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소리가 평소에는 들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득 들리는 것처럼, 개소리는 어느 날부터 들려왔다. 할머니의 고함처럼 얕고 칼칼한 개소리였다. 그 소리는 정확히 아침 여덟 시와 저녁 여덟 시에 들려왔고, 우리는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식사를 했다.
“대체 뉘 집 개새끼야?”
참다못한 성미가 젓가락을 식탁에 소리 내서 내려놓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계집애, 말하는 거 봐라.”
내가 김치를 찢으며 대꾸하자 성미는 다시 젓가락을 집었지만, 말하는 기세만은 그대로였다.
“아,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그리고 오빠는 신경 안 쓰여?”
“놔두면 그 옆집이라도 뭐라고 하겠지.” “그럼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안 기다리면 어쩔 건데?”
내 말에 성미는 움찔하고 잠시 대답하지 못했으나, 그렇게 끝낼 성미가 아니다. “경비실에 신고를 하든가? 왜 당하고만 살아?”
“아, 그럼 니가 해라 해, 계집애, 성격하고는. 이름을 잘못 지어서 성미가 저 모양인지.......”
“아, 뭐가!”
20년 넘도록 들었지만 저 계집애 소리 지르는 도저히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아니, 익숙하기야 한데 참지는 못하겠다.
독수리에게 매일 심장을 뜯어 먹힌 프로메테우스도 '아아, 또 왔구만' 했을지는 몰라도, 심장을 쪼는 독수리를 심드렁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야, 이 계집애야, 니가 이러니까 여태 남자 친구 하나 없지. 주변 사람들이 뒤에서 민폐라고 욕하고 있을걸.”
말하고 나서 이번에는 아예 귀를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성미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어머, 무슨 소리야, 내가 밖에서 이미지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데? 사귀자는 남자가 너무 많아서 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지경이라고.”
“...말세구만.”
“남자들이 너무 멍청한 거지.”
“남자로서 찬성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동감이다. 학교 좀 멀다고 너랑 나와서 살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한심하지.”
“그럼 나가든가?”
그러면서 성미는 자기 밥그릇에 수저를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잠시 잠잠했던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성미도 다시 개를 따라 짖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짜증나! 개새끼가 잡아먹히고 싶나? 오빠가 빨리 경비실에 얘기 좀 해봐!”
니가 창문 열고 마주 짖으면 볼만한 싸움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얘기해 주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도리어 경비실이나 관리 사무소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니 그만두었다.
“내가 설거지 할 테니까 니가 좀 해.”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러자 성미는 당장 소리를 질렀다.
“아, 싫어! 나 그 인간 싫단 말야!”
“아, 젠장, 누군 그 노친네가 좋다디? 그럼 니가 다 치워!”
이번엔 나도 마주 소리 질렀다. 하지만 성미는 소리 지르지 않고서는 타협을 할 수 없는 인간이다.
“뭐야, 오늘 오빠가 당번이잖아!”
“아, 그럼 경비실에 니가 연락 하든가!”
그러자 성미는 '치사해서, 진짜...' 어쩌구 하고 구시렁대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쉬고 나서 인터폰의 경비실 버튼을 눌렀다. 버튼 옆의 발광 다이오드가 잠시 깜빡이더니, 스피커에서 곧 그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나왔다.
“예에, 경비실입니다.”
쉰 목소리 뿐이었다면 우리는 경비를 싫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비의 쉰 목소리에는 언제나 지독한 권태가 끼어있었다. 오후 네 시쯤 일어나 메리야스 속으로 배를 긁는 듯한 권태였다.
“예, 저기, 106동 1301혼데요, 지금 들리는 개소리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요?”
경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되물었다.
“개소리?”
이건 거의 반말이 아닌가. 기분이 더 나빠졌지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 개소리요.”
“무슨 개소리요?”
설마 일부러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겠지. 중의성 때문에 잠시 혼란스러웠으나, 가까스로 대꾸는 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 들리는 개소리요. 어떻게 안 될까요?”
그러자 경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개소리? 아니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뭔 소리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
“예?”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이 인간이 이제 주민을 우롱할 생각인가? 어이가 없어진 나는 잠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아니, 지금 개 짖는 소리 안 들리세요?”
“예에, 안 들립니다. 그쪽 같은 층에서 짖는 소린가 본데, 그런 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알아서 하세요.”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인터폰은 끊어졌다. 개 짖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통화가 끊기자 성미가 물어왔다.
“알아서 하래?”
나는 소파 의자에 드러누우며 한심스러운 기분으로 대답했다.
“그러네.”
