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만 되면 예수가 "내 생일인데 왜 니들끼리만 기뻐하고 난리야?” 라고 분통을 터뜨릴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만일 내 생일에 전 세계 사람들이 온 천지에 별의별 장식을 달고 선물을 주고받고 온갖 상품(특히 콘돔)의 매상이 크게 뛴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래도 그리 즐거울 것 같지는 않다. 생일 파티를 해준다기에 갔더니 나만 혼자 케이크를 우물거리고 친구들은 폭죽만 한 번 터뜨린 뒤 끼리끼리 피씨방으로 놀러 가버린 기분이 아닐까.
그런데 심지어 12월 25일은 예수의 생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토막 상식처럼 된 이야기인데, 로마 시절에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당시 인기 있던 축일인 바빌론 태양신의 생일, 태양절을 적당히 생일로 정했고, 실제로 예수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요컨대 “네 생일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원래 축제하는 날이면 기억하기도 쉽고 축하하기도 쉬울 테니까 그 날로 정할게. 남의 생일이지만.” 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예수도 태양신도 나란히 화를 내서 나팔을 불고 육지의 3분의 1쯤은 불덩이로 뒤덮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딱히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많은 매체에서도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글쎄, 모르겠는데?"
“오늘은 네 생일이야."
“난 고아라서 생일이 없는데…."
“그래,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네 생일로 정하기로 했어."
“…흑, 모두들, 기뻐!"
이런 장면이 나오고 얼렁뚱땅 생일이 확정되곤 하니까 생일을 알 수 없는 자의 생일을 결정하고 축하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크리스마스 따위 기만적인 자본주의의 허례허식이라는 불만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써놓았지만, 사실 크리스마스 자체에 별 불만은 없다. 일단 빨간 날이고, 모두가 떠들썩하게 즐기는 날은 많을수록 좋다. 종교적으로 믿지 않아도 서기로 햇수를 세는 이상 나름대로 의미도 있다.
오로지 문제가 있다면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이미지가 있고, 여기에 압도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혹은 애인과 함께 보내는 것이야말로 최고라는 인식 때문에 같이 나갈 사람이 있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불행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고독에 대해 생각하느라 불행해진다. 이건 “크리스마스는 모두 행복하다."라는 환상이 유발한 거대 불행일지도 모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있음에도 새해에 불행한 사람이 그 탓에 특별히 괴로워하지 않는 것과 달리, 크리스마스에만 유독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역시 크리스마스가 정확히 어느 날이라고 정해져 있고, 그 날은 모두 행복해진다는 이미지가 각종 매체로 끝도 없이 재생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의 비극을 주제로 한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 급으로 대히트를 치면 이런 불행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가령 '두 연인이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야음을 틈타 도망치지만 두 가문에서 합심해서 보낸 킬러에 의해 한 명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남은 한 명이 분노에 눈이 먼 나머지 두 가문 모두를 참살하지만 불타는 앨범을 뒤적여 보니 애인과 함께 찍었을 사진에는 자기 혼자 뿐이라, 그때서야 자신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건 망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자살한다는 액션 블록버스터' 같은 것 말이다. 써놓고 보니 어처구니 없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하면 이런 내용도 꽤 성공하지 않을까.
각설하고,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역시 그냥 빨간 날로서 여유롭게 다른 휴일과 똑같이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 신경 쓰인다면 자기 생일처럼 맛난 것이나 사다 먹는 정도가 적당하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따라서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쳐서 정말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요컨대 “넌 너인 그대로 괜찮아.”인 셈이다. 아, 이것도 남들이 만든 흔해빠진 행복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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