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에는 ‘타운 포탈 스크롤’이라는 게 있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일회용 마법 아이템으로, 사용하면 바로 옆에 마을로 통하는 차원문이 열리는 것이다. 일회용이라 한 번 마을로 갔다가 돌아오면 닫히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퍽 감지덕지한 기능이다. 현실에 있으면 세계를 뒤바꿀 게 틀림없다. 전쟁의 양상이 뒤바뀌고 대기업에서는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포탈비를 지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한 장에 30만 원 쯤 하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 동안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람밖에 쓸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보급형이 나올지도 모른다. 훨씬 싸고 이동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식이다. 돈은 2만 원에서 4만 원쯤 들고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쯤 걸린다고 치자. 거기에 거리에 따른 비용, 시간에 따른 비용, 야간 할증까지 붙여보면 슬슬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동수단을 알고 있다. 바로 택시다.
택시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거고 택시 이외에는 불편해서 타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택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택시를 비상시에 쓰는 타운 포탈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가 되었든 비상수단을 쓴다면 그 계획은 실패한 셈이다.
요즘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한창 술을 마셔대던 시기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제때 내리지 못해 종점까지 가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애초에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로 세상의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집까지 찾아가는 게 문제였다. 앉기만 하면 곯아떨어져 공항이나 차고지에 도착해 버리는데, 당연히 그때쯤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택시 말고는 남은 교통수단이 없다. 한 번은 불굴의 의지로 종점까지 가기 전에 내려서 반대편 열차를 잡아탔는데, 또 잠들어버려 반대편으로 한참 지나친 뒤에 깨어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택시는 비싸다. 미터기의 요금이 착착 올라가는 것을 보자면 생명이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들곤 한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 요금이 껑충 뛰는데, 그럴 때면 말없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곤한 것은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말없고 솜씨 좋은 미용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처럼, 말 없고 운전 잘 하는 택시 기사를 만나기란 어려운 법이다. 하기야 미용사와 달리 쉴 때 TV나 신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와 잡담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람을 만나면 한 두 마디 하고 싶어지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어쩌면 미용사들이 그러듯이 손님이 심심할까 봐 그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꺼내는 말들은 대체로 맞장구 치기 어렵거나 영 듣기 싫은 말들 뿐이다. 예를 들면
“저런~ 개새끼.”
“부모님 돈으로 놀러 다니고 대학생처럼 편한 게 어딨겠어요?”
“거기는 가면 나올 때 사람이 없는데…….”
이런 것들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적당히 지나가는 투로 하는 얘기들은 잠자코 있거나 ‘아, 네, 그렇죠’하고 받아넘기면 되는데, 아예 직설적으로 어딜 뭐하러 가느냐, 학생이냐,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오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말하는 게 듣기 싫다고 내리기에는 너무 바쁜 상황이고, 조용히 좀 가자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소심하다. 영화관이라면 관객에게 조용히 영화를 볼 권리가 있으니 옆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떳떳하게 닥치라고 할 수 있지만, 택시의 승객이 방해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명백한 권리가 맞는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게 권리가 맞다 해도 기사는 입 다물고 라디오나 듣고 운전이나 하라는 것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율적으로 정해진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로봇이 아니니까 심심해서 한 두 마디 말을 꺼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가 하면서도 막말을 듣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자면 분통이 터진다. 인간이란 남보다 우위에 서면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차량은 쉽게 빠져나갈 수도 없고 운전대를 쥔 사람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1대1상황에서 운전자가 기묘한 우위에 서게 된다(그렇게 착각한다). 게다가 상대가 자기보다 약자인 여성이고(역시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되면 자기가 절대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택시 기사가 그런 사람들인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택시 기사가 되었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택시라는 조건이 그런 특성을 강화하긴 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택시에서 내린다고 갑자기 친절한 신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 파리에서는 주말에 택시 기사가 조수석에 승객이 아닌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아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남자 택시 기사는 여자친구를 태운 채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단다. 요즘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택시를 타면 꽤 안심이 될 것 같다. 물론 쉴 틈 없이 밀어를 속삭이거나 드라마처럼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며 싸워대면 곤란하겠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승객에게 괜한 말을 걸거나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정반대로 그런 사람 둘이 나란히 타서 몇 배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결국, 약자를 막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사라지거나 그걸 막아줄 수 있는 시스템이 등장해야 택시도 마음편히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 이루어질까? 내 생각에는 어느쪽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아마 구글이 개발한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지만 이게 한 장에 30만 원 쯤 하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 동안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람밖에 쓸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보급형이 나올지도 모른다. 훨씬 싸고 이동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식이다. 돈은 2만 원에서 4만 원쯤 들고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쯤 걸린다고 치자. 거기에 거리에 따른 비용, 시간에 따른 비용, 야간 할증까지 붙여보면 슬슬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동수단을 알고 있다. 바로 택시다.