나는 결국 경비의 도움을 받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성미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아무리 궁지에 처하더라도 손 벌리기 싫은 인간이 있는 법이다. 뭐, 그놈의 경비는 손을 벌려도 모르는 척 하는 인간이지만.
그러나 고작 개 한 마리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은 아군부터 만들기로 했다.
“야, 니가 옆집 가서 물어보고 와.”
아니나 다를까, 성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아, 왜 내가 해야 되는데?!”
“경비실은 내가 연락했잖아.”
“설거지는 내가 했잖아!”
...망할 계집애 같으니, 분명히 어릴 때는 말 잘 듣고 착한 애였는데,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춘기 때 더 잘 돌봐줄 걸 그랬다.
“설거지 하나한 게 그렇게 억울해!”
“무슨 헛소리냐? 그럼 내가 갔다올 테니까 내일 설거지 하든지!”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이미 현관에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젠장, 내 동생은 내가 손에 물을 묻히느니 몇 집 초인종을 누르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영악한 계집애 같으니.
슬리퍼를 끌고 옆집으로 털래털래 걸어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냐고 묻는 아줌마의 말에 나는 1301호 사는 사람이라고 가능한 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래 보여도 심심찮게 학부형들을 상대하는 만큼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었으리라.
곧 문이 열리고 아줌마가 머리를 내밀었다. 심하게 볶은 머리가 문 틈을 비집고 나오자 마치 수세미가 끼인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요?”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집안에서 개 짖는 소리 들으셨나 해서요.”
“개 짖는 소리?”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개 짖는 소리요?”
어째 저놈의 개소리 때문에 오늘 면박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 같다.
“그냥 개 짖는 소리 말입니다. 못 들으셨어요?”
“글쎄, 우리집에선 못 들었는데…….”
애매한 반말에 나는 깎듯이 인사를 하고 다음 집을 향했다.
조사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오기로 열 한집을 돌았는데, 그 중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집은 단 한집도 없었다(참고로 무슨 개 소리냐고 되물은 집은 세 집이었고 여자가 지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 집은 두 집이었다). 베란다가 우리 집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집이라면 우리 집 쪽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겠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집이 듣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위치상으로 고도가 단 몇 미터 차이 날 뿐이지 않은가.
“오빠가 의심스러워서 거짓말 한 거 아냐?”
성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소파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말했다. 나는 신이 나서 맞장구 쳤다.
“아하, 그렇구나! 그럼 이제 니가 한 번 더 돌면 확실해지겠네.”
“아, 웃기지 마!”
“아, 소리 좀 그만 질러! 너 소리 지르는 걸 윗집 아랫집 다 듣고 있단 말이다!”
“그럼 따지러 오라 그래!”
“미쳤냐?!”
“안 미쳤어!”
안 미쳤다는데 딱히 더 건드리고 싶지는 않아서 소리 지르기는 그만 두었다. 성미도 다행히 바보는 아닌지라 혼자서 소리 지르지는 않았다. 나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며 사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두 가지가 있겠지. 첫째…”
“주민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둘째, 우리들이 미쳤다?”
중간에 성미가 말을 가로챘지만, 결론은 내가 생각하던 것 그대로였다. 성미는 거기에 덧붙였다.
“세 번째도 있어. 개가 우리 집 안에 있다.”
“너 나 몰래 개 기르냐?”
“웃겨! 오빠 나 몰래 개 길러?”
불가능한 이야기다. 넓지도 않은 집안에서 동거인 몰래 기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식물이나 어류나 설치류나 파충류, 혹은 반항심 정도다.
“다른 가능성은 없나?”
내가 중얼거리자 성미는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다 같이 거짓말 하고 있나 보지 뭐.”
“그럴 이유가 없잖아?”
“왜 없어? 오빠가 지역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거나, 다들 개를 기르고 있는데 들통 나는 게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지.”
아무 때나 소리 지르는 여동생과 살고 있으니 지역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가설은 엄밀히 볼 때 타당하다. 그러나 보통은 그러면 올라와서 초인종을 누르고 항의를 하지,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소박한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들 개를 기르고 있다는 가설은…소설적으로는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도 아니고, 현실성이 없다. 개 키우는 것이 불법인 아파트에서 인접한 열 한집이 모두 개를 기르고, 묻는 말에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란 몇이나 되겠는가.
내 생각을 말하자(물론 첫번째 이야기는 빼고), 성미는 머리를 헤집으며 소파에 쓰러졌다.
“아, 몰라! 씨…”
그때 마침 그 놈의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여덟 시도 한참 지났는데, 오늘은 앵콜 서비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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