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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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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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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하시 루미코 여사의 작품 중에는 젊고 아름다운 미망인이 등장하는 "메종일각"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이누야샤도 오락적인 소년 만화로 대단히 훌륭했다. 후반부에 가서 나라쿠가 이렇게 분리하고 저렇게 변신해서 지겹도록 등장하는데다 파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지리한 감이 있었지만, 어쨌건 소년만화적이면서 묘하게 애증관계가 얽혀있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그 중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되살아나 자신의 환생이면서 이누야샤의 현 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코메를 공격하고 이누야샤에게 애증을 드러내는 키쿄우가 좋았는데,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가장 명장면을 뽑자면 역시 나무 위에 쓸쓸하고 유혹적인 모습으로 앉아있다가 이누야샤가 찾아오자 슬픈 눈으로 그를 끌어안고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 이누야샤, 여기서 고통받는 것보단 나와 함께 죽는게 너도 행복하겠지"

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리고는 카고메가 보는 앞에서 넋이 빠진 이누야샤와 무너지는 땅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압권이다. 연적에게서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고 연적이 보는 앞에서 같이 자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복수가 아닌가? 그리고 이 대사와 상황에는 '정말 사랑한다면 빼앗아서라도 갖고 만다'는 무서운 집념과, '가질 수 없다면 부숴 버린다'는 집착이 담겨있을 뿐더러, 망자가 된 자신에 대한 체념까지 깊이 스며있다. 게다가 그녀는 '나와 함께 죽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고 하고 있다. '같이 죽자'는 것이면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 저승에서 만나자'는 뉘앙스가 풍기겠지만 '지옥으로 가자'는 말에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서 그 자체로 무너져내리고 있고, 그 무너짐으로 엇갈린 인연의 안타까움과 미련을 지워 없애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러한 대사와 함께 실제로 땅밑으로 꺼져가는 몽환적 광경은 그야말로 하드보일드했다. 

여기서 키쿄우와 이누야샤가 죽고 "그동안 이누야샤를 사랑해주신 애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고 만화가 끝났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게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눈엣가시 같은 카고메가 방해해서 둘의 동반자살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게 된 부분부터 흥이 나지 않아서 이누야샤를 더 보지 못했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 부분 뒤로 차츰 흥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 치고 나는 카고메와 이누야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굉장히 좋아해서 그 둘이 맺어지는 결말에도 만족했는데, 그래도 이누야샤에서 키쿄우의 그 장면만큼 내 마음을 떨리게 만든 장면은 없었다. 함께 지옥으로 가자니, 너무나 멋진 말이다. 함께 지옥으로 가자고 할 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상대를 만나는 것도 굉장한 복이 아닐까?(물론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로 지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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