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어릴때는 아무 생각없이 자료 모아다 이거 긁고 저거 긁고 해서 뚝딱 만들어냈는데, 요즘은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애초에 학부생이 자기 생각을 넣어봤자 거기서 거기인데 이런게 제대로 된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교수님이 교수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몇 권 있지도 않은 책 모아다 똑같이 쓰면 다 알아보지 않나 싶기도 해서 망설여진다. 하지만 망설인다고 없던 생각이 샘솟고 창의력 대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하던대로 하게 되는데, 망설임이 길어지고 달리 할 일은 많아서 딴 생각이 떠나질 않으니 레포트를 쓰는 시간은 길어지기만 한다. 이번 레포트는 총 몇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오늘 낮까지 이걸 붙들고 있기가 싫어서 밤을 샜다. 10년 전의 나에게, "넌 10년 후에 헤이안 시대 일본 여류 일기문학의 최초작을 원문으로 읽고 원문으로 밤새도록 레포트를 쓰게 될거야." 라고 말하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어느날 눈을 뜨면 모르는 사람이 옆에 누워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보, 일어나요"라고 말하게 된다는 얘기처럼 세상 만사 나중에 생각해보면 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에 있느라 종일 열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석달 열흘쯤 집안에만 있으면 한국어를 까먹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