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그렇겠지만, 구제샵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만은 절대로 중고로 사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편인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디서 누가 어떻게 입다가 무슨 연유로 팔게 되었는지 근본도 알 수 없는 옷을 몸에 걸친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구제에 한 번 맛을 들이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일단 싸고, 하나씩 밖에 없는 옷들을 한참이나 뒤져서 자신에게 딱 맞는 물건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 몹시 크기 때문이다. 디자인별로 치수별로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상품들 중에서 맞는 옷을 간편하게 골라서 사는 것보다 인간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야말로 나를 기다리던 100 퍼센트의 아이템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 안타깝게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떠돌던 옷이 마침내 나를 만나 드디어 뜻을 펼친다고 생각하면 이건 그야말로 운명이 아닌가! 내가 너의 마스터다!
하지만 뭐,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인간미가 있다기 보다는 가게가 그냥 지저분할 뿐이고, 살 때는 100 퍼센트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입다보면 소매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든가, 색깔이 좀 더 밝았으면 좋겠다든가, 단추 모양이 마음에 안든다든가 하는 불만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애초에 구제샵 자체가 패잔병 집합소나 다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그것을 뛰어넘기로 다짐하는 것이 바로 구제 정신인 것이다!(참고로 돈만 많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정신이다)
내가 이따금 가보는 구제샵은 작다면 작지만 그런 가게들 중에서는 그리 작지도 않은 편인데, 이따금 고등학생이나 동네 주민이 와서 옷을 구경한다. 척 보기에 괜찮은 옷은 별로 없어서 옷이 척척 팔려나가지는 않는데, 잘 뒤져보니 상의는 대체로 크고 하의는 그럭저럭 맞는 사이즈가 있었다. 나는 청바지를 두 벌 샀는데, 집에 있는 다른 것들보다도 꼭 맞았고 어디 하나 흠도 없었을 뿐더러 길이조차 수선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옷들이 한 벌에 5000원이라니, 자본주의에 심각한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리. 이래서 구제를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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