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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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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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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가 요즘 들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물론 사 줘도 안 갈 정도는 아니지만, 기왕이면 보통 레스토랑으로 가는 게 나은 것 같다. 뷔페에 가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서 괴롭다. 요금은 정해져 있고 먹는 것은 무제한이니까 많이 먹을수록 이득이긴 하지만, 정말 고통을 느낄 정도로 배를 가득 채우고, 어느 정도 소화가 될 때까지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다시 먹기 시작하는 자신을 돌아보노라면, 어쩐지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적당히 배가 불러 올 때 그만 먹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결국, 상실감과 손해감 사이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셈인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음식을 가지러 가야 한다는 것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물론 그게 바로 뷔페의 본질이고 백미이긴 하다. 빈 접시를 들고 이번에는 뭘 먹어볼까 하고 스머프를 노리는 가가멜처럼 기웃거리는 기분은 썩 즐겁다. 하지만 사람마다 자기 접시를 비우는 속도가 다르다 보니 일행이 제각각 출격해서 대화의 흐름이 이상해지거나 테이블에 누군가 혼자만 남기도 하는 게 영 안심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동시에 출격했다가 동시에 돌아오면 참 좋겠지만, 일행이 많으면 그것도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또, 뜻밖에 먹을 게 많지 않기도 하다. 척 보기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뷔페에 나올 수 있는 음식의 폭에는 공통의 한계가 있어서, 어딜 가든 다른 곳에서 봤던 것을 또 보게 되는 것이다.

볶음밥, 초밥, 훈제 연어, 샐러드, 감자튀김, 치킨, 피자, 쫄면, 크림 스파게티, 스프, 과일, 쿠키, 케이크….

이 정도가 뷔페를 구성하는 공통분모고, 나머지가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느 뷔페에 가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피하다 보면 선택 폭은 상당히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 따로 따로 먹게 되면 반색을 할 만한 것들도 뷔페에서는 2군으로 취급하는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년 넘게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다 보니 뷔페에 갔다 돌아오면 앞이 깜깜하다. 칼로리의 쓰나미에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뒷수습이 문제인데, 배가 터지게 부른 상태에서 당장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쓰고 있자니 사람이 생각을 할 수록 피곤해지는구나 싶은데, 이런 나도 아무 죄책감 없이 즐기는 뷔페가 셋 있으니, 바로 고기 뷔페, 초밥 뷔페, 주류 뷔페다. 고기 뷔페는 일단 비교적 싼데다, 술과 고기 밖에 먹지 않으니 문제 없다는 이상한 안심을 하게 되고, 초밥 뷔페는 정말 맛있으니까 뭐 괜찮지 않은가 하고 어쩐지 너그러워진다. 주류 뷔페는 맥주나 와인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뷔페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맛있는 맥주나 와인을 아무 걱정 없이 마실 수만 있다면 식사로는 뭘 먹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정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싶지만 그 밖의 뷔페에 대한 핑계는 아직 찾지 못해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뭐, 굳이 노력해서 찾을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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