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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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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고 먹나 먹으며 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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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시답잖은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썰어먹는 음식을 썰고 먹는 사람과 먹으며 써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 물론 세상은 넓고 넓어서 썰지 않고 먹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선 썰어먹는 음식이라는 전제를 했으니 그런 상궤를 벗어난 사람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의 소속부터 말하자면 나는 먹으면서 써는 파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데, 우선 썰어놓고 먹으면 써는 시간과 먹는 시간이 따로 들어서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기분이 들고, 나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채 내내 칼질만 할 정도로 금욕적인 인간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썰어놓으면 음식이 빨리 식는데다 먹는 내내 왼손이 심심하다.
 물론 썰고 먹는 파에서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리라. 아마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뒤집어놓으면 성립할 것이다. 식사를 천천히 즐기는 게 좋을 수도 있고, 고기에 소스가 스미는 것을 기다릴 수도 있고, 고기에 칼을 박는 의식이 애피타이저로 작용할 수도 있고,  뜨거운 음식이 빨리 식어서 좋을 수도 있고, 먹는 내내 편해서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썰어놓고 먹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나도 왼손에 포크를 들고 오른손에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썬 다음 먹을 때는 매번 손을 바꿔 먹어야 했다면 애초부터 썰어놓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썰고 먹기 보다는 왼손으로 나이프를 들고 오른손으로 포크를 드는 쪽을 편하게 여겼다. 예법에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돈까스 썰어먹을 때 예법을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또 썰고 먹는 쪽으로 습관을 바꿔보면 그게 마음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토매틱 변속기가 등장했을 때 오른손이 심심하다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결국 지금은 군소리 없이 오토를 타고 있는 것처럼, 더 편해지는 것이라면 습관도 사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고치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쓰고보니 밤중인데 바삭바삭한 돈까스가 먹고 싶어졌다. 
 돈까스 하니 또 생각나는데, 우리 학교 앞에는 "우자이"라고 음식점 이름으로는 있을리가 없는 이름의 돈까스 집이 있었다. 상호도 황당하고, 맛도 좋고, 무엇보다 식사 전에 깨와 막자사발을 줘서 심심하지 않게 배려해주는 점이 좋았다.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진지 오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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