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이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으니 또 써본다. 세상에는 어째서 말 많은 미용사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미용실은 아줌마들이 상당히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고, 그런 아줌마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미용사가 한 두마디씩 말을 건네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나야 아무리 오래 있어봐야 30분 정도고, 며칠 내내 말없이 살아도 심심하지 않은 인간이므로 제발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미용사는 갈 때마다 대체로 이런 말들을 걸어온다.
"아직 학생이세요?" (슬슬 학생이라고 대답하기 쪽팔린다)
"아들들이 공부를 잘 해서 어머님께서 좋으시겠어요." (이건 어머니 잘못이다)
"참 의젓하신 것 같아요." (그럭저럭 고마운 말이지만 유치원 때부터 백만번은 들었다)
"펌을 한 번 해보시면 어때요?" (외국으로 6개월 정도 나가게 되면 생각해보겠다)
요따위 별 의미도 없는 문답을 계속 하다보면 정말 지쳐빠지기 마련이라 이제 그 집은 아예 가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머리를 할 때 가장 좋은 패턴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정리만 해주세요." "앞머리는 얼마나 잘라드릴까요?" "눈썹 위로요." 정도로 필요한 대답만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가 머리를 감고 거울을 보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오는 것인데, 그 집은 그런 면에서 여러모로 지치게 만든다. 주유소에서 알바가 기름을 채워주면서 "어디가세요?" "차가 참 깔끔하네요. 새로 뽑으셨나봐요?" "세차도 하고 가시는 건 어때요? 싸게 해드릴게." 등으로 쉬지 않고 말을 건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다.
물론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사이라면 볼 때마다 한두마디 나누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대등한 대화가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책방이면 요즘 잘 나가는 책이 뭐냐, 무슨 내용이냐는 말을 할 수 있고, 음식점이면 이건 뭘로 만들었느냐, 이런 메뉴를 해 볼 생각은 없느냐, 맛있는데 조금 짰다, 뭐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미용실은 그야말로 모든 정보와 권력을 미용사가 쥐고 있는 만큼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머리는 매번 자르는대로 자르니 어떤 머리가 잘 나가냐고 물을 수도 없고, 메뉴판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뭘 추가해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머리가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잘라달라고 할 수도 없다. 요리는 새로 해 줄수도 있겠지만 잘라버린 머리는 돌아오지 않으니 미용사라고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고로 이제 슬슬 새 미용실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런데 집에서 그 다음으로 가까운 미용실은 인테리어가 앤틱한데 자정 쯤에 이따금 여자 한 명이 어둠 속에서 머리만 있는 마네킹에 가발 같은 것을 씌워놓고 가위질을 하고 있어서 도무지 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를 어쩌면 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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