일드의 추리소설 시리즈에 “잭 리처”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유능한 퇴역 군인은 집도 절도 없이 돌아다니며 옷은 한 번 입고 버리고, 핸드폰도 지갑도 없이 산다. 절대 시간 감각이 있어서 시계조차 없다. 말하자면 부랑자 같은 인물인데, 그러면서도 썩 말끔하고 멋져서 수사 과정에서 만나는 여성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인물이 잘난 덕이겠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편리한 인생이다. 의미는 좀 달라도 기술이 발달하면 잭 리처처럼 거의 빈손으로 간편히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tag : 에세이, 수필, 지갑, 카드지갑, 잭리처
애플 스티커를 어디에 쓸 것인가

아무튼 검색을 좀 해보니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애플 스티커를 자동차 유리에 붙이고 있다는 모양이다. 대문에 붙이는 사람도 있다는데, 애플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렇게 애플 유저 인증을 하면 애플사 직원들은 돌아다니면서 ‘우리 제품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군’ 하고 흐뭇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에 비싼 애플 컴퓨터’가 있다고 대놓고 광고해서 도둑을 초대하고 싶지는 않다’는 사람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그 말도 제법 일리가 있다.
물론 가장 많은 케이스는 컴퓨터에 붙이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성 컴퓨터의 노트북이 큰 인기를 끌어 그 제품을 사다 전면에 애플 스티커를 붙이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 기회에 애플 스티커를 팔아치우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이쯤 되면 애플을 좋아하는 나조차 놀랄만하다.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티커 한두 장쯤은 있는 게 보통이고, 애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돈을 써서까지 애플 스티커를 사다 붙이려 하지 않을 테니까. 애플을 좋아하지만 애플 제품을 산 적이 없거나 스티커를 어딘가에 다 써버린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아무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애플 아닌 델이나 삼성 노트북에다 애플 스티커를 붙이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데, 그 노트북 제조사로서는 통탄할 일이고 애플은 로고를 예쁘게 만든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정말 뭐든 예쁘고 볼 일이다. LG 로고도 꽤 재미난 모양이지만 스티커로 나와봤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실은 나도 애플 스티커를 어디에 붙일지 꽤나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게, 아무 데나 붙이자니 스티커가 이상할 정도로 귀하게 느껴지고, 그대로 상자 안에 고스란히 넣어두자니 영 아까운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고민 끝에 두 군데에 붙였으니, 한 군데는 맥북 아랫면이고, 한 군데는 방 창문이다.
맥북에 스티커를 붙인 이유는 꽤 합리적이다. 맥북을 접어서 손에 들 때 스티커 부분이 알루미늄판보다 덜 미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맥북을 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활용이다. 뒤집어놔도 맥북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든다.
한편 애플 스티커를 창문에 붙인 것은 순전히 배트맨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담시에서 배트맨을 불러낼 때는 배트맨 로고가 붙은 서치 라이트를 어쩐지 그때마다 형편 좋게 구름 낀 하늘에 비추곤 하는데, 그렇게 보이는 박쥐 모양 그림자는 옛날부터 뭇 남성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보고 그 어릴 적의 감성이 되살아난 나는,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다 창문에 애플 스티커를 붙이면 그 그림자가 블라인드에 비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블라인드에 비친 애플의 그림자를 보고 잡스가 나타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스티커 소비였다.
그나저나 애플은 대체 왜 애플 스티커를 동봉하는 걸까? 애플도 나름대로 생각이 많은 기업이니까 남아서 그냥 주는 거라는 식으로 끼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애플의 팬으로 하여금 그 팬심을 드러내도록 독려하고, 동시에 광고 효과도 거두려는 목적 때문이 아닐까? 개중에는 ‘내 돈 내고 제품을 샀는데 거기다 광고까지 해 주고 싶지는 않다’고 애플 스티커를 받는 족족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티커를 어떻게든 재미나게 써보려는 사람도 많으니 이건 꽤 영리한 전략 같다.
