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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같이 있는 게 기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표정이 밝고 잘 웃고 친절하며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상대가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물론 정말 좋겠지만(나는 이성애자 남성이니까), 사실 여기에는 성별이나 외모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몇 년 전에 다니던 미용실의 미용사가 그랬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가 약간 긴 남자분이었는데, 말수가 적었다. 그는 내가 큰 마음을 먹고 블리치(브릿지)를 해 달라고 주문하자 어려운 결정을 용기 있게 잘 한 게 대견하다는 듯한 태도로 진지하게 작업했는데, 작업이 끝나자 거울을 보여주며 "이미지가 완전 바뀌셨어요.” 라는 말만을 해 주었다. 색이 잘 받았다느니 전보다 훨씬 낫다느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중립적인 발언이었는데도 어쩐지 굉장히 듣기 좋은 말이었다. 분위기를 타고 “이게… 나?” 라고 했으면 재미있었겠지만, 다행히 나도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 고맙다고만 했다. 친절하고 솜씨 좋고 말수 적은 미용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 뒤로도 그 미용실은 몇 번 더 갔지만 이사한 뒤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 다니던 소아과 원장님도 무척 좋은 분이었다. 굉장한 미인인데다 목소리도 높고 청명하며 친절한 분이었는데, 환자가 없을 때는 플룻 연습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디가 그렇게 친절한가 하면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친절한 분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다닌 병원이라 친절함이나 다정함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스며든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니는 친절하게 밥을 잘 해주셔’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정말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예방접종을 할 때면 그 병원에 갔으므로 나에게 그 원장님은 거의 주치의 같은 분이었는데, 자라면서 아프지도 않고 예방접종도 하지 않게 되면서 뵐 일도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005년 겨울, 가족이 모두 여행을 가서 혼자 남은 집안에서 장염에 걸렸을 때니, 지금은 병원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주변에도 친절하고 멋진 자세로 점포를 운영하는 분들이 몇 있었다. 자주 가는 술집 주인장은 자기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술집을 운영하는 분이라 생맥주를 굉장히 훌륭한 품질로 유지하는 데다가 안주도 모두 맛있고, 인사나 대답이 깔끔하고 시원하면서 부자연스러운 과장이 없다. 게다가 정말 멋진 점은 혼자서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서비스도 주지만, 미안할 정도로 굉장한 서비스를 주지도 않고 딱히 말을 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이나 봤으니 "월드컵 보고 계세요?” 같은 얘기 한두 마디 정도는 건넬 법도 한데, 나로서는 고맙게도 “선풍기 틀어 드릴까요?” 같은 말밖에 걸지 않는다. 이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무관심은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도 무척 친절했다. 불고기 백반 등이 싼 값에 굉장히 푸짐하게 나오는 것도 좋고 집 구조 때문에 부자 친구 집에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태도가 좋았다. 흔히 식당 여주인과 친해지다보면 이모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더하면 서로 말을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 주인장의 태도는 분명 친절하고 따뜻하며 자주 오던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발은 사무적인 영역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떤 손님도 이모라고 부르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친절한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그런 걸 신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분명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이지만, 그만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술집이나 식당이야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지만 미용실은 자주 가봐야 한 달에 한 번밖에 가지 않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플 때밖에 볼 수 없으니 병원은 더 심하다. 일부러 아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에 불쑥 음료수 따위를 사들고 찾아가기도 뭐한 노릇이다.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면 문을 닫는 시간 쯤에 가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반갑지 않은 상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사람과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고 일어나니 안경이 부러져 있어서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가 무척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안경사가 대체로 그렇듯이 믿음직하게도 안경을 쓰고 있었고, 절세 미인은 아니었지만 호감이 가는 외모였다. 막 문을 연 참이라 컴퓨터와 TV를 켜고 조명을 켜느라 부산스러운 데다가 내 안경알에 맞는 테를 도통 찾지 못하는 것은 영 신통치 않았지만 보기에 재미있었다. 간신히 찾은 테로 안경을 수리해서 씌워줄 때 손목에서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사람을 자주 보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했다. 안경은 정기적으로 손보거나 바꾸는 물건이 아니니까 어려운 일이다. 콘택트 렌즈 보관 용액을 사러 가는게 가장 빈도가 높고 합당한 핑계일 것이다. 주유소 점원이 마음에 들어 매주 기름을 사러 가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세상에는 그런 핑계를 대서라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반가운 사람들도 어쩌면 매일같이 만나서 온갖 얘기를 해보면 한군데 쯤은 정떨어지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만나는 반가운 사람이란, 가끔 만나기 때문에 더 반가운 게 아닐까.
나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몇 년 전에 다니던 미용실의 미용사가 그랬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가 약간 긴 남자분이었는데, 말수가 적었다. 그는 내가 큰 마음을 먹고 블리치(브릿지)를 해 달라고 주문하자 어려운 결정을 용기 있게 잘 한 게 대견하다는 듯한 태도로 진지하게 작업했는데, 작업이 끝나자 거울을 보여주며 "이미지가 완전 바뀌셨어요.” 라는 말만을 해 주었다. 색이 잘 받았다느니 전보다 훨씬 낫다느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중립적인 발언이었는데도 어쩐지 굉장히 듣기 좋은 말이었다. 분위기를 타고 “이게… 나?” 라고 했으면 재미있었겠지만, 다행히 나도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 고맙다고만 했다. 친절하고 솜씨 좋고 말수 적은 미용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 뒤로도 그 미용실은 몇 번 더 갔지만 이사한 뒤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 다니던 소아과 원장님도 무척 좋은 분이었다. 굉장한 미인인데다 목소리도 높고 청명하며 친절한 분이었는데, 환자가 없을 때는 플룻 연습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디가 그렇게 친절한가 하면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친절한 분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다닌 병원이라 친절함이나 다정함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스며든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어머니는 친절하게 밥을 잘 해주셔’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정말 어릴 때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예방접종을 할 때면 그 병원에 갔으므로 나에게 그 원장님은 거의 주치의 같은 분이었는데, 자라면서 아프지도 않고 예방접종도 하지 않게 되면서 뵐 일도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005년 겨울, 가족이 모두 여행을 가서 혼자 남은 집안에서 장염에 걸렸을 때니, 지금은 병원이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주변에도 친절하고 멋진 자세로 점포를 운영하는 분들이 몇 있었다. 자주 가는 술집 주인장은 자기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술집을 운영하는 분이라 생맥주를 굉장히 훌륭한 품질로 유지하는 데다가 안주도 모두 맛있고, 인사나 대답이 깔끔하고 시원하면서 부자연스러운 과장이 없다. 게다가 정말 멋진 점은 혼자서 찾아가도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서비스도 주지만, 미안할 정도로 굉장한 서비스를 주지도 않고 딱히 말을 걸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이나 봤으니 "월드컵 보고 계세요?” 같은 얘기 한두 마디 정도는 건넬 법도 한데, 나로서는 고맙게도 “선풍기 틀어 드릴까요?” 같은 말밖에 걸지 않는다. 이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무관심은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도 무척 친절했다. 불고기 백반 등이 싼 값에 굉장히 푸짐하게 나오는 것도 좋고 집 구조 때문에 부자 친구 집에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주인장의 태도가 좋았다. 흔히 식당 여주인과 친해지다보면 이모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더하면 서로 말을 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곳 주인장의 태도는 분명 친절하고 따뜻하며 자주 오던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발은 사무적인 영역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떤 손님도 이모라고 부르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친절한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그런 걸 신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분명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이지만, 그만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술집이나 식당이야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지만 미용실은 자주 가봐야 한 달에 한 번밖에 가지 않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아플 때밖에 볼 수 없으니 병원은 더 심하다. 일부러 아플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하는 시간에 불쑥 음료수 따위를 사들고 찾아가기도 뭐한 노릇이다.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면 문을 닫는 시간 쯤에 가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반갑지 않은 상황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사람과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자고 일어나니 안경이 부러져 있어서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사가 무척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안경사가 대체로 그렇듯이 믿음직하게도 안경을 쓰고 있었고, 절세 미인은 아니었지만 호감이 가는 외모였다. 막 문을 연 참이라 컴퓨터와 TV를 켜고 조명을 켜느라 부산스러운 데다가 내 안경알에 맞는 테를 도통 찾지 못하는 것은 영 신통치 않았지만 보기에 재미있었다. 간신히 찾은 테로 안경을 수리해서 씌워줄 때 손목에서 희미하게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사람을 자주 보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했다. 안경은 정기적으로 손보거나 바꾸는 물건이 아니니까 어려운 일이다. 콘택트 렌즈 보관 용액을 사러 가는게 가장 빈도가 높고 합당한 핑계일 것이다. 주유소 점원이 마음에 들어 매주 기름을 사러 가는 것과 비슷한 얘기다. 세상에는 그런 핑계를 대서라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반가운 사람들도 어쩌면 매일같이 만나서 온갖 얘기를 해보면 한군데 쯤은 정떨어지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만나는 반가운 사람이란, 가끔 만나기 때문에 더 반가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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