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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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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 IT 담당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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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집안의 컴퓨터들은 컴퓨터 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딴 형이 관리해왔지만, 형이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사정이 바뀌었다. 당시의 나는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할 줄도 모르는, 컴맹까지는 아니지만, 컴퓨터 관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그때그때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배우다 보니,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대체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IP할당에 대해서도 대강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가끔 주워오시는 컴퓨터들을 해체하여 쓸만한 부품을 뽑아낸 뒤 다시 조립하고,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하는 방법, 그리고 하드를 분할하고 드라이버를 찾아서 재설정하는 방법과 TV 카드를 추가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의 습득에 피나는 노력이 따르지는 않았다. 딱히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책을 사서 공부하지도 않아서,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몸에 저절로 익은 것처럼 느껴진다. 부모님 세대가 꽃과 나물과 잡초의 이름을 알게 되었듯이 우리 세대는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조그만 꼬마들이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 다음 세대는 모바일 기기를 다루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2년이 지나서 형이 전역했는데, 그래도 담당은 바뀌지 않았다. 관리를 혼자 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형은 늘 바빠서 부모님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것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불려가서 부모님의 컴퓨터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부모님의 컴퓨터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악성코드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어떤 백신을 깔아둬도 한참 후에 불려가서 보면 정체불명의 백신이 멋대로 컴퓨터를 검사하고, 치료하려면 돈을 내놓으라 협박하고, 쇼핑몰과 웹하드 바로가기, 그리고 각종 툴바가 깔려 있다. 한때는 뭘 하시기에 이렇게 되느냐고 묻곤 했지만, 이제는 묻지도 않는다. 물어봤자 부모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시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런 게 설치될 때 친절하게 수상한 낌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익숙한 나조차도 종종 클릭을 하다 보면 실수로 그런 것들을 깔 때가 있으니, 악성코드는 이제 차가 달리면 바퀴가 더러워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 노트북으로 인터넷이 되지 않기에 또 인터넷을 한참 뒤져가며 진단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친구, 트로이 목마를 비롯하여 악성코드가 몇 종이나 깔린 데다가 인터넷 연결에 필요한 설정 파일이 손상되어 있었다. 악성코드는 금방 제거했지만, 설정 파일은 인터넷에 나와 있는 어떤 방법을 써도 복구할 수 없었고, 복원 지점을 써서 윈도우즈의 상태를 과거로 되돌리려 해도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은 포기하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를 조립하고 XP를 설치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XP가 훌륭한 운영체제이긴 해도 뭐든 다 설정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이 과정은 이번에도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필요한 파일은 다 외장하드에 있으니까 할 일은 그것들을 순서대로 설치하는 것뿐이지만, 이게 다 되었다고 알림이 딱딱 뜨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쳐다봐야 해서 도무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는 하는 김에 아버지 컴퓨터까지 다시 한 번 점검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해서 더 그랬다. 한창 장난칠 나이의 애를 옆에 두고 집안일을 하는 기분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몇 시간 만에 설정을 마치고 나니 남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정보화시대라지만, 모든 가정에 컴퓨터를 포맷하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씩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골목마다 하나씩 있던 컴퓨터 전문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면 역시 브랜드 제품을 쓰고, 불편해도 고장날 때마다 AS 센터에 찾아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다들 돈을 내고 그런 서비스를 사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부모님 컴퓨터를 손볼 수 없게 될 날이 올 텐데, 그러면 아마 아버지가 컴퓨터나 노트북을 들고 AS센터에 가게 되겠지. 집 앞에 LG와 삼성의 AS 센터가 다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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