사실 예전에 ‘스타더스트 임페리엄’이라는 카드게임을 자체 제작했을 때 나도 이런 생각을 잠깐 했다. 박스 전면에 붙일 스티커의 주문 단위가 최소 1000장이라 필요한 것을 빼고도 880장 가량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스티커를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서 몇 장 더 끼워준 다음 아무 데나 붙일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모든 디자인을 직접하던 그때는 충분히 예쁜 스티커를 만들 수도 없었고, 아무리 예쁜 스티커를 만들어서 끼워준다 해도 사람들이 그걸 어디에도 붙이지 않을 게 뻔했다. 그리하여 제품에 쓰이고 남은 스티커들은 모조리 내 방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아직 박스 안에 몇 장이나 남아있는 애플 스티커와는 그 처지가 상당히 다른 셈이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역시 뭐든 예쁜 게 최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tag : 에세이, 수필, 애플, 스티커
반갑지만 만나기 힘든 사람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몇 년 전에 다니던 미용실의 미용사가 그랬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가 약간 긴 남자분이었는데, 말수가 적었다. 그는 내가 큰 마음을 먹고 블리치(브릿지)를 해 달라고 주문하자 어려운 결정을 용기 있게 잘 한 게 대견하다는 듯한 태도로 진지하게 작업했는데, 작업이 끝나자 거울을 보여주며 "이미지가 완전 바뀌셨어요.” 라는 말만을 해 주었다. 색이 잘 받았다느니 전보다 훨씬 낫다느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중립적인 발언이었는데도 어쩐지 굉장히 듣기 좋은 말이었다. 분위기를 타고 “이게… 나?” 라고 했으면 재미있었겠지만, 다행히 나도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 고맙다고만 했다. 친절하고 솜씨 좋고 말수 적은 미용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 뒤로도 그 미용실은 몇 번 더 갔지만 이사한 뒤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 다니던 소아과 원장님도 무척 좋은 분이었다. 굉장한 미인인데다 목소리도 높고 청명하며 친절한 분이었는데, 환자가 없을 때는 플룻 연습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디가 그렇게 친절한가 하면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친절한 분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다닌 병원이라 친절함이나 다정함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스며든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니는 친절하게 밥을 잘 해주셔’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정말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예방접종을 할 때면 그 병원에 갔으므로 나에게 그 원장님은 거의 주치의 같은 분이었는데, 자라면서 아프지도 않고 예방접종도 하지 않게 되면서 뵐 일도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005년 겨울, 가족이 모두 여행을 가서 혼자 남은 집안에서 장염에 걸렸을 때니, 지금은 병원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주변에도 친절하고 멋진 자세로 점포를 운영하는 분들이 몇 있었다. 자주 가는 술집 주인장은 자기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술집을 운영하는 분이라 생맥주를 굉장히 훌륭한 품질로 유지하는 데다가 안주도 모두 맛있고, 인사나 대답이 깔끔하고 시원하면서 부자연스러운 과장이 없다. 게다가 정말 멋진 점은 혼자서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서비스도 주지만, 미안할 정도로 굉장한 서비스를 주지도 않고 딱히 말을 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이나 봤으니 "월드컵 보고 계세요?” 같은 얘기 한두 마디 정도는 건넬 법도 한데, 나로서는 고맙게도 “선풍기 틀어 드릴까요?” 같은 말밖에 걸지 않는다. 이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무관심은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도 무척 친절했다. 불고기 백반 등이 싼 값에 굉장히 푸짐하게 나오는 것도 좋고 집 구조 때문에 부자 친구 집에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태도가 좋았다. 흔히 식당 여주인과 친해지다보면 이모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더하면 서로 말을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 주인장의 태도는 분명 친절하고 따뜻하며 자주 오던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발은 사무적인 영역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떤 손님도 이모라고 부르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친절한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그런 걸 신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분명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이지만, 그만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술집이나 식당이야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지만 미용실은 자주 가봐야 한 달에 한 번밖에 가지 않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플 때밖에 볼 수 없으니 병원은 더 심하다. 일부러 아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에 불쑥 음료수 따위를 사들고 찾아가기도 뭐한 노릇이다.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면 문을 닫는 시간 쯤에 가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반갑지 않은 상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사람과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고 일어나니 안경이 부러져 있어서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가 무척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안경사가 대체로 그렇듯이 믿음직하게도 안경을 쓰고 있었고, 절세 미인은 아니었지만 호감이 가는 외모였다. 막 문을 연 참이라 컴퓨터와 TV를 켜고 조명을 켜느라 부산스러운 데다가 내 안경알에 맞는 테를 도통 찾지 못하는 것은 영 신통치 않았지만 보기에 재미있었다. 간신히 찾은 테로 안경을 수리해서 씌워줄 때 손목에서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사람을 자주 보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했다. 안경은 정기적으로 손보거나 바꾸는 물건이 아니니까 어려운 일이다. 콘택트 렌즈 보관 용액을 사러 가는게 가장 빈도가 높고 합당한 핑계일 것이다. 주유소 점원이 마음에 들어 매주 기름을 사러 가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세상에는 그런 핑계를 대서라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반가운 사람들도 어쩌면 매일같이 만나서 온갖 얘기를 해보면 한군데 쯤은 정떨어지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만나는 반가운 사람이란, 가끔 만나기 때문에 더 반가운 게 아닐까.