택시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거고 택시 이외에는 불편해서 타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택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택시를 비상시에 쓰는 타운 포탈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가 되었든 비상수단을 쓴다면 그 계획은 실패한 셈이다.
요즘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한창 술을 마셔대던 시기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제때 내리지 못해 종점까지 가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애초에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로 세상의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집까지 찾아가는 게 문제였다. 앉기만 하면 곯아떨어져 공항이나 차고지에 도착해 버리는데, 당연히 그때쯤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택시 말고는 남은 교통수단이 없다. 한 번은 불굴의 의지로 종점까지 가기 전에 내려서 반대편 열차를 잡아탔는데, 또 잠들어버려 반대편으로 한참 지나친 뒤에 깨어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택시는 비싸다. 미터기의 요금이 착착 올라가는 것을 보자면 생명이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들곤 한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 요금이 껑충 뛰는데, 그럴 때면 말없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곤한 것은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말없고 솜씨 좋은 미용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처럼, 말 없고 운전 잘 하는 택시 기사를 만나기란 어려운 법이다. 하기야 미용사와 달리 쉴 때 TV나 신문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와 잡담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람을 만나면 한 두 마디 하고 싶어지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어쩌면 미용사들이 그러듯이 손님이 심심할까 봐 그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꺼내는 말들은 대체로 맞장구 치기 어렵거나 영 듣기 싫은 말들 뿐이다. 예를 들면
“저런~ 개새끼.”
“부모님 돈으로 놀러 다니고 대학생처럼 편한 게 어딨겠어요?”
“거기는 가면 나올 때 사람이 없는데…….”
이런 것들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적당히 지나가는 투로 하는 얘기들은 잠자코 있거나 ‘아, 네, 그렇죠’하고 받아넘기면 되는데, 아예 직설적으로 어딜 뭐하러 가느냐, 학생이냐,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오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말하는 게 듣기 싫다고 내리기에는 너무 바쁜 상황이고, 조용히 좀 가자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소심하다. 영화관이라면 관객에게 조용히 영화를 볼 권리가 있으니 옆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떳떳하게 닥치라고 할 수 있지만, 택시의 승객이 방해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명백한 권리가 맞는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게 권리가 맞다 해도 기사는 입 다물고 라디오나 듣고 운전이나 하라는 것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율적으로 정해진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로봇이 아니니까 심심해서 한 두 마디 말을 꺼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가 하면서도 막말을 듣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자면 분통이 터진다. 인간이란 남보다 우위에 서면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차량은 쉽게 빠져나갈 수도 없고 운전대를 쥔 사람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1대1상황에서 운전자가 기묘한 우위에 서게 된다(그렇게 착각한다). 게다가 상대가 자기보다 약자인 여성이고(역시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되면 자기가 절대자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택시 기사가 그런 사람들인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택시 기사가 되었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택시라는 조건이 그런 특성을 강화하긴 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택시에서 내린다고 갑자기 친절한 신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 파리에서는 주말에 택시 기사가 조수석에 승객이 아닌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아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남자 택시 기사는 여자친구를 태운 채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단다. 요즘도 그런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택시를 타면 꽤 안심이 될 것 같다. 물론 쉴 틈 없이 밀어를 속삭이거나 드라마처럼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며 싸워대면 곤란하겠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승객에게 괜한 말을 걸거나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쩌면 정반대로 그런 사람 둘이 나란히 타서 몇 배는 끔찍한 상황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결국, 약자를 막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사라지거나 그걸 막아줄 수 있는 시스템이 등장해야 택시도 마음편히 이용할수 있는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 먼저 이루어질까? 내 생각에는 어느쪽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아마 구글이 개발한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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