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이런 저런 망상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놀라운 질문은 내가 기억하는 한 꽤나 오래된 것으로 이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신나게 떠들어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도 초등학생들이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고(별로 하지 않을 것 같다), 머리가 굵어진 이제 와서는 영 흥이 나지 않는 질문이다.
일단 '꼬마'가 아니게 된 시점에서 투명인간이 되면 빛이 망막에 비치지 않아서 앞을 볼 수 없다, 적외선 감지센서에는 걸린다, 투명인간이 되면 소지품은 어떻게 되느냐, 이런 세세한 설정까지 따지기 시작해서 질문자를 맥빠지게 만들기 일쑤인데, 여기서는 '자신이 원할 때만 자신의 의복과 소지품을 모두 동물의 눈을 비롯하여 어떤 탐지 장치에도 탐지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하자.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신형 도깨비 감투를 얻었다고 하는 편이 더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능력을 얻었다고 치자. 당장은 즐거울지도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능력으로 할만한 일이라고는 위법적인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가장 먼저 나오기 마련이었던 '여탕에 간다'도 위법일 뿐더러, 솔직히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육체보다 그 밖의 요소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데다, 결정적으로 여탕보다 자극적인 매체가 세상에 얼마든지 널려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은행을 턴다'를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히 흠잡을 데 없는 범죄인데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아봐야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을 통해 먹고 살 때 행복한 것이 아닌가?
달리 떠오르는 것도 대체로 음험하고 편치 않은 것들 뿐이다. 신경쓰이는 사람의 뒤를 캐보면 내가 모르는 사이 실컷 나를 욕할 것 같고, 해코지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스파이도 투명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그리 떳떳한 직업은 아니다. 아니, 떳떳하니 아니니를 떠나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스파이는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자기 소개를 할 필요도 없으니 멋이 나지 않는다.
결국 투명인간은 투명 능력만으로는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다. 방송을 타면 엄청난 부를 정당하게 쌓을 수는 있겠지만, 당연히 범인을 알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의심받을 게 뻔하다. 역시 남에게 알릴 능력이 아니다. 투명화 능력과 로또 당첨 중 하나를 고르라면 로또를 고르는 게 마음편할 것 같다.
분명 옛날에는 '투명인간'도 로망이 담긴 단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담.
*글을 다 쓰고 나서 생각난 건데, 투명인간이 되어서 동물 사진을 찍는 전문 사진 작가가 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능력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섬세한 사진을 찍는 비결을 물으면 '완벽하게 위장하고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겁니다'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해야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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