tag : 에세이, 수필, 만남, 인연
듣는 노래만 듣는다

아무튼 ‘음반’이란 참 좋은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원은 플레이어에 넣을 때마다 그 음반을 즐긴다는 실감이 든다. 특히 책꽂이에서 케이스를 꺼내 재킷을 보고 음반을 꺼내어 데크를 열고 음반을 집어넣은 뒤, 오디오가 윙, 하고 음반을 재생할 때까지의 짧은 기다림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희열이 있다. 나는 음악회에서 연주자들이 모여 앉은 뒤 각자 악기의 소리를 점검하는 순간을 무척 좋아하는데, 음반이 재생되기 직전의 시간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MP3P라는 혁신적인 물건이 등장하면서 나도 음반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좋은 것도 편한 것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다. 덕분에 가끔 음반점에 가서 재킷만 보고 ‘이건 어쩐지 좋을 것 같은데?’ 하고 막연히 음반을 사는 낙도 없어지고 말았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로 검색해보고 노래를 30초쯤 들어본 뒤에 다운로드 받는 게 훨씬 편리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뒤로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MP3P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 손바닥 안에 집안의 모든 음반을 넣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심지어 스트리밍으로 내게 없는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음악 듣기에는 엄청나게 편한 환경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음악을 듣는 양이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나서 지금쯤이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뒤적이고 살아도 모자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반대로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이건 90퍼센트 이상 팟캐스트 때문이다. 뭔가를 듣기 딱 좋은 시간은 바로 이동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음악을 듣는 대신 팟캐스트 방송을 듣다 보니 도통 음악을 들을 짬이 나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배경음을 골라 틀긴 하지만 그걸 빼고 ‘노래’는 정말 들을 기회가 없다. 가끔 정말 노래를 듣고 싶어질 때면 팟캐스트 대신 노래를 듣는데, 그렇게 정말 가끔씩만 노래를 들으니 매번 새로워 새 노래에 대한 갈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물론, 간혹 주변에서 기막히게 좋은 노래가 들리면 음원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버스커 버스커’가 그런 경우인데, 이 버스커 버스커를 빼고 나면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노래라고는 대부분 6년 이상 된 것들이고 한 10년 전부터 들어온 것들도 부지기수다. 덕분에 노래방에 가도 얼음 속에서 10년쯤 자고 있다가 막 깨어난 인간처럼 오래된 노래만 부르게 되는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새 노래를 듣지 않으니 새 레퍼토리도 생기지 않아서 매년 낡은 인간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한때는 요즘 친구들이 듣는 노래를 찾아서 좀 들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유행에 발맞추려는 시도 자체부터 이미 비참한 기분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듣던 노래만 계속 듣고 있고, 이 생활 방식은 앞으로도 거의 바뀔 것 같지 않다. 지금은 10년 전 노래나 듣는 청년이니까 20년 뒤에는 30년 전 노래만 듣는 늙은이가 되어 있겠지. 나이를 먹으면서 새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내 음악 생활에서는 그 시기가 좀 빨리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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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생각인데, 영화는 그럭저럭 유행을 따라가면서도 노래는 도통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만히 노래만 듣는 시간을 만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악인들에게는 죄송스럽게도 저는 귀만 쓰는 시간에 무척 인색합니다. 영화는 영화관에 일단 들어가면 꼼짝 못하고 집중해서 보게 되지만, 음악은 그럴 기회를 남이 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영화관에서 라이브 실황을 상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라이브는 관객과 호흡하는 거니까 라이브로서의 의미는 퇴색하겠지만, 음악인이 관객과 호흡하는 모습을 보는 관객이 되는 것도 나름대로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음악을 감상한 뒤에 나오면서 음반을 즉석에서 구입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영화가 당연한 문화생활이 된 것처럼 음악 공연도 친근한 문화생활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명 제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니까 활성화되지 않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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