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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메모선장의 블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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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바라씨와 나의 징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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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 징크스 같은 거라도 있어요?"
하야시바라씨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나는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아, 있죠. 자신감을 가지면 실패한다는 더러운 징크스가 있어요."
"호, 그거 재밌네요. 좀 더 자세히 말해봐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어떤 공모전에 투고를 해요. 그때 '아, 이건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이만한 작품을 누가 또 낼 리가 없지', 하고 생각하면 절대로 연락이 오지 않는 거예요. 반대로 '아 뭐 어찌되든 상관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투고하면 장려상으로 손수건 같은 거라도 받게 되더군요."
하야시바라씨는 재를 살짝 털며 살짝 미소지었다. 집에서 뒹굴다 불려나온 탓인지 볼품 없는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그녀는 츄리닝 차림이라도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서 많은 것들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그것 참 끔찍한 징크스네요."
"정말 끔찍하죠.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의 저는 자신의 인생에 꽤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성적도 훌륭했고, 꿈도 확실했고, 나름대로 노력도 하고 있었죠. 성격도 모나지 않았고, 주변 아이들에 비해서 어른스럽다는 말도 자주 들었어요.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럼 지금은 어떻죠?"
나는 맥주캔을 집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신 뒤에 대답했다.
"뭐, 보시는 대로, 볼품 없고, 자랑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손대는 일은 족족 실패했고,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어... 그냥... 공부해'라는 말 밖에 할 게 없죠. 그래서 연락도 안하는 걸요."
"확실히 그렇군요." 하야시바라씨는 용기를 북돋워주기는커녕 깔깔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오밤중에 미망인을 찾아와서 술 마시고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으니, 이렇게 쓰레기 같은 인생이 또 있겠어요?"
너무나 신랄한 말에 나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하야시바라씨는 일어나서 담배를 담벼락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남들 다 유학가고 일하고 저금하고 공부하고 시험 칠 때 놀기만 했죠. 교묘하게 자신을 속여서 안심시키면서. 게다가 당신에게 의지할 사람도 없고, 당신이 의지할 사람도 없어요. 부모님도 사실 당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을 걸요. 애시당초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민폐예요. 빨리 꺼져 버려요. 꽉 막힌 하수구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 같은 태양계에 사는 것도 재수 없어."
그녀는 폭풍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집으로 들어가며 현관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닫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맥주캔을 만지작거렸다. 술이 모자랐지만 그녀 말대로 돈 한 푼 안 버는 입장을 생각하면 더 사기도 뭐했다.
일어나서 터덜터덜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실감나지 않는 날이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 빈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역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하야시바라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제 자신감 따위는 영원히 가질 수 없겠죠?

하야시바라씨는 참 지혜로운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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