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커피가 싫다. 나도 한 때는 커피를 좋아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가 않는걸 어쩔 도리가 없다. 커피가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커피는 맛이 있다. 나도 인정할 것은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니까 커피의 맛은 인정하는데, 커피를 먹으면 우선 가벼운 멀미라도 한 것처럼 속이 거북해지기 때문에 커피와 도무지 가까워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커피에 관련된 몇몇 사건이 내 마음 속의 커피의 이미지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선 어릴 때부터 '커피를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가정교육을 받았다. 물론 그때도 그 말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굳이 먹고 싶지는 않았다. 어릴 때의 그 반복학습이 심층심리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그건 알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본격적으로 커피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였다.
대체 대학생이란 어째서 그렇게 커피를 마셔대는 걸까? 정말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학생이 한명도 없는 수업을 본 적이 있기나 한 지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개인의 자유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커피를 마시는 학생이 많은 만큼 커피 쓰레기도 사방에 널려있기 마련이다. 강의실에도 있고, 도서관에도 있고, 동아리방에도 있고, 쓰레기통 주변에도 있고, 음료수 캔 버리는 쓰레기통의 동그란 구멍을 모조리 막고 있기도 하고, 벤치에도 있다. 아마 파란나라처럼 텔레비젼에도 있고 엄마의 꿈 속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약속에 늦어서 미안하면서 다정한 모습으로 한손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을 보면 복장이 터져 죽을 노릇이다. 사과의 뜻으로 몇 개 더 들고 왔다면 이해하겠지만, 자기만 먹을 커피를 사 들고 느긋하게 걸어오면서 말로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크게 관계는 없지만, 그 조모임을 한 수업에서 나는 C+ 을 받았고, 커피에 대한 이미지는 더 나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올려두고 깜빡한 아버지 때문에 주전자는 두 개쯤 타버렸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챙겼던 보온병의 뚜껑은 열려있어 가방과 내용물이 커피로 흠뻑 젖어버렸으며, 결국 병원까지 가져간 커피는 보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 쏟아서 어머니가 읽던 책은 모조리 젖어버렸다. 그리고 가장 최근 일로는, 30분 전에 벤치에 앉았다가 누군가 보이지 않게 흘려놓은 커피에 바지가 젖고 말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담배가 타인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하고, 아무데서나 흡연하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비난하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흡연은 정말 몸에 해로운데다 연기는 공기로 퍼져 원치 않는 사람도 들이마시게 되니까 아무데서나 피우면 안된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간접흡연으로 인해 받은 피해보다 커피 공해 때문에 받은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 내가 흡연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흡연자라고 딱히 간접흡연을 즐기는 것은 아닌데다, 흡연하지 않던 시절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간접흡연은 항상 나 자신의 의지로 피할 수 있었지만 커피는 반드시 내가 피할 수 없는 형태로 찾아오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전체적인 공공 도덕의 문제이며, 나에게 일어난 우연일 뿐이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은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버린 것이 아니니 콜라를 마셨어도 그대로 버렸을 것이고, 커피라서 쏟아진 것은 아니니 녹차를 챙겼더라도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온 우주는 내가 커피를 싫어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게 틀림없다고, 나는 커피로 더럽혀진 엉덩이를 닦